다들 안녕하세요? 

블로그 방문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한 가지 소식을 전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제가 처음 블로그를 한지가 2010년이니, 지금까지 7년 정도 운영해 왔는데요. 

안타깝게도, 지금 쓰는 이 글이 블로그 마지막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메인 채널을 '티스토리'에서 '브런치'로 옮기고자 합니다.




사실, 블로그를 해서 뭘 이루어내겠다는 생각이나, 대단한 목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제 생각을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공감하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목적에 더 부합하는 방향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글 쓰는 맛이 다른, 사용자 경험

브런치든 블로그든 어차피 같은 글입니다. 별로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브런치에 글을 쓸 때 '맛'이 더 좋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무엇이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 사진을 올리는 것부터, 배치하고, 편집하는 모든 행동이 더 편했고, 빨랐고, 즐거웠습니다.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2. 어차피 올 사람이 온다면, 구독 시스템

사람이 많이 와야하는 속성의 블로그라면, 티스토리나 브런치를 쓰면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네이버 검색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저에게 유입량이나 방문자 수가 그렇게 중요한 편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도 아니고요.  


전 '얼마나 많이 오는가' 보다는 '누가 오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브런치의 '구독 시스템'은 제 글쓰기 목적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새 술은 새 부대로, 카테고리 정리  

지금까지 블로그를 7년이나 했지만, 뭔가 제대로, 프로페셔널 하게 활용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저런 글이 쌓이면서, 의도 했던 바대로 카테고리가 정리되지 못한 점도 아쉽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대청소를 해야지 생각했지만, 글 쓸 시간도 없는 상황 상 그게 쉽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블로그를 정리하는 것 보다는, 아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하고 판단합니다.  

그 동안 쌓아온 글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필요하다면 조금씩 짐 옮기듯 활용한다면 해결될 일이겠지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는 옮깁니다.  

앞으로 제 새로운 글을 보고 싶은 분들은, '강정욱의 브런치'를 통하는 것이 더 빠를 듯 합니다. 


물론 블로그를 계속 방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분간 브런치로 이런 저런 실험을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세요. 

또 모르죠. 1년 뒤에 이 블로그로 다시 복귀한다고 말씀 드릴지도. 그럴 일이 없도록 열심히 써야 하겠죠. :) 


1년이 참 빠르네요. 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고, 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칠드런 오브 맨, 그리고 그래비티 

지난 한달 동안 넷플릭스를 쓰면서 봤던 영화와 다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넷플릭스를 가입하게 된 경위는 '옥자' 때문이다. 영화 개봉 전에도 넷플릭스 때문에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다. 결국 대형 영화관에선 개봉조차 하지 않게 된. 그래서 되려 넷플릭스 가입자는 엄청나게 늘어났을 거라 추측된다. 영화는 재미있엇다. 하지만, 그 이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다. 영화를 아주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좋아하는 영화 감독도 별로 없는 나이지만, 이 감독은 정말 '즐겨찾기' 리스트에 올릴만 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와 같은 레벨이라고 느껴진다.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칠드런오브맨 그래비티. 칠드런오브맨은 그렇다고 쳐도 그래비티는 아주 유명한 영화인데, 지금이라도 보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각각 7월 16일과 7월 23일 일요일에 봤다. 두 편 모두 나의 유일한 개인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에, 최근에 글은 거의 못 썼다. 좋은 영화를 봤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글을 못 쓴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후회할 것 같아서. 두 작품의 공통점은 '희망' 그리고 한 개인의 '변화'에 대한 내용이다.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칠드런오브맨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시점에 한 명의 아이가 가져다주는 기적을 말하며, 그래비티는 희망도, 소리도, 빛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기어코 삶의 희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모두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공통된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첫 번째 공통점은 '주인공의 상황'이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은 무기력하고, 세상에 대해서 시니컬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도 비슷하다. '아이의 상실' 이다. 그 이유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모두 삶의 가장 큰 이유를 잃어버렸고 그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방치해 나간다. 칠드런오브맨의 주인공, 테오는 세상의 일에 관심이 없다.  첫 장면에서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있음에도, 그는 무관심하다. 그리고  회사와 '승견장(?)'를 돌아다니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래비티의 주인공, 라이언도 마찬가지다.  삶에 대한 능동성은 찾아 볼 수 없으며, 우주가 왜 좋냐는 매트의 질문에 그녀는 '침묵'이라 답한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만의 '안전지대'를 구축한채 살아가고 있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그들을 '일깨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칠드런오브맨에선 대표적으로 테오의 '아내'가 그 역할을 한다. 그녀는 열정적이었던 그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온전히 맡긴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그녀는 죽임을 당하지만, 그 유지를 잇는다. 그리고 테오는 어느새 자신의 목숨을 바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다. 어쩌면 아내는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해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비티에선 조지 클루니가 맡은 '매트'가 그 역할을 한다. 자신의 삶을 걸어서 그녀를 구하며, 모든 걸 내려놓은 상황에서도 극적으로 그녀에게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의 결정적인 외침. 그로 인해 주인공의 눈빛은 달라진다. 생의 의지는 그렇게 이어지고, 그들의 삶은 완전히 변화한다. 

"자식을 먼저 잃은 것보다 큰 슬픔은 없지.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게 중요한거야. 가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가야 해." 


마지막 공통점은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생략했다고 느껴진다. 인류가 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는지, 테오의 아이는 왜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인류의 마지막 희망, 키는 어떤 과정을 통해 임신하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는 그래비티도 마찬가지다. 라이언 자녀의 죽음, 우주정거장의 연쇄적 폭발, 말도 안 되는 확률의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지지만, 그 어떤 상황도 명확한 '이유'로 제시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감독을 그런 것을 염두해 두지 않은 듯 하다. 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혹은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삶은 '이유'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 누구도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난 원인이지만, 내 삶의 이유는 아니다. 내가 이번 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부모님'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이 삶을 통해 그 이유들을 만나고, 만들어 가고, 연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상의 연속'에 가깝다. 결코 '한번의 사건'이 될 수 없다.    




나에게 감독은 묻는가?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당신은 죽어도 되는가?"
대답한다. "아니다. 삶을 하나의 이유로 귀결시키지 말라. 삶은 그저, 내 앞에 놓여진 것이다. 그러니, 일상을 살아라. 어쩌면 삶의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믿는다. 삶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에 놓여야 한다고. 그 단단한 일상의 기반 위에서 춤추고, 만나고, 고통을 겪고, 미치고, 배우고, 사랑해야 한다고.
그러니 우리, 길을 잃어버린다 해도 염려치 말자. 라이언의 마치막 외침처럼, 이렇게 살자. 

"불에 타 죽던지 아니면 멋진 여행을 했다고 자랑하던지, 둘 중 하나다!" 

그래. 둘 중 하나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허나, 그 또한 어쩔 수 있겠는가. 








새벽 5시 21분. 아니, 아침인가. 새벽이라고 하기엔 밝고, 아침이라고 하기엔 어스름한 그런 시간이다. 35살이 된 나에게, 올해들어 새롭게 생긴 증상이 있다. 바로 불면증이다. 추측컨대 아내가 이 글을 보면 웃을 것이 분명하다. 나라는 인간과 불면증이라니. 이질적인 두 단어다.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잠’과 관련해선 별로 져본적이  없다. 누구보다 많이 자고, 빨리 잠들고, 심지어는 낮잠도 즐긴다. 그 무엇보다 잠자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낮잠은 내 행복의 원천이다. 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후 6시 이후로는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한번은 커피를 먹었다가 잠을 못 잔 적이 있는데,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녹차도 마찬가지다. 나의 단잠을 방해하는 것은 철저히 금욕한다. 또 별 고민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는 편이라, 침대에 눕고 나면 이내 잠이 든다. 일반 사람은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도 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시간을 가져본 지가 꽤 되었다. 

그런 나에게, 요즘 들어 가장 큰 고민은 불면증이다. 잠이 드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간에 한번씩 깰 때가 있다. 새벽 1시나 2시쯤. 그럴 때면 여지없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나를 본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회사 일도 생각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숨에 집중하기도 하고, 나름 명상도 한다. 이도저도 안 되면 짜증을 낸다. 혼자 좋다고 낮잠을 자 놓고, 내가 왜 잠을 잤을까 자책한다. 짧은 시간에 인간은 얼마나 많은 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감탄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인 오욕칠정을 순식간에 모두 경험한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지만, 몸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잠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에겐 생각보다 큰 고통이자, 스트레스다. 

오늘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12시 경에 잠이 들었지만, 새벽 4시반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짜증이 났지만 결국 그냥 받아들였다. 나란 사람이 그렇다. 문제를 반기는 편은 아니지만, 문제에 끌려가는 것은 더욱 싫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보겠다고 마음 먹는다. 나와서 물을 마시고 불을 켰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부터 꽤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며, 찬찬히 책을 폈다. 얼마 전에 중고책방에서 샀던 책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구본형 선생님의 책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이다. 구본형 선생님은 매일 아침 2시간 씩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새벽에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책을 읽다보면, 그 새벽녘 맑은 정신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때가 있다. 그렇게 펼친 책의 첫 장을 보고, 웃음이 팍 터졌다.

“마흔이 되어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 몸은 피곤에 전다. 긴 잠 속으로 죽은 듯 빠져들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더 이상 쉽지 않게 되었다.” 

소름. 불면증 때문에 일어나 보게 된 책에서 불면증에 대한 글을 보다니. 이것은 운명일까. 선생님은 글로써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하셨다. “어쨌든 불면증과 친해두어야 한다. 불면증을 고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찾아오면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이렇게 의자에 앉아 이놈에 대해 써보기도 하는 것은 꽤 오랫동안 이놈과의 싸움에서 얻은 요령이다. 마흔은 가끔 불면증과의 동행과 동침을 의미했다. 나는 오히려 불면을 즐겼다.” 나는 아직 서른 다섯, 마흔이 되기엔 5년이나 남았는데. 라는 핑계를 뒤로 하며, 절절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책 읽기의 끝은 화자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오늘 그 끝을 경험했다. 그리고 위로 받았다. 

불면에 대한 긍정적이 관점도 서술되어 있다. “불면은 내게 또 다른 고독을 즐기게 해주는 방법이다. 단지 내 스스로 불면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이놈이 찾아오면 맞아줄 뿐이다. 나는 자신이 있다. 동물은 자신의 신체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은 반드시 자도록 만들어졌으니까.” 맞는 말이다. 어쩌면 나의 내면에서 이런 고독을 그리워 했는지도 모른다. 몸은 여전히 무겁고, 눈꺼풀도 고되지만, 오랜만의 새벽 독서에 정신이 깨어난다. 내 안의 무언가는 분명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구본형 선생님은 불면을 즐기는 방법으로 거대한 프로젝트를 생각했다고 전한다. 10년 동안 10권의 책을 쓰겠다는 저술가의 꿈도, 이렇게 탄생한 듯 보인다. 나도 스스로를 한번 돌아봤다. 이대로 괜찮은지. 어쩌면 변화가 가장 절실한 시점은 아닌지 말이다. 그 생각을 남기고자, 이렇게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어느새 6시 반, 완연한 아침이 밝았다.  

그래. 어쩌면,

나에게 새벽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야겠다.


안경을 바꾼지 열흘이 되었다. 

뿔테를 쓰다가 테가 얇은 안경으로 바꾼건 처음이다. 

5년째 쓰던 안경이 지겹기도 했고, 지나가던 길에 봤던 안경테가 계속 눈에 들어와서 샀다.


지난 주 월요일이다. 안경테를 바꾼 첫날. 

그 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안경 테두리가 시야에 잡혔다. 

그 동안은 더 넓은 뿔테임에도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역시 뇌는 '차이'를 인식한다는 말이 맞다.




거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어지럼증 때문에 고생했다. 

한 두 시간 말겠지 해서 그냥 썼는데 정말 저녁까지 빙글빙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럴 수 있다곤 하는데.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정말 눈알 빠지는 줄 알았다. 종일 눈을 비볐다.


다음 날도 나아지지 않으면 따지러 가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자고 일어난 다음 날은 괜찮았다. 

뇌에서 어떤 조정이 일어난 느낌. 


그리고 열흘이 지난 지금, 어느새 안경테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러워 졌음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나의 뇌는 이 '안경테'를 의미 있는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론이다. 뇌는 차이를 인식한다. 그 차이는 불편하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그래야 쓸 수 있는 안경이 많아진다. 

안경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낯선 경험, 사람, 관점과 부딪쳐야 하는 건 그런 이유다.

 처음엔 어지럽고 거슬린다. 그


렇다고 해서, 그것이 힘들다고 금방 벗어버리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은 길고, 예쁜 안경은 많기에.


아주 예전의 일이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나왔을 때다. 영화에선 최민식이 잔혹한 사이코패스로 나온다. 

일반인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동명의 소설에선 그의 성장 배경이 등장한다. 

학대받고 자랐던 어린 시절, 그와 비슷한 부모 밑에서 길러졌던 것이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사이코패스가 어디 있겠는가, 

그 또한 피해자인건 사실이다. 존재론적으로 본다면 그 역시 사랑받지 못한 한 인간일 뿐이다.




나는 그런 배경에 더 관심이 많았고, 보통 사람들이 이해못할 캐릭터에 대해서도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추석이었나, 무궁화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가는 길이었다. 옆 자리에 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상담 관련 책을 보고 계셨다. 

당시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차라 용기내어 말을 건냈다. 어떻게 하면 상담을 할 수 있냐고. 다행히 친절히 대답해 주셨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앞서 말한 '금자씨'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그 앞선 배경을 말하며,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다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되려 그를 이해해줘야 하는게 아니냐고 생각을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돌아보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분별을 가져다준 말이었다. 짧지만 강력했다.


"이해는 가지만 용납은 안 되요."


그리곤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의 배경도 이해하고, 존재론적으로 이해는 간다. 하지만 용납은 다른 이야기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겐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며, 그 행동은 사회적으로 결코 용인되어선 안 된다고 하셨다.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강간이나 폭력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려주시며) 그리고 그 말은 애매한 기준을 가진 내가 '번쩍' 정신을 차리게 도왔다.


박근혜를 보면서 많은 어른들이 이렇게 말한다. 

'불쌍해서 어떻하누' '저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누'

 '부모 둘 여의고 저렇게 살아가는데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여자로서 얼마나 힘들까'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내 머릿 속을 스치는 말도 이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용납은 안 되요."


이해는 간다. 내가 그렇게 태어났고 그런 상황에 몰렸다면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는 없다. 

한 존재로써, 충분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용납되어선 안 된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선 안 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을 맺고 있고, 남을 해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시민으로써' 자신의 선택과 결과에 책임을 저야 한다. 그게 시민의 책임이자, 의무다.


이후 삶을 살아가면서 '이해는 가지만 용납이 안 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굳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니더라도, 남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들을 본다. 

권력을 가질 수록 그렇게 변해가는 이들도 많이 봤다. 리더들, 사업가들. 유명 강사들, 성직자들. 심지어 대통령까지. 

그래서 '분별'은 중요하다. 제대로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감성과 냉철한 이성. 둘 다가 아닐까.


"인간으로써 그들을 이해한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그들을 용납해선 안 된다."


1월 15-17일
재원이 돌상 차리기

금요일은, 오전에 아내 이름을 바꾸러 갔다. 나와 재원이 이름을 지어주신 선생님께 오랜만에 인사도 드릴겸 찾아갔고, 아내 역시 좋은 이름을 받아서 왔다. 그리고 향한 곳은 코엑스. 가까운 지역이라 오랜만에 갔는데, 별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솔직히 옛날이 더 그리웠다. 너무 백화점 같은 느낌이랄까. 특색도 없고, 서점도 작아지고.. ㅠ 아, 중요한 일이 있었다. 금요일 밤부터 재원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토요일에 병원에 가보니 열감기란다. 나한테 옮은 것 같은데, 그래서 힘들었다. ㅠㅜ 돌상 준비를 하고, 재원이를 한복을 입혔지만 계속 칭얼칭얼.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옷을 잠깐 벗어 놨더니 그나마 표정이 풀렸다. 그 똥강아지가 얼마나 답답했을꼬. ㅎㅎㅎ 그래서 아마도 역사상 처음으로 재원이는 누드로 돌잔치를 지낸 아가가 되었다. ㅎㅎㅎ 돌잡이는 ‘붓’을 집었다. 공부를 잘 할려나. 나는 공부는 못해도 글은 잘 썼음 좋겠는데 ㅎㅎ 그렇게 정신없이 돌잔치를 마치고, 일요일은 천천히 청소를 마쳤다. 3일 내내 재원이도, 나도 아팠던 터라 우리 가족은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 그런 시간이었다. ㅠㅜ




1월 18-20일
SCM 겨울 캠프 

지난 3일간, 캠프가 있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하나하나 다 쓰는 것은 어렵지만 가장 좋았던 것, 인상깊었던 것 하나씩, 그리고 가장 많이 배운 점 하나를 남기고 싶다. 우선, 좋았던 것은 (진짜 의미에서) 학기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학기 수업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관심’을 언급하고 싶었는데, 이번 캠프를 통해 다 다루게 되었다. 특히 밖에 나가서 진짜 세상을 만나본 것. 사람들을 만나서 피드백 받아본 것. 고생도 좀 해본 것. 모두 좋았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마지막 성찰’이다. 몇몇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때 너무 가슴이 짠했다. ‘엄만 고등학생이 뭐라고 이런데 오냐고 말씀도 하셨지만, 난 처음으로 엄마 말씀 어기고, 여기 나오는 거라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처음으로 말해 본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생각하게 된다. 배웠던 점은 이것이다. 전체 진행을 내가 도맡아 하면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한편으론 나의 한계라는 것. 다시 말해, 4명의 멘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리스크 있더라도 새로운 장을 만들고, 실험할 수도 있었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직 팀웍을 맞춰 본 적이 없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점이자, 앞으로 내가 보완할 점이란 사실을 배운다. 결과적으로, 어쨌든 내 인생 캠프 중 하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도 멘토들도, 운영팀도 너무나 열심히 해주었다. 행복했던 3일이었다. 


1월 21일 
티움 놀러가는 날

오늘 오전엔 당산에 티움 컨설팅에 놀러갔다. 재미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사실 순수하게 노는 시간이 별로 없는게 우리네 어른들의 삶이 아닐까. 보통은 업무나 이런 저런 것에 치이게 마련이니. 그런 일정 중에 이렇게 2시간 정도 이런 저린 이야기도 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것 자체도 감사한 일이고, 또 잘 받아주시는 팀장님께도 감사하다. 티움이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도 나에게 많은 배움을 준다. 내가 무엇을 해야 기뻐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해주고. 오후엔 리버럴 아츠 공부를 하러 갔다가, 저녁엔 이모님과 이모부님이 사주시는 아구찜을 먹으러 갔다. 캠프 끝나고, 비교적 쉴 수 있는, 가벼운 하루였다. 


1월 22일 
재원이 돌 사진

오늘은 재원이 귀 빠진 날이다. 오전에는 독서축제를, 오후에는 재원이 돌 사진을 찍으러 스튜디오를 갔다. 지난 주 돌잡이 할 때는 컨디션이 별로여서 제대로 사진을 찍지도 못했지만, 오늘은 나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옷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얼마나 귀여운지 한참이나 웃었다. ㅋㅋ 아이고, 돌아보면 참 긴 1년이었다. 잠도 못 자고, 재원이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1년이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참 고생이 많았다. 잘 해주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ㅎㅎㅎㅎ 저녁에는 재원이랑 신나게 놀았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공던지기다. 커다란 공이 있는데, 내가 재원이에게 던지면, 재원이도 잡아서 나한테 던진다. 그리곤 허허허 웃는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느끼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도 깨달아가는 것 같다. 또 저녁에 침대에 올라가도 엄청 좋아한다. 잡히지 않으려고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도망가는데, 무지 귀엽다는 ㅋㅋ 그렇게 재원이 생일을 마무리했다. 앞으로 1년도 즐겁게 보내자~~@


1월 23-24일
내부자들

주말에는 좀 쉬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나랑 아내는 거의 보지 못했다. 토요일엔 몇편을 보기도 했고, 또 밤에는 영화도 봤다. 내부자들이라고 최근 흥행한 영화인데, 어느 정도 베테랑과 그 궤를 함께하는 영화였다. 사회가 팍팍해지니, 이런 통쾌한 영화가 흥행하는 것이 아닐까. 일요일에는 상근이 결혼식을 갔다가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만났다. 다들 얼굴보기 어려운데, 이렇게나마 봐서 좋았다. 간만에 푹 쉰 주말이었다. 


1월 25일
부가세 까먹었다

오늘 오전에는 담주 캠프 미팅, 오후에는 보고서 작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이번 주 중으로 부가세를 내려고 계획하고 있었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날짜를 다시 확인해보려고 검색하는 순간, 깜놀했다. 날짜가 바로 1월 25일까지가 아닌가? 뭐?? 오늘까지라고? 꼼꼼하지 못한 내 성격을 탓하며, 세무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지금이라도 오면 할 수 있단다. 이미 시간은 5시. 최고 속도로 달려갔다. 도착한 시간은 5시 반, 내 번호는 924번이었다. 순서를 보니 앞에 250명 가까운 사람이 대기 중이었다. 아.. 오늘 집에 갈수도 없을 것 같았다. 저녁에 미팅이 있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끝내야 했다. 일단 자리를 잡고 홈텍스로 들어갔다. 이런 저런거 잘 모르지만, 일단 뚝딱뚝딱 입력하니 뭐가 되긴 되더라. 결국 홈텍스로 부가세 처리하고 나왔다. 한 바탕 소동을 겪고 느낀 점, ‘꼼꼼하지 못하니 되는 일이 없더라’라는 것. 하기 싫은 일이라고 회피하다 보면 언젠간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점을 배웠다. 바보 같다. 정말. 


1월 26일
효율성 높이기 

어제와 오늘에 걸쳐서, 캠프 보고서를 마무리 지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생산성이 낮다. 다시 말해 몰입도가 꽤 낮아졌단 생각이 든다. 맘먹고 시작하면 금방 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을 때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결국 탁월한 멀티테스킹이 되기 위해선 몰입이 필수다. 한 영역에서 충분히 몰입하고, 완결하고, 다음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일상을 살면서 만족을 느끼는 영역도 거기에 있다. 스스로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일상을 보내면,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강의가 없어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하루가 흐트러지면, 그것이 반복되면 나는 좌절한다. 결과를 만드는 삶을 살자. 내일 목표는 이것이다. 첫 글 쓰기 그리고 와우 축제 준비하기. 책도 몇권 가지고 나가자. 그리고 공부하자. 혼자있는 시간을 가치있게 여기자. 



1월 1일
새해의 시작

2016년 새해가 밝았다. 드디어 34살이 되었다. 어릴 적, 30대 중반 아저씨를 보면 다 알것 같고, 꼭 어른 같았는데.. 지금의 나를 보면,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나이는 그저 나이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철이 더 드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만큼 생각하고, 실천한 만큼 철이 들 뿐이다. 1월 1일, 나와 아내는 오전에 아주버님 산부인과로 향했다.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했기에. 그리고 향한 곳은 종각이다. 어머님이 우리 재원이 돌을 맞이해서 목걸이를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새해 첫날 한번 알아보러 가게 되었다. 이런 저런 곳에서 견적도 물어보고, 또 명동에 가서 떡볶이도 먹었다. 무엇보다 재원이 덕분이 많이 웃은 날이었는데, 뭐만 했다하면 꺄르르 꺄르르 엄청 웃은 하루였다. 재원이가 감기가 다 나아서 그런지, 웃음이 많아졌다. 행복했다.


1월 2-3일 
휴일의 끝

주말은 온종일 휴식이었다. 요즘 다소 무리한 탓인지 청소만 마치고 쉬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재미있다고 해서 다운 받아서 봤다. 일요일도 별일 없었다. 청소를 하고, 이유식을 만들고, 오후엔 잠깐 홍대로 산책을 갔다. 하루가 왜이리 짧은지. 그렇게 연휴가 끝났다. 나로썬 이번 2주를 만들기 위해서 나름 신경을 썼다. 다른 건 최대한 줄이고, 아내와 재원이랑만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큰일도 치뤘다. 할머니 장례식도 있었고, 형님 2세 탄생도 지켜볼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이, 연말과 연초가,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2주였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가족과의 시간이었다. 특히 재원이는 2주 전까지만 해도 아빠 아빠를 잘 하지 않앗는데, 이젠 곧잘 아빠 아빠를 외친다.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는 시간도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육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간다는 것도 깨달았다. 밥 먹이고, 밥 차리고, 재우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놀아주고, 약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그 경험을 온전하게 했다. 좋았던 것도 있지만, 아쉬운 것도 있다. 일상에서 너무 멀어졌다. 책을 본지도 꽤 되었고, 글을 쓰지도 못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일상을 잘 관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잘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이젠 끝이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일주일, 나의 패턴을 회복하자.  


1월 4일
일상은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사실상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건만, 쓸데없는 시간으로 채우고 말았다. 어린 시절의 나에겐 익숙한 그런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일상은 작은 습관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작은 습관들은 하나 하나를 보면 별 힘이 없어 보이지만, 그것들이 연계되면 어마어마한 패턴을 형성한다. 나는 그 패턴의 주인이 아니다. 노예다. 그 패턴을 자각하고 벗어나려는 의식적 노력 없이는 말이다. 지난 2주 동안 나의 일상적 패턴은 완전히 깨진 상태다. 회복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위로하자. 하지만 위로는 절반의 역할이다. 절반의 역할은 단호한 자아의 것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결단력 있는 자아를 불러내자. 그가 발언권을 갖도록 하자. 내 안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그가 이기도록 하자. 그것이 자아 회의 주관권을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이다.
 

1월 5일
철학 아카데미 첫 수업

정읍에서 캠프를 마치고, 경복궁 옆 철학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었다. 박남희 교수님께서 수업을 진행해 주셨는데, 참 재미있었다. 그리고 좋은 자극이 되었다. 우선적으로,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철학적 삶을 산다는 것이지 철학을 전공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거울을 보며 외모를 다듬고, 내 태도를 고치듯 철학자들의 생각과 글을 보며 내 삶을 다듬는 것이 곧 철학이다. 매우 공감하는 바였다. 나 역시 삶을 위한 기술로써의 철학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첫 시간이라, 전체 얼개를 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자연 철학자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에 스윽 지나갔는데, 다행히 이리 저리 본 책들 덕분인지 이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큰 자극이 된 것은 역시 책이다. 이번 수업 교재는 교수님이 직접 쓰신 책을 가지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수업하고 싶었다. 내가 쓴 책을 가지고 수업을 한다는 것. 내 생각을 그대로 공유하고, 그로 인한 다른 이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다.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매달 글 쓰는 미션 꼭 성공하자. 


1월 6일
EBS 캠프 3년차가 되다. 

오늘은 EBS 프리미엄 캠프에 갔다. 일찍 베어스 타운에 갔는데, 스키 시즌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강의장 위치도 아주 높아서 스키타는 사람들 구경 실컷했다. 나는 발에 눈도 안 묻히고 왔지만. ㅎㅎㅎ 이번 캠프로 나도 이제 3년차가 되었다. 2013년에 시작했으니 인연이 꽤 되 편이다. 비록 일년에 2번의 캠프지만, 여름 겨울이면 반복되는 연례 행사가 되었다. 그 동안 프로그램도 변화가 있었다. 크게 변화한 것은 1번이고, 나름 대로 캠프 마다 작게 작게 변화하고 있다. 이번에 또 하나의 시도를 했는데, 나름대로 괜찮았다. 아이들에게 전할 메시지도 나름대로 정리되었고, 수업도 용이했다. 오늘은 꽤 만족하는 수업이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셔틀버스가 운행한다는 점이곘지만. 그것도 왕복 3000원에 말이다! :) 

그러고 보니 그렇다. 예전에는 선택의 기준이 단순했다. '기쁨'이었다. 물론 단순한 기쁨은 아니다. 의미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몸을 옮겼다. 남들이 버기엔 무모해 보이는 결정도 나에겐 아니았다. 힘들어도, 분명 기뻤으니까. 지금도 그 기준은 유효하다. 나는 소중하니까. ㅎㅎㅎ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게 되어 바렸다. 이젠 하나의 기준이 더 있다. 그 결정으로 인해 우리 가족도 '기쁜가?'라는 것. 나로 인해 가족에게도 의미있는 기쁨이 전달되어야 한다. 왜냐. 가족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기 때문이다. 이젠 떨어져 생각할 수가 없다. 하나 더 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기쁜가! 나의 선택으로 인해 말이다. 그 선택이 옳다고 세상이 말하는가. 이것은 유심히 관찰하고, 귀 기울여 들어야 겨우 알 수 있는 신호이다. 앞서 보다 큰 범주이지만 분명 중요한 관점이다. 이 셋이 모두 일치하는 지점. 그 교집합이 내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이럴 땐 드래곤 라자의 명언이 떠오른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그렇다. 나는 섬이 아니다.


1월 7-8일 
교사 연수 및 미팅 

사실, 일지를 놓쳤다. 그래도 짧게라도 기록하자. 목요일에는 교사연수가 있었다. 프로토타이핑에 대한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선생님들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워낙 훌륭해서 내가 할 것이 거의 없더라. 오후에는 리버럴 아츠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 명쾌해서 좋았다. 다만 그것이 나에게 좀 더 내제화가 되어야 하는데.. 라는 개인적 공부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금요일엔 계속 미팅이었다. SCM 관련 캠프와 시흥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 같다. 지난 주 일정은 그래도 괜찮았다.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바쁘게, 반갑게 시간을 보냈다. 


1월 9-10일 
주말 일정

주말이다. 토요일에는 대학교 친구 상근이 결혼식 기념 (?)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최근에는 워낙 자주 만나지 못하는 터라, 반가웠다. 아내와 재원이도 가서 자리를 빛냈다. 다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대화 주제도 많이 바뀌더라. ㅎㅎ 재미있었다. 나름대로 다들 철이 들어가는 느낌도 들었다. 일요일에는 오전에 SCM미팅이 있었고, 저녁에는 돌잔치를 하지 않는 대신,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이모님 가족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고기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못 먹겠더라. ㅎㅎㅎ 어쨌든 맛있게 먹었다. 사실 일요일은 내가 큰 실수를 했다. 하기로 한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아내도 나도 다쳤다. 온전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월요일도 이어진다. 


1월 11일
온전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오늘은 정말 온전하지 않았다. 꾸준한 사람이 삶을 망친다. 꾸준히 온전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 나는 패턴이 있다. 잘 하다가도 중간에 무너지는 시기가 온다. 그렇다고 엄청 무너지지도 않는다. 중간에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다. 하지만 앞으론 좀 더 민감하고 싶다. 하기로 한 일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참으로 매정하게 다가왔다. 1월의 목표는 이것이다. 온전한 몸을 만들기. 만족도를 9점까지 올리기. 나에게 남은 20일, 나는 하기로 한 일을 하는 그런 사람으로 있고 싶다. 


1월 12일
철학 수업

매주 화, 목요일이 나는 참으로 좋다. 화요일 저녁에는 철학 아카데미에서 수업이 있는데, 오늘 배운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자. 우선, 수업 중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흐름을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이 좋았다. 나 역시, 맥락을 중요시 여기는 편인데, 왜 이런 사상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접근이 좋았다. 자연철학자들이 세계의 근본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들이야 말로, 어떤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순수하게 질문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공식적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철학자들. 그들의 사유는 근대까지 ‘이성의 빛’에 가리워져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되려 재발견되고 있다. 특히 소피스트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나에겐 놀라운 인식의 전환이었다. 그저 궤변론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진리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할 방법도 없다. 그러므로 진리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소피스트였다는 것은 대반전이었다. 서양 철학의 시작점을 피타고라스라고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예를 들면, 수)를 기준으로 삼았던, 그리고 혼란이 아니라 질서를 목적으로 삼았던 철학자이기에. 오늘 수업을 듣고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니체가 왜 ‘근대 사상’을 전복할 수 있었는지. 그는 문헌학에 능통했다. 아마 이러한 고대와 자연 철학자들의 사상에도 쉬이 접근할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 변화의 시작은 ‘읽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해하고, 탐구하다가 결국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순간, 내면에서 강한 울림이 따라오는 순간, 인간은 변화한다.  


1월 13일
자신감 리더십 캠프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에도 자신감 리더십 캠프가 있었다. 매년 비슷한 포맷이기는 하지만, 아주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번에 확 달라진건 초반에 몇 번이었고, 지금처럼 완성된 형태가 된 건 작년 이맘때부터 였던 것 같다. 올해는 어떤 변화를 줄까 하다가, 앞부분에 ‘자신감을 올리는 법’에 대해서 좀 더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게 안전지대, 기적지대, 도전지대를 채우는 것. 나에게 익숙한 활동을 쓰고, 나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쓴다. 그리고 나서 ‘도전하고 싶은 것’들을 쓰는 것. 그 중 하나를 발표해 보는 것. 나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사실 내가 도전하는 것들을 하나씩 이뤄나가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다들 잘 해주었다. 다음에는 뭘 바꿔볼까? ㅎㅎㅎ 


1월 14일
지식의 얼개

일주일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날이 있다. 그건 바로 화요일과 목요일, 공부하는 날이다. 화요일은 철학 아카데미에서, 목요일은 GLA에서 수업을 듣는데 두 분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의 얼개’다. 전체 학문의 구조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많이 공감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균형감각’이기에. 오늘은 교양인에 대해서 배웠는데, 역시나 우리가 알고 있는 ‘전문인’과는 많이 다른 개념이었다. 신영복 선생님 책 <강의>에선 이렇게 설명한다. "전문화는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아래층에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차를 전문적으로 모는 사람, 수레바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배의 노를 전문적으로 젓는 사람 등 전문성은 대체로 노예 신분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였습니다. 귀족은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육예를 두루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예, 악, 사, 어, 서, 수를 모두 익혀야 했지요. …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 나는 이러한 ‘얼개를 아는 힘’, ‘육예를 두루 익히는 힘’이 지금 시대에 재발견되어야 할 개념이라고 생각하며, 올해는 이 공부에 한 목숨(?) 바치고 싶다는 각오를 던진다. ㅎㅎㅎㅎ


12월 14일
학기말 자유학기제 캠프
 
지난 주에 이어서, 당산서중 교육이 있었다. 6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들어가서 같은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것. 끝나고 느낀 것은 절반의 성취감과 절반의 아쉬움이다. 우선, 성취감은 있다. 내가 워낙 잘 못 하는 영역 (단체 교섭 및 교육 및 단일 프로그램 구성 등등)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배운 점도 많았기에.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사실, 나는 모든 교육은 그걸 진행하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달랐음 한다. 각자 개성과 강점이 다르고, 그게 100% 발휘될 수 있을 때 교육생들도 만족하는 법이니까.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교육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장단점도 있다. 그런 교육일수록 더 실험적이고, 망할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선 ‘안정’을 더 중요시한다. 예전 성인 대상 교육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특정 콘텐츠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되는 것이다. 만족도가 높게 나와야 하기에. 결국, 결과가 보장될 수 있는 게임을 활용한 교육이 선호되고, 계속 열릴 수 밖에 없는지도 이제는 이해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교육 비즈니스가 아님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실험소’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펼쳐지는 학교. 학생들도 선생도 모두 공부하고, 실험하고, 성장하는! 나는 무엇보다 그런 모델을 꿈꾼다는 사실을 알았다. 많은 것은 배운 경험이었다. 


12월 15일
연지원 선생님 멘토링

연지원 선생님은 올해 맺은 인연 중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 중 한 명이다. 알고 있었던 것은 꽤 되었지만, 얼굴을 직접 본 것은 작년 이맘때니, 그리 오래된 인연은 아니다. 하지만 1년 동안의 와우 수업을 듣게 되면서 가깝게 인연을 맺었다. 오늘은 1:1 멘토링이 있던 시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딱 지나가버린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블랑에서 대화하다가 저녁은 홍대밀방에서 먹고, 저녁에 연남동 낙랑파라로 옮겼다. 관심사나 주제가 어느 정도 비슷해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끊임없이 대화하고 하루 종일 웃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만나기 전, 선생님이 허리를 삐긋하는 바람에 중간 중간 꽤나 고통스러우셨으리라는 것. 허리를 아파보았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주로 나눈 주제는 올해 1년을 돌아보기 였고, 선생님의 근황도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주력하는 직업적 역할과 앞으로의 계획도 나누었는데 말하면서 정리되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중간 중간 필요한 조언도 주었다. 뜬금없지만, 나에게 가장 자극이 된 건 ‘시간관리’였다. 한창 젊을 때는 5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말에서 ‘나는 어느 정도의 시간 단위’를 아까워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1시간 정도 그냥 쓰는 건 너무 아깝지 않아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볼 책이 많고, 할 공부가 많은데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이다. 그 ‘시간 단위’를 좁혀나가자. 그게 의외로(?) 꽤 와닿았던 멘토링 시간이었다. 


12월 16일
한가로운 저녁 시간 

엄청 추운 날이었다. 오후에 나의 사무실(?) 망원역 스벅에서 일하다가 아내와 재원이를 만났다. 원래는 홈플러스도 가고 좀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매서워서 망원시장만 둘러보다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뭐 먹을까? 하다가 소고기 무국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무 하나랑, 재원이 먹을 유기농 야채랑 딸기만 사서 왔다. 집에만 오면, 재원이는 활동 시작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나는 뒷꽁무니 따라다니느라 바쁘다. 그렇게 내가 돌보는 사이에, 아내는 저녁을 준비했다. 아내가 중간에 이런 말을 했다. ‘저녁 준비 할 맛이 난다’고. 왜냐믄, 평소 내가 집에 별로 없으니 저녁도 안 챙겨먹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데 뜨끔했다. 미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12월에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재원이를 재웠다. 그리곤 안전망을 설치했다. 그간 재원이가 워낙 활발해서 부엌에 들어오는 걸 막느라 고생이 많았기에. 다 설치하고 누우니 벌써 10시다. 얼른 자자. 


12월 17일 - 19일
보람찼던 3일

내 예상에, 내 일정은 12월 중순이면 아주 여유넘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17일, 오늘도 하루종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주로 했던 것은 와우광땡 12월 수업 축제 준비다. 다음 주에 정말 푹 쉬고 싶었기에, 오늘 모든 일을 다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다보니, 쉼 없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뿌듯했다. 요즘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글쓰고, 일하기를 반복하는데.. 그게 참 마음에 드는 일상이란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18일. 오늘은 오전에 유유님과 만남이 있었다. 한 1년 반 정도에 1번 정도 보는 것 같다. 예전에 코칭 공부할 때 만났던 분인데, 지금은 학습 코칭 쪽으로 관심을 두고 일하고 계시다. 공동 육아에 대해서 선배시기도 하시고, 또 의식이나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도 오랜만에 다시금 정신이 바짝 들었다. 깨어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기도 했고. 사실 깨달음은 깨어있음이 자주 출몰하는 상태이기에. 그리곤 오후엔 은성중에서 수업이 있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과 대화를 나누는게 난 왜이리 즐거울까. 강의보단 이런 식의 소규모 수업이 훨씬 즐겁단 생각을 했다. 19일엔 원래 구미에서 강의였다. 하지만, 취소되었다. 중학생 신청자가 너무 적어서란다. 허긴 시험이 끝나는 지금 시점에 수업 들으러 오는 사람이 많을리가 없다. 덕분에 생긴 여유 시간 때문에 우린 즐거운 토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12월 20일 - 23일
영원처럼 길고, 정신없이 짧았던 시간

일요일 오후, 부모님께 연락이 왔다. 사실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다. 내일 수업을 앞당겨서 진행하기로 하고, 바로 대구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내와 재원이는 두고 가고 싶었지만, 실랑이 끝에 결국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많이 떠오른 장면은 희안하게도 중학교 다닐 적, 할머니와 산에 가던 모습이었다. 나는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편이 아니었다. 소수의 친구들과 놀거나, 집에 와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이 다 였다. 그러던 나를 보던 할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 동네 산에 함께 올라가자고 권하셨다. 집에 가만히 있음 사람이 처진다고. 그래서 난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이면 할머니와 함께 산을 많이 올랐다. 그래봐야 동네 언덕이지만, 그래도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할머니와 수다도 떨고, 운동도 했다. 사실 별거 아닌 기억이다. 하지만, 할머니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기억이긴 하다. 누군가와 함께 보낸다는 건, 그 절대적 시간은 참으로 가치있다는걸 세삼 느낀다. 그렇게 다음 날, 나는 매형차를 얻어타고 대구로 내려갔다. 차에서 재원이 때문에 힘들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잘 자주는 덕분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재원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성주 요양원에 마련된 장례식 장에 갔다. 친척들이 미리 와 있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다들 얼굴을 보기 힘든데, 슬픈 와중에도 반가웠다. 이런 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느낀다. 가족만이 가져다 주는 그 특유의 연대감을. 그리고 그 소중함을. 할머니께 절을 드리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친척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밤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와 재원이는 내일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매형의 도움을 얻어서 다시 대구로 갔다. 나와 매형만 새벽에 다시 오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결정이 정말 탁월했다고 본다. 실제로 다음 날까지 재원이와 아내가 계속 장례식장에 있었다면 나는 정말 멘붕이었을 것이다. 새벽 4시부터 내내 정신없었으니. 발인을 시작했다. 나는 지난 번 할아버지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영정 사진을 드는 임무를 맡았다. 발인을 마치고 차에 탔다. 화장하는 곳으로 갔다. 지난 번에도 그렇고. 나에겐 이곳이 가장 슬픈 곳이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할머니만 본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아내, 그리고 재원이의 모습마저 떠올린다. 이런 생각도 한다. 변하지 않는 두 가지 사실. 우린 태어나고, 또 죽는다는 것. 사람은 선택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 사건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냐는 것. 수 많은 질문과 기억이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화장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는 영천의 호국원이었다. 할아버지가 6.25에 참전 하셨기 때문에, 할머니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옆에 나란히 놓여진 할머니를 보았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리 잘 맞는 인연은 아니었다. 두 분이 싸우지 않고,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니. 이제 다시 만나셨다. 하늘나라에선 어떻게 지내실지 궁금하기도 하다. 제사를 드렸다. 이후 절에가서 다시 한번 공양을 드리고 집으로 왔다. 숨가쁜 하루였고, 많은 생각이 올라오고 사라진 날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뭔가 싶기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도 된다. 


12월 24일 - 27일
2015년의 크리스마스 

아내는 크리스마스를 특별히 여긴다. 그래서 2013년 우린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작년에는 출산 준비로 재원이 방을 꾸몄고. 올해는 싱크대를 만들었다. 재원이와 아내의 역할극을 위한 미니 주방을. 사실 장난감이라고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정말 거대한 작업이었다. 만드는데 총 소요한 시간은 7시간에 가깝다. 가구 하나를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손이 필요하구나. 라는 단순한 진리를 얻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긴 했다. 생각이 없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하지만 나에게 적합한 경험은 아니었다. 나란 사람이 잘 하는 일과 못하는 일에 대해선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느려터진 나의 손과 발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기억나는 건 재원이 밥 먹이기와 놀기. 이번 연휴에는 난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맛 보고자, 노력했다. 그랬더니 얻은 수확이 있다. 이제 재원이가 ‘아빠 아빠’를 곧잘 외친다. 과거에 아무리 알려주려고 했어도 잘 말하지 않았던 아빠를 이젠 잘 한다. 역시 ‘절대적 시간’은 중요하다. 재원이가 내 얼굴을 확실히 익히지 않았을까 싶다. 아. 그렇지. 하나의 수확이 더 있다. 바로 '영화보기'다. 아내와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인턴>을 다 보았다. 다소 뻔한 내용이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영화에 푹 빠진 아내를 보는 것이 나에겐 더 큰 즐거움이었지만. ㅎㅎ 그렇게 조용하게 올해도 지나가고 있다. 


12월 28일
오늘 아침, 베트남 커피와 함께

얼마 만에 오는 낯선 카페인가. 새로운 경험과 맛을 중요시하는 나이지만, 딱 하나 고정적인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카페다. 나는 주로 망원역과 합정역의 스타벅스를 이용한다. 그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주로 카페에 머물게 되면, 나는 꽤 오래 일한다. 그래서, '가장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큰 규모의 카페를 선호하는 편이다. 작은 카페에서 오래 앉아있는건 왠지 민폐라고 느껴지지만, 스벅은 그런 느낌이 덜하다. ㅋㅋ 오늘 아침엔 수원 화서역으로 왔다. 근처 강의가 있기에, 미리 도착해서 일하려고 앉았다. 주문하려고 하는데, 베트남식 사이공 커피가 있더라. 연유를 넣어먹는 맛이라고 들었는데, 호기심에 한번 시켜봤다. 맛있다. 일단, 커피가 달달하니 겨울에 먹기 좋은 맛이다. 이제 다시, 일주일의 시작이다. 일상으로 복귀한 느낌이랄까. 오늘 월요일과 지난 주 월요일과의 간격은 꽤 크다. 이제, 일 하자. 


12월 29일 - 30일
영화 '사도'를 보고

어젯 밤과 오늘 오후에 걸쳐서 영화 ‘사도’를 봤다. 스토리는 간단했다. 사도세자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밀도는 그리 얕지 않다. 이 사건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중의 하나다. 그래서 온갖 드라마와 영화로 많이도 등장했다. 영화가 끝나고 좀 더 살펴봤다. ‘한중록’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비극의 시작은 사도가 1살때 세자로 책봉된 것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부모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야할 아기가 세자가 되고, 떨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애정 결핍’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에 비해 영조의 기준은 높기만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게다가 영화를 봐도 사도는 그림과 춤, 무예를 좋아하는 아이다. 만약 그 강점을 살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아이의 입장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사도 입장에서 보면 그가 이해가 되지만, 영조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사랑했음 세자로 책봉했을까. 하지만, 지혜롭지 않은 자의 최선은 최악을 결과를 낳는다. 마음도 좋요하지만, 그 마음을 지혜롭게 표현하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 그 조그만 아이에게 세자로서의 책임감이 아닌 사랑받는 느낌만 충분히 주었더라고 이런 결과가 일어났을까 싶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이러한 내용과는 별개로,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사관’의 존재다. 영조가 하는 말 중에 ‘너는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라는 어조가 많이 나오는데, 왜냐면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사건이 후대에 기록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하는 행동이 모두 누군가에게 보여지게 되고, 이야깃 거리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인간이 타자를 인식하는 순간, 게다가 후대를 머릿 속에 넣는 순간, 그가 판단 기준은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선대의 좋은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시대에는 후대를 유념하며 살아간다면, 그리고 어떤 유산을 남겨야 할지 고민한다면, 분명 이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사관 제도를 온 국민에게 도입한다면 어떨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12월 1일
서일대 창업캠프

우연히 알게 된 업체가 있다. 작년 한 대학교 강의에서 인사를 주고 받았고, 그 이후로 연락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헌데 두달 전 10월에 창업 강의로 오랜만에 연락이 왔고, 그 이후에 한달에 2번 정도씩 강의 의뢰를 맡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어떤 방식으로 인연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작은 인연도 모두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도 사업계획서 작성에 대해서 강의를 하러 갔다. 지난 번에 한번 가 보았던 서일대인데, 271번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유독 버스 타는 걸 힘들어 한다. 가면서 책을 보기도 힘들 뿐더러, 진짜 문제는 멀미다.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암튼 2시간 가까이 걸려서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는 잘 진행되었다. 창업경진대회 나가는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집중력도 좋았다. 중간중간 학생들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나는 그걸 대답해 나가면서 진행했는데 나는 이런 강의가 좋다. 짜여지지 않고, 그 순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전달해 주는 것. 기존에 경영과 마케팅에 대해서 공부해 놓은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되었던 느낌이다. 


12월 2일
규선이형

오늘 오후엔 사당에서 규선이 형을 만났다. 규선형과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서 모임을 찾고 있던 나는, 아카야라는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상당히 (?) 용기있게 자신이 공부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올리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방문을 했지만, 몇번 들리면서 꽤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지금의 정선이도 만났고 말이다. 그곳에서 첨 규선이 형을 만났다. 최근에 본 것은 작년이다. 퍼실리테이션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말씀하셨고, 지금은 국제 공인 자격증도 딸 정도로 전념하고 계신다. 오랜 인연을 만나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과거를 공유할 수 있는 것도 그렇지만, 그러한 인연을 토대로 뭔가 재미있는 일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선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친해지는 경험으론 ‘말과 행동의 일치’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에. 이번에 규선이 형과 대화하면서 그런 것도 느꼈다. 이 세상은 너무 좁다는 것.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형도 잘 알고 있고, 평판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더 착하게 살아가야 겠단 결론을 내리며 대화를 마쳤다. 


12월 3일
강의보단 멘토링

오늘은 오전에 사당에서 마션 프로젝트 미팅을 마쳤고, 오후에는 창업 멘토링을 진행했다. 지난 화요일에 창업 강의가 있었고, 오늘과 내일 10시간에 걸쳐서 멘토링을 진행하는 과정이었는데, 1시간에 1팀씩 5시간을 내리 만나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런 마음도 있었다. "다들 빠지지 않고 열심히 멘토링 받으러 올 수 있을까?” 대학생들 대상으로 진행할 때, 약간의 소극적인 참여를 경험한 적이 있기에, 10팀 중 몇몇은 빠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랐다. 다행히도, 아무도 빠지지 않았고, 게다가 소극적이지도 않았다. 나에겐 쉴 틈을 주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의미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느끼는 것이 더 싫으므로. 오늘은 5팀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했는데 하면서 나도 참 좋았다. 몇몇 친구들은 내 말에 정말 집중해 주었고, 나 역시 그들의 생각에 집중했다. 멘토링이나 코칭은 분명 강의보다 더 많은 공과 시간을 쏟아야 하지만, 만족도는 훨씬 높은 것 같다. 지난 번 자기소개서 멘토링을 할 때도 이런 기분을 느꼈다. 나는 분명, 강의 보다 이런 식의 만남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앞으론 이런 기회를 더 늘려보자는게 나의 생각이다. 아, 창업 멘토링에서 내가 중점은 둔 것은 딱 2개다. 디자인씽킹 덕분에 나의 메시지도 간단해 졌다. 1. 그게 진짜 가치있는 문제인가? 누구에게 피드백 받아봤는가? 공감이 되는 문제를 정의했는가? 2.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실제로 개발해 보았는가? 이 두가지 질문이 창업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학생들도 꽤 동의했다고 느낀다. 


12월 4일
최악의 하루

아, 최악이다. 요즘 재원이가 몸이 안 좋다. 어제 밤부터 그랬는데, 체온이 38도까지 올라가고 중간 중간 계속 잠에서 깼다. 아기가 잠에서 깨면 부모도 잠을 못 잔다. 헌데 어젠 평소보다 그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보통은 아내가 토닥토닥 하면 금방 잠들곤 하는데, 더웠는지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 거의 2시부터 2시간 정도를 잠을 이루지 못했고, 우리도 그랬다. 그 이후 평소에는 금방 잠이 잘 들던 나였는데 왠일인지 2-3시간인가 뜬 눈으로 있게 되더라.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이미 깨버린 이상 어려웠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저녁쯤이면 녹초가 된다. 하지만 같은 일이 또 발생하고야 말았다. 이번엔 11시에 잠을 들려고 하는 순간부터 그랬다. 그렇게 잠을 못 잔지 지금 거의 4시간이 지났다. 중간에 아내와 다투기도 했다. 내가 인내심이 부족하니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되고, 아내도 무척이나 예민했다. 아 최악이다. 좀만 더 참을껄. 이게 새벽에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힘들게 재우면 너무 쉽게 깨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하더라. ㅠㅜ 어찌해야 하나. 부모가 되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12월 5일-6일
삼성 크리에이티브 멤버십

지난 1년 반 동안의 최종 결과물, 미밈 마을이 거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 SCM 수업에선 지금까지 프로토타입 수준이었던 미밈마을을 확실하게 제작하는 미션을 주었다. 그리고 ‘몰입하는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앞부분엔 ‘개별 시나리오’를 직접 그려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3개의 장면을 그려냈고, 발표하면서 우리 마을의 이미지를 함께 상상할 수 있었다. 거의 두시간 정도 진행된 실제 제작에서 아이들은 놀라운 준비성과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몇몇은 내가 말은 뚝딱 하면 그걸 귀신처럼 만들어서 가지고 오는 재주를 가졌다. 보면서도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미래 자신의 이상적 모습'을 계속 상상해보길 원했다. 누구와 일하길 원하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길 원하는지 생각해보길 원했다. 그러한 지속적 상상 속에 진짜 자신만의 자아의 신화를 살기 위한 에너지와 자양분을 얻게 된다고 믿기에. 그리고 그 장면이 아무리해도 생생하게 그려지지 않으면, 그건 사실 자신의 꿈이 아닐 수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도 있기에. 1년 반이란 시간이 끝나간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이 다음 주 인데, 의미있고 재미있게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찾아온 일요일, 설사에 몸살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몸이 아프면 다 필요없더라. 건강이 최고더라. 


12월 8일
할머니 소식

어젯 밤, 아내에게 우리 엄마랑 할머니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최근에 너무 무리하는 바람에 대상포진에 걸려서 한참을 고생했고, 할머닌 많이 위독 하시단다. 산소호흡기를 부착하신 상태로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식사는 못 드시는 상태고. 아이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특히 할머니 소식은 쉽게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상태가 괜찮았을 때 할머니를 본 것은 2013년 설연휴가 마지막이다. 그때만 해도, 약간 오락가락 하신 상태였으니, 그렇게라도 봐서 다행이란 마음이 든다. 그 이후로 할머닌 요양원에 계신다. 거의 3년의 기간이구나.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소식을 듣고, 미안하단 마음과 죄책감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갔다. 한번씩 전화를 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연락하는데 게을렀던 나의 철없던 20내가 원망스러웠다. 오늘 새벽이었다. 요즘 재원이가 3시쯤 되면 잠에서 깬다. 그리곤 한참을 설친다. 1-2시간 정도를 말이다. 아내는 완전 넉아웃이 되고, 나는 4시반쯤 일어나서 포대기를 했다. 그러곤 한참을 재원이를 안고 마루를 걸었다. 자장자장 하면서 재우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가 어떻게 자랐는지. 그리고 지금 얼마나 슬픈지. 할머니랑 산에 다니던 추억도, 시장에 다니던 추억도 있는데, 하면서 한참을 말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12월 9일
우리나라 교육이란?

오늘은 안양에 계신 유진쌤과 세은쌤과 만난 날이다. 캠프 관련해서 만났는데 오랜만에 즐거웠다. 특히 좋았던 것은 학교 주위의 설산 배경이다. 아침에 일찍 간 바람에 산을 조금 걸었는데, 한번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아침의 찬공기가 폐까지 그냥 들어왔다. 숨통이 저절로 확 트였다. 이렇게 공기가 맑은 곳에서 공부하는 이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알게된 학교 규칙은 나에겐 너무 슬픈 현실이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고등학생들의 경우 취침시간이 12시 반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들 그렇게 공부하고 있다는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하니 너무 슬펐다. 군대에서도 심지어 10시에는 잠을 자도록 하는데 한참 자라나야 할 학생들이 무슨 죄인가? 이것을 단순하게 하나의 사례로 보는 것은 너무 좁은 시야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현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다. 현 교육을 잘 실천하기로 한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순환논리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은 아직 너무나 이상적인 것일까. 그런 고민을 했던 하루다. 아이들이 모두 9시쯤에 자고, 새벽 5시에 깨서 보고 싶은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그런 모습이 나는 왜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까. 




12월 10일
심톡이란 씨앗

오늘은 오전에, 그리고 저녁에 한번씩 미팅이 있었다. 오후엔 오롯하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적은 몇번 있었지만, 대부분은 해야 할 일에 치여있었다. 그래서 뭐랄까 나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이 없었다고 해야할까. 오늘도 할 일들을 가득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었다. 올해 4월쯤 이런 시간이 있었는데, 그리고 나선 거의 8개월 만에 맛보는 휴식같은 하루였다. 하기로 한 일도 별 무리없이 끝냈다. 오늘 하나 의미를 찾자면, 그건 바로 심톡의 재발견이다. 오전에 여름이 회사에서 미팅이 있었다. 내년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관련해서 미리 들어보자는 것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성찰과 심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담당자분이 상당히 흥미로워 하시면서 다음에도 초대해 달라고 하셨다. 저녁에도 그랬다. 원재님이랑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 나누면서 심톡 재미있게 봤다고 하셨다. 우리 입장에선, 그저 우리가 좋아서 하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에 호의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꼭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그저 신나는 마음으로 씨앗을 뿌리다 보면 언젠간 열매가 맺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올해 심톡을 정리하는 포스팅 한번 하고 싶다. 사진부터 취합하기로. 


12월 11일
하루치기 가족여행 

그간 바쁜 일정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하루 종일 시간을 냈다. 요즘 세상에 가장 값진 자원은 시간이 아닐까. 시간 내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다. 오전에 산부인과도 갔어야 했고, 이후엔 명동으로 갔다. 사실 재원이가 태어나고 나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의 절반은 이유식 먹이는데 쓰인다. 어디를 가든 수유실이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고 말이다. 명동에 가자마자 역시 밥부터 먹였다. 밥먹이고 나니 벌써 오후 2시. 우리도 아웃백으로 밥먹으로 갔다. 그리곤 명동 좀 돌다가 광화문으로 고고. 아내가 꼭 사고 싶은 펜이 있다고 해서, 교보문고까지 걸어갔다. 다행히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나도 아내도 오랜만에 이렇게 걸으니 기분이 좋아서 많이 장난치고 웃었다. 물론 이젠 예전처럼 자유롭지도 못하고, 활동적으로 노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이 좋다. 아가 덕분에 웃을 일이 많아서 좋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는 느낌도 좋다. 바쁜 일정 중 짬짬히 시간만 내면, 이렇게 평일에 얼마든지 놀 수 있는 나의 직업도 좋고 말이다. 


12월 12-13일
마지막 SCM

토요일. 오늘 삼성크리에이티브멤버십 마지막 수업이다. 지난 2년 동안 격주 토요일은 압구정에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앞으론 어떻게 될지.. 한편으론 걱정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론 기대도 된다. 특히 이번 2기랑은 정말 많은 정을 쌓았다. 지난 번 1기는 아쉽게 1학기 밖에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에, 그런 마음이 덜 한데.. 2기는 오롯히 1년 반이란 시간을 보내서일까. 그 사이에 아이들과 대화도 비교적 많았고, 다들 저마다의 성장도 뚜렷히 보여서 그런지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마지막 시간, 우린 미밈마을의 첫번째 축제란 이름으로 지난 3학기를 돌아봤다. 시험 기간이라 많이 오지 않으면 어떻하나.. 란 걱정을 했지만, 1명을 제외하곤 모두 와 주었다. 완전 감동! 축제 준비를 했다. 아이들에게 완전히 일임한 작업이었음에도 누구도 놀지 않고 각자 역할에 충실해서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없어서 다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준비한 프로그램도 알찼다. 마지막에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나의 길을 갈테니, 여러분도 여러분의 길을 가라고.. 외롭거나, 힘들어도 누군가 길을 가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난 정말 그런 마음이다. 아이들이 여기서 발견한 자신만의 꿈에 정말 가까이 갔으면 한다. 그 과정이 어렵겠지만, 방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이뤄갔음 좋겠다. 그걸 위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보다 더 멋지게 살아가고, 더 많이 성장하면 된다. 그렇게 다음에 만나서 웃으면 된다. 일요일은 대구에서 올라온 부모님과 함께 누나집에 갔다. 태어난지 이제 2주 정도 된 선우보러~ ㅎㅎ 갓난아기 보니깐 울 재원이 그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 아이고 언제 키우나 싶다. 오랜만에 그렇게 가족과 함께 보낸 맘편한 주말이었다.  



11월 16일

태극권 회고 

오늘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태극권 시작했다! 느낀 점을 적어보자 1. 고유성 다음 탁월함이다. 어깨은 원래 자유롭고 고관절은 원래 강하다. 그걸 돌려놓는 것이 첫번째! 음과 양을 먼저 굳건히 하라. 그러고 나서 어깨를 단단하게. 고관절을 자유롭게 만들면 뭐든 있다. 2. 일단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와야 좋다. 무조건 시키는대로 하라. 3 정도 하다 보면 몸이 포맷 되니깐 힘들어도 계속 나와라. 첨엔 고수에게 배워야 하는데 것이다. 3. 나의 각오. 동작을 망치든 뭐든 결코 몸에 주의는 놓치지 말자. 시선을 외부로 뺏기지 말고 내부로 향하자. 그게 내가 최선의 미션이다.
 

11월 17일
커뮤니티 디자이너 과정 마무리 

지난 4-5주였나, 가장 바쁜 스케쥴이었던 화요일 일정이 이제 하나 끝났다. 다음 주면 모두 끝난다. 오전에는 검단초 토론을 했다. 아이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참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토론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단 의견이 많았다. 나야 말로 감사했다. 고녀석들 덕분에 화요일 오전은 언제나 웃을 일이 많았으니. 오후 일정은 용마중이었다. 가서 수업을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한 녀석이 늦게 들어왔기에 뭐라고 했는데, 그 녀석의 대답이 건방졌다. ‘놀았으니까 늦었겠죠?’라는 식으로 말했었나? 암튼 내 기분이 상했다. 인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는 잠깐 수업을 멈추고 그 녀석들을 엄청 꾸짖었다. 꾸짖는 내 모습도 싫었고, 이런 상황 자체도 짜증났다. 사실 저 학생이 뭐가 잘못일까 싶기도 하다. 흠. 고민이 많다. 저녁에는 SCL에 갔다. 6차시 수업의 마지막! 잘 마무리 하고 싶었지만 욕심처럼 잘 되진 않았다. 특히 시간이 모자라서 성찰을 못했다는 크나큰 오점을 남겼다는 ㅠㅜ 뭐, 그래도 6주 동안 프로젝트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집에 들어와서 뻗었다. 


11월 18일
두번의 만남

오늘도 오전엔 태극권이다. 나의 뼈들이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어쩔 수 없다. 한 가지 느낀 점은, 나에게 어느 정도 맞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리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에 사당에서 용마중, 당산서중 수업 준비 미팅이 있었다. 다들 젊은 친구들이었고, 삶에서 발휘한 용기가 있었고 게다가 유능했다. 저녁에는 경기도 진로교사 분들과 함께 하는 디자인씽킹 워크샵이 있었다. PXD 송영일 팀장님이 메인으로 진행했고, 나는 수연님과 함께 보조로 있었다. 다음 주엔 내가 강의를 해야 하기에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오늘 돌아오면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과정을 만들어 갈 것인지. 우선 중요한 것은 DT수업을 한다면, 그 수업 준비 자체도 DT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교육에 오시는 분들의 RVP가 무엇인지 명확해야 한단 생각을 했다. 여기 오는 분들은 명확하다. 아이들에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담, 그 어려움과 우려를 듣고, 관심사에 따라 조를 편성해서 DT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아이데이션을 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중요한 것은 진짜 문제를 찾는 것이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란 생각만 들면, 그것에 내 것만 되면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하니까. 그리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로 가자! 고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걸 꼭 말씀 드리고 싶다. 다시 말해서 DT는 절대 방법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삶의 ‘태도’에 가깝다. 매 순간, 진짜 문제를 고민하고, 더 공감하고,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은 DT를 배우지 않았어도 DT를 체득한 것과 같다. 앞으로의 불확실성의 세계에 아이들이 적응하게 되려면 그러한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하나의 옷이다. 일단 입어보자는 것. 맘에 안 들면 벗으면 된다.  


11월 23일
심톡 춤 테라피

저녁, 순환청작소에서 심톡이 열렸다. 본격 춤 테라피! 주제가 꽤 생소하다 보니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오셨다. 나에겐 이렇게 새로운 주제로 진행해 보는게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몸과 친해지기도 좋았고 후반부에 신나게 춤췄던 것도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몸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나 자신을 위해 산다는 느낌이었다. 몸에 관심을 가져주니 몸도 좋아하고 있단 반응을 준다. 이번에 이렇게 진행해 보면서 우선 평생학습 학교처럼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각자의 재능을 연결해주는 일. 내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11월 24일
토론 수업 마무리 

토론 수업이 끝났다. 검단초등학교의 마지막 수업이다. 아이들의 성찰이 참 좋았다. 전반적으로 나의 느낌을 말하자면, 이제 감을 좀 잡을 수 있었다. 다양한 주제와 그 주제를 품은 이야기로 철학 토론을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다만, 이야기와 철학 주제 그리고 철학자들과 연결점을 만들면 더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전체적으로 ‘토론의 즐거움’을 느꼈단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러한 피드백이 나에게 힘이 된다. 특히 3학년들은 아직 순수함이 있어서 그런지 나도 더 어려지는 기분이었다. 참 고맙다. 



11월 25일
교사연수 리뷰 

경기도 곳곳에서 오신 진로교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연수를 진행했다. 가끔 교사연수를 진행하지만, 매번 할 때마다 선생님들의 놀라운 습득력과 집중력에 놀란다. 이번에도 그랬다. 4번째 시간임에도 출석률과 참여도는 대단했다. 나 역시 교사연수는 참 즐거운 시간이다. 워낙 알아서 잘 하시기에 불안함도 거의 없다. 이번엔 특히 나 역시 편안하게 진행했단 느낌이었다. 이번 수업 시간이 마음에 든 이유를 적어볼까. 1.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선생님들과 처음 수업을 했다면 그러지 못했으리라. 그러다 보니 말투도 조급하지 않았고 천천히 하나하나 이야기나눌 수 있었다. 2. 선생님들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공간을 많이 열었다. 생각을 하시고, 나누시고, 발표하는 것을 반복했는데 그 과정이 꽤 자연스러웠다. 나 역시 이런 프레임이 참 좋았다. 3. 공감에 대한 접근이 좋았다. 예를 들면, 디씽의 특징을 써보게 하고 발표하게 하고, 뒤 이어 나 역시 공감한다면 손을 들어달라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자연스럽게 ‘연결’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고, 서로 성장을 도우려는 의지가 너무 좋았다. 매 수업이 이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11월 26일
논객 유시민

시간 참 빠르다. 오늘은 성수동 카우앤독에서 하루 종일 보낸다. 공간의 느낌이 참 좋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환경에서도 중간 중간 딴짓들을 하는 나를 본다. 딴짓을 하지 말자고 일일 목표도 세웠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지난 번 화제가 된 밤샘토론에서 유시민 작가의 주장을 모은 영상을 본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논객 중 하나인 유시민 작가의 주장의 핵심은 3가지다. 1. 각자 생각은 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권력을 이용해 주입하려 하지 말라. 그것은 졸렬하다. 2. 생각의 차이는 보존되어야 하며, 경쟁되어야 한다. 시장에 붙으면 된다. 더 설득력 있게 지식인이 싸워야 하지, 권력의 뒤에 숨으면 안 된다. 3. 우리 사회를 멸균실로 만들려 하지 말라. 되려, 면역력을 높이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다원화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명쾌했다. 지식인의 역할은 이것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때론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더 많은 생각들이 꽃피어날 수 있게 돕는 것.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아 참! 오늘 우리 누나의 아들이자 나의 조카, 우유가 태어났다! ㅋㅋ 세상에 나온 것을 축하해!  

11월 27일 
디자인씽킹 교사모임의 성찰 

오늘은 집에 있다가 교사연수를 마무리 하러 수원으로 갔다. 그것보단 어제 적었던 성찰을 나누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적어본다. 어제 목요일 저녁에는 오랜만에 디자인씽킹 교사모임 (렛츠디)이 있었다. 각각의 자리에서 ‘체인지메이커’ 양성을 위해 애를 쓰는 재야의 고수들ㅋㅋ(선생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다. 나야 뭐 가면 언제나 한 수 배우고 온다. 박영준 코치님의 진행으로 2015년 성찰을 진행했다. 나에겐 3가지가 있었다. 1. 기다림과 마주침 2. being 3. 재미와 의미의 변증법. 일단 기다림과 마주침은 이런 의미다. 내가 하고 싶었던 교육의 형태가 올해 들어서야 갖추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2012년에는 아띠로. 2013년에는 캠프로. 2014년에는 진로수업과 대안학교에서. 2015년이 되어선 공교육에서 그리고 교사연수에서 디자인씽킹과 체인지메이커 교육을 다루고 있는데, 그러한 변화가 참 의미있었다. 뜻을 품고 기다리면 결국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배운다. 두번째는 이러한 수업의 핵심은 교사의 존재방식이라는 것. 그저 알려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가져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는 것. 그렇게 성찰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과 교류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표준화를 싫어한다는 것. 나는 디자인씽킹을 접하는 사람들이 이 개념을 각자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다 다른 방식의 접근이 이루어지길 원한다는 것. 그렇게 서로 다른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가끔 만나서 피드백을 주고 받고, 다시 흩어져서 실험을 하는 방식. 그런 ‘다원화된 네트워킹 구조’를 내가 원하고 있음이 보인다. 


11월 28-29일
와우 수업과 주말 

참 빠르게 돌아오는 주말이다. 토욜은 와우 수업이 있었고, 일요일은 묵은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은 언제나 그렇지만 이상하게 바쁘다. 예전에 우리끼리 있었을 땐 참 여유있었는데 우리 곰돌이가 태어나고 나선 그런 적은 거의 없다. 밥 먹이랴, 청소하고 빨래하랴, 똥기저귀 갈랴, 재우랴, 이유식 만들랴, 놀아주랴.. 할 일이 2배가 아니라 5배쯤 늘어난 느낌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낮잠이다. 요즘 잠이 참 부족하단 생각이 있었는데 우리 아내님께서 재원이를 재우면서 나도 함께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ㅋㅋ 그래서 재원이 낮잠잘 때 옆에서 같이 잘 수 있었는데, 그게 참 꿀맛이었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간 곳은 코스트코! 장모님과 이모님과 함께 가서 이것저것 물건을 사서 집으로 왔다. 날씨가 꽤 쌀쌀했음에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코스트코 특유의 ‘대량구매’ 유혹에 지지않고 우린 재원이 먹일 한우만 하나 사가지고 왔다. 그것만 해도 57000원이다. 재원이 먹이느라 내 허리가 남아나지 않는다. ㅎㅎ 저녁에는 장모님이 해주신 삼계탕을 먹으며 케이팝스타를 봤다. 내가 유일하게 보는 예능이다. 그리고 밤에는 아내는 애인있어요를, 나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봤다. 그리고 이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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