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의 영향이란 어리석은 신화에 불과하다. 

P.28-29
몇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같은 문장에 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 사람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독서는 우리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원래 비열한 인간은 라신을 읽는다 해도 비열한 인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반대로 선한 사람이 나쁜 책을 읽는다 해서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독서의 나쁜 영향은 그것이 주는 좋은 영향력만큼이나 어리석은 신화에 불과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그러할 테지만 세상은 유익한 것만을 사랑한다. 이런 세상에서 책은 생존하기 위한 길을 걸어왔고, 그래서 문학 또한 도덕적이 되거나 비도적적이 되어야 했다. 


-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독서는 우리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경험에 의하면, 한 두 번의 독서로 대단한 인생 반전을 노리는 사람일수록 진짜 독서가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독서가는 커녕, 단지 책을 통해 자신의 성공과 영리를 추구할 뿐이다. 아마추어 독서가인 나의 기준에서, 진짜 독서가는 책을 통한 변화에 그리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읽어나갈 뿐이다. 독서가들에게 독서는 마치 삼시새끼와 같다. 아무리 좋은 밥이라도 한 두끼의 밥이 우리의 건강을 변화시키지 못하듯, 책도 그렇다. 정말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심지어 ‘꾸준한 독서’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그저 아주 살짝 더 온전한, 인간다운 인간,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운이 나쁘면 이것도 요원하다. 그게 내가 책을 읽으며 얻는 답이다. 오랫동안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고 '믿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난 여전히 몇년 전에 감동 했던 문장에 새삼스레 또 놀라고, 줄 쳤던 곳에 또 줄치고, 그렇게 위로받는다. 언제나 철이 들까. 언제나 좀 더 나아질까. “수 많은 책 들아, 지금까지 너희는 뭐 했니?” 라고 ‘근무 태만’을 묻고 싶을 지경이다. 밥값이 아니라 책값도 못하는 것들. 그럼에도 또 책을 산다.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내 모습에 대한 놀라운 자각이며,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배움이다. 쉽게 기적을 꿈꿔선 안 된다. 


#2. 책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P.30 
책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저자를 위한 것도 아니다. 책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책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독자를 위해 만든 책은 독자를 소비자로 간주하고 무언가 의도를 품는다. 그 의도가 누군가를 즐겁게 하려는 거시든, 설득하려는 것이든 그런 책은 친절해진다. 문제는 책이 도구로 전락하면서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 볼 때 책은 본래 주제에서 멀어진다. 독자는 독자대로 자신이 자유롭게 판단하고 선택하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는 모욕을 느낀다. 


- 나는 세상의 책을 두 종류로 나눈다. ‘팔리기 위한 책’과 ‘읽기 위한 책’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전자의 책은 ‘수단’이고 후자의 책은 ‘목적’이다. 팔리기 위한 책의 목적은 ‘사람들 손에 쥐어지는 것’이고, ‘읽기 위한 책’의 목적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뭐 그래 봐야 밥 한끼 밖에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책은 '뇌의 소중한 밥이자, 반찬이며, 국이다’ 그 목적을 잃어버린 책들은 세상에 분명 존재한다. 아직 책 한 권 써보지 못한 입장에서, 책을 쓰는 저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다소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의 나에게 말할겸 한 마디 하고 싶다. "니가 나중에 무슨 책을 어떻게 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나무에 대한 예의는 지키자. 이 자식아."

종종 그런 책을 본다. 책의 내용이나 메시지보다 책이 되어버린 나무가 생각나는 책.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는 주는 책, 대중을 속이기 위한 책, 자기 변명을 위해 존재하는 책. 책을 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영달을 꽤하는 책. 책보다 나무가 먼저 생각나게 하지는 말자. 그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어느새 나는 ‘책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나의 목적은 ‘글을 쓰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치약을 짜듯 나의 뇌를 쭉 짜면 글이 쏟아지는 그런 사람. 홀로 독방에 갇히더라도, 혼자 글을 쓰고 그걸 읽으며 자족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나의 목표다. 별거 아닌거 같은데 참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책을 하나 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3. 이기심에서 책을 읽지만, 우린 결국 이타심을 얻게 된다. 

P.39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애당초 책을 읽을 때 이타심 같은 것은 원한 적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 이것이 바로 책의 습격이다. 내가 갈구하는 것. 나는 피해자고, 책은 가해자다. 문제는 피해자는 가해자의 일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어디서 얻어 맞을지 알 수 있을까? 그렇기에 언제나 나는 기습 당한다. 예를 들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을 때 그랬다.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아프가니스탄’ 한 가운데 놓여졌다. 그들의 삶이 들어왔고, 없었던 관심이 생겼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얻었다. 물론, 영화도 그림도 이 역할을 한다.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 바로 ‘타자 되어보기’다. 하지만 책 처럼 충실한 자는 없다. 상상하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그래서 ‘타인’이 되어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이타심을 원하지 않더라도 얻게 되는 것이 독서이며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4. 책은 평화롭게 쉴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P.42 
책이 경전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책은 신앙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며, 작가 또한 신이 아니다. 우리는 작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난도질을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죽은 자들이라도 평화롭게 쉬도록 놓아두는 것에 반대한다. 평화 속에서 영면하도록 내버려진 작가는 이 세상과의 인영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

- 위대한 책은 걸레가 되어야 한다. 유명한 책일수록 더 많이 읽혀지고, 난도질 당하고, 잘리고, 죽는다. 그리고 부활한다. 새로운 컨텐츠로.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비판하지 않는 책도 있다. 그런 책은 그렇게 멀쩡하게 죽는다. 책은 난도질 당해 살아나거나, 멀쩡하게 죽거나. 이 두 가지 결말을 기다리며 태어난다. 책도 이럴진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과,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외로 쉽다.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싸울 일도, 다툴 일도 없다.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 나는 두렵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로, ‘눈에 띄지마’ ‘중간만 하면 된다’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어느새 그렇게 살기가 싫어졌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툰다. 하지만, 멀쩡하게 죽기는 싫다. 난도질 당해 살아남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다. 


#5.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답변

P.91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왜 책을 읽는가?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편견 속에 살면서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어둠은 인식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문학의 일부이다. … 우리는 숨기고 싶은 자신의 결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 마지막 질문.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처음에는 뭐라도 해야 할거 같아서 읽었고, 그것은 어느새 즐거움이 되어 버렸다. 운동도 모르고, 술과 담배도 모르는 나는 인생에서 즐거움이 별로 없다. 그 중 하나가 책이다. 그런 사소한 즐거움을 느끼지만 가끔 ‘커다른 기쁨’도 데리고 온다. 언제 기쁠까? 하나는 ‘발견’이다. 하나의 책을 보고, 그와 연결된 다른 책을 볼 때의 즐거움. 혹은 어떤 책을 보고 그와 전혀 상관없는 책을 보면서 예전의 책이 이어지는 느낌들. 그렇게 책과 책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관성을 '발견'할 때 나는 커다란 기쁨을 맛본다. 두 번째는 ‘깊이’다. 나 혼자선 도달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생각과 성찰에 닿을 때, 그때 경험하는 전율이 있다. 대부분 책의 인도로 따라 가다 보면 얻게 되는 부산물 들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본다. 그 외엔 달리 딱히 할 일도 없고, 이보다 즐거운 일도 없기에. 





#6. 무언가를 가르치는 책들에 대한 혐오

P.94 
나는 문학을 향한 지독히 편파적인 애정 때문인지 무언가를 가르치는 책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 가르침을 목적으로 하는 책들은 문학을 타락시키는 것만 같다. 나는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선호한다. 

-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사실,이 말을 이해하기 까지 꽤 걸린 것 같다.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지금은 ‘가르치는 것’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큰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가르침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책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기억 남는 예시가 있다. 우연히 정유정의 ‘종의 기원’과 조정래의 ‘들풀도 꽃이다’라는 책을 함께 읽었다. 종의 기원을 읽을 때, 그 이야기는 나에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내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라고 되돌아볼 수 있었고, 내 주위 사람들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조정래 작가의 책을 볼 때는 뭔가 ‘탁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계속 화자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래야 한다고. 아니, 저래야 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욕심. 그 욕심이 빤히 보이는 책. 아무리 그 메시지가 의미있더라도, 그 욕심 때문에 진의는 파악되지 않았다. 그리고 피곤했고 책을 덮었다.  


#7. 독서는 선이 아니다.

P.100 
독서는 선이 아니다. 어린이에게는 물론 어른한테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라는 말을 듣자마자 독서에 대한 마음이 싹 사라진다. 

- 내가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은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위인전이 있었다. 남들 다 가지고 있을 만한, 그런 평범한 위인전이었다. 다 합쳐서 60권 정도가 되었을까. 나는 그 위인전에 관한 한 대단한 편식가 였는데, 내 마음에 든 편만 골라보기에 바빴다. 10명도 안 되는 위인들을 반복해서 읽었고, 나머지 위인들엔 손도 대지 않았다. 굳이 왜 안 읽었냐고 하면, 이름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은 위인들을 뭐하러 읽어야 하냐. 그런 생각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편애했던 2명이 있다. 바로, 김유신과 이순신이다. 남자라면, 역시 장군이지. 어럼픗 기억나는 어느 주말이다. 내가 엄마에게 가서 "엄마 나 이순신 이거 5번도 넘게 읽었어!"라고 말했다. 엄마는 아이고 잘했다고 칭찬했다. 별거 아닌 기억이다. 하지만, 나는 기뻤다. 엄마는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에게 그 어떤 책도 읽으라고 권하지 않으셨다. 만약, 그때 엄마가 화를 내며, "왜 그것만 읽어! 너 자꾸 편식할래! 남은 책은 다 버릴꺼야?"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책을 읽지 않을꺼란 극단적 결과까지는 아니어도, 지금보다 덜 흥미로워 했을 것은 분명하다. 책은 놀이와 같다. 철저히 초대 받아야 한다. 거절할 자유도 그의 것이어야 한다. 선택할 수 없을 때, 독서라는 놀이는 노동이 되고 의무가 된다. 독서는 결코 선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놔 두라고' 권한다. 혹은 먼저 읽던가. 독서를 권하는 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많은 경우에, 그건 그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마치 누가 나보고 밥 먹으라고 소리 지르는 순간, 식욕이 싹 사라지는 것처럼. 


#8. 어쩌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까? 

P.216 
책을 읽으며 열정의 도가니에 빠지는 것은 종종 작가가 되기 위한 징후다. 읽고, 또 읽고, 자꾸 읽으면 거의 자동으로 쓰는 단계에 이른다. 어쩌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까? 먼저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일종의 모방작이란 말인가? 책 읽는 사람이 없는 사회에서는 글 쓰는 사람도 없다. 

- 몇년 전에 우연히 인상깊게 본 동화책이 있다. <책 먹는 여우>라는 책인데, 그 여우는 책을 읽고 나면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꿀꺽 먹어 버린다. 서점에서도 먹고, 도서관에서도 먹고. 결국 그러다가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 갇힌다. 형벌은 독서 금지. 어떻게 했을까? 여우는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고, 직접 글을 쓴다. 결국 자신이 쓴 글이 가장 맛있다는게 결론이다. 나는 아직 동의하진 못하겠다. 내가 쓴 글보다 다른 훌륭한 작가들의 글이 더 좋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내 글도 좋아지고 있다. 언젠간, 적어도 나에겐, 가장 맛있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또 노력한다. 


#9. 유년기에 광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의 운명

P.217 / 유년기에 광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필경 작가가 될 운명이다. 만일 그 꿈이 실현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위대한 독자가 작가의 꿈을 접은 것이다. … 명심할 것은 타인의 책이 내 책의 막힌 곳을 뚫어주었다면, 나 역시 내 책의 막힌 곳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 "내가 이러려고 글을 쓰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때때로 자괴감에 빠진다. "이 글이 어떤 가치를,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럴 때 되짚어가며 읽어야 할 문장이다. 맥락을 좀 바꿔보자.  "타인의 책이 내 인생의 막힌 곳을 뚫어주었다면, 내 책도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받았으면, 다시 돌려주는 것.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세상에 놓여졌고, 무언가를 소비하고 파괴하면서 나를 유지시켰다. 그랬다면, 나 역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정당한 사유, 사색 

P.255 
사색이야 말로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가장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결국 독서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피리 부는 사람 앞에 놓인 뱀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반대로, 사색을 제외하고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는 없다. 또한 깊은 독서는 그 자체로 사색을 이끌어 낸다. 평소의 나의 생각으론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독서는 도달하게 한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경험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에 나를 닿게 한다. 그렇제 나의 지평은 넓어진다. 그렇기에, 나는 사색과 독서를 따로 분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어떤 자극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깊이 향하는 것은 중요하다. '무작위적 연결'은 그때 발생한다.  



  1. 조아하자 2017.01.15 22:52 신고

    사실 저도 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실제로 변화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정말 최악의 제 자신에서 최악을 조금 벗어난 제 자신으로 변한 것 정도? 책읽기 전에 저는 뭔가 잘못되면 제 자신을 자해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책읽으면서 이거 하나는 고쳐졌거든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또 글을 써 봅니다. :)

책을 좋아하는 제가 츠타야 서점 이야기를 들은 건 3년 전입니다. 트렌드에 밝은 친구가 일본에 다녀오더니 정말 끝내주는 서점이 있다는 겁니다. 뭐가 그렇게 끝내주냐고 물었더니,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고 그저 자신은 '서점의 미래’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자고로, 서점이란 이래야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 줬다는 것이죠. 책과 서점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후에도 쭉 관심있게 지켜봤습니다. 오늘 소개 해 드릴 책은 바로 그 츠타야 서점을 만든 사람의 책입니다.

“모든 사람이 디자니어가 되는 미래”라는 부제로도 유명한 책,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
그는 과연 어떤 세상을 꿈꾸는 걸까요? 한번 들어가 보시죠.




1. '세계 최초'에서 ‘고객 가치 극대화’로

제가 평소 관심있게 지켜보는 전자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LG전자입니다. 독립 운동을 도와주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뒤로 하더라도, 국내 재벌 기업 중에선 비교적 인간미 있다는 평이 많은데요. 하지만 요즘 LG전자의 상황은 어렵게만 보입니다. 특히 스마트폰 사업 부문의 적자가 두드러지면서 가전이나 TV 부문의 흑자를 갉아먹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나온 V20 스마트폰이 반격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지 궁금한 상황이구요. 헌데, LG전자 스마트폰 기사를 보다 보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습니다. 한번 찾아볼까요? 무작위로 기사 하나를 옮겨보겠습니다.

“LG전자는 9월 7일 공개 예정인 V20 스마트폰에 32비트 하이파이 쿼드 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DAC)를 탑재한다고 11일 밝혔다. LG전자 측은 “쿼드 DAC이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것은 세계 최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고성능 오디오 칩셋 제조 업체인 ESS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V20에 쿼드 DAC를 내장키로 헀다. … 한편 LG전자는 1일 V20이 구글의 최신형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7.0버전을 세계 최초로 탑재하는 스마트폰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 키워드는 바로 ‘세계 최초’입니다. 물론, 멋진 말입니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언제나 멋지죠. 하지만, 그것이 곧 ‘세계 최고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초와 최고는 분명 구별되어야 하죠. 이쯤에서 ‘지적자본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들어보겠습니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와 정 반대의 주장을 합니다. ‘세계 최초’를 지향하지 말고, ‘고객 가치 극대화’를 지향하라고 말이죠.

"나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는 문구를 거의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문구를 쫓아다니거나 흉내 내는 일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대체로 그 말이 나타내는 것은 상품을 판매하는 쪽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경우, 고객이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세계 최초인가, 하는 점보다는 자신에게 얼마나 쾌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 돌이켜 보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라져 버린 ‘세계 최초’는 정말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CCC의 사원들에게 “‘세계 최초’를 지향하지 말고 ‘고객 가치 최대화’를 지향하라.”라고 말한다. ‘가장 우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그것을 오판해서는 안 된다."

세계 최초의 모듈형 스마트폰 G5. 얼마나 멋진 문구인가요. 하지만 적어도 제 주위에서 "앞으로도 모듈형 스마트폰만 써야지!” “이거 진짜 끝내줘!”라 말하는 사람은 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더 암울한 것은 이후에는 모듈형이 사라진다는 소문입니다. 이건 마치 세계 최초를 찾아 끊임없이 표류하는 해적선이 떠오릅니다. 기업이란 배는 결코 표류해선 안 됩니다. 기업의 항로,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는 오로지 한 곳이어야 합니다. ‘고객 가치’라는 목적지. 우린 모두 그곳에 도달해야 하며, 그래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의 기업이 사라질 때 그와 함께 세계 최초의 상품과 서비스만 사라진다면, 그로 인해 아무도 슬프지 않다면, 그건 너무 비참한 일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기업가가 끊임없이 노를 젓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LG전자가 다시 예전처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 잡길 기대해 봅니다. 진심으로 말이죠.


2. ‘고객 가치 극대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서 '고객 가치 극대화'를 하자는 말. 이 말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이 해답을 세계 최대의 쇼핑몰, 아마존에서 찾고 싶습니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1997년 주식공개 이후 주주들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낸다고 합니다. 저는 편지를 읽으며 몇 가지 포인트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 사람은 어떻게 인터넷 산업의 본질을 이렇게 빨리 간파할 수 있었을까?” 리더가 앞으로 바라보는 시야만큼 기업의 크기가 결정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존이 그 좋은 예시라고 봅니다. 그의 1997년, 첫번째 편지를 함께 보시죠.

우리 회사 주주 여러분께.
1997년 아마존 닷컴에는 많은 획기적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연말을 기준으로 고객 수가 150만 명을 넘었고, 수익은 838% 증가해 1억 4780만 달러가 됐으며, 경쟁자들의 공격적이 시장진출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은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비즈니스와 아마존 모두에게 오늘은 ‘첫째 날(Day 1)’에 불과합니다. 오늘날의 온라인 커머스는 고객들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절약해주지만, 내일의 온라인커머스는 개인화를 통해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방법들을 발견하는 과정을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아마존닷컴은 진정한 고객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존의 거대한 시장에서도 지속 가능한 독점적 영업권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18년째 지켜온 아마존 첫날의 서약 day1 P.51)

아직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 되지도 않았던 1997년에 온라인 커머스를 넘어서 ‘개인화’까지 바라본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휴대폰은 커녕 ‘삐삐'를 사용하던 당시를 생각해 보면 정말 충격적인 통찰입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과거 제품 중심의 시대에는 별도의 마케팅이 필요 없었습니다. 만드는 대로 팔리는 시대에는 ‘어떻게 많이 만들까'만 생각하면 됩니다. 이후, 제품과 서비스가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이를 모아두는 플랫폼이 소비자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죠. 외국에는 아마존, 구글, 애플이 있었고 우리 나라에는 옥션/지마켓, 네이버, 카카오가 있습니다. 인터넷 벤처는 모두 그렇게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론 단순히 플랫폼을 제공하는 정로도는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없다고 합니다. 플랫폼 마저도 넘쳐나는 시대, 저자는 우리에게 이제 ‘서드 스테이지 - 제안의 시대’가 왔다고 외칩니다.

"‘제안 능력’ 있어야 한다. 플랫폼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히 ‘선택하는 장소’ 일 뿐, 플랫폼에서 실제로 선택을 수행하는 사람은 고객이다. 그렇다면, 플랫폼 다음으로 고객이 인정해 줄 만한 것은 ‘선택하는 기술’이 아닐까. 각각의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 주는 사람, 그것이 서드 스테이지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객 가치를 낳을 수 있으며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해 주는 자원이다."

앞으로의 시장에서 우리가 제공해야 하는 기획은 이것입니다. ‘나은 삶을 위한 최고의 제안' 그것이 바로 고객 가치를 극대화하는 비결입니다. 여러분은 납득이 되시나요? 생각해보면 츠타야 서점은 책을, 이케아는 가구를 팔지 않습니다. 상품을 팔더라도, 그로 인해 펼쳐지는 ‘라이프 스타일’을 함께 제안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와 상품은 어떠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걸까요? 함께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 상품을 고객이 제안받을 때 어떤 삶을 상상해 낼 수 있을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제안’해야 하는지" 말이죠.

"잡스는 iPhone이라는 물건을 판매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했다. … 물건 자체는 본질적으로 국지적이고 선택적이다. 그래서 마케팅이 존재한다. 타깃을 정하고 매력을 어필하는 수법을 통해 판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물건을 초월해 그 안에 일종의 철학, 바꾸어 말하면 라이프 스타일의 제안이라는 의미가 들어간다면 그 물건을 국경, 인종, 세대, 성별을 초월할 수 있는 날개를 얻을 수 있다."


3. 우리는 무엇을 시작 해야 할까?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제안을 할 수 있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소비자’ 곁에 찰싹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니즈에 맞춰 기업이 가진 관점을 바꾸는 것. 그것이 고객 가치를 만들기 위한 ‘올바른 기획’입니다. 그럴 수록 더 중요해 지는 것은 조직의 ‘지적 자본’입니다. 앞서 사례에서도 보았지만, ‘제안 능력’은 돈이 있다고, 회사가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선원이 많고 큰 배라도 표류하는 한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직원 각자의 '제안 능력'일 수 밖에 없으며, 우리 모두는 소비자의 니즈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부제를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로 정한게 아닐까요? 어쩌면, 그가 꿈꾸는 세상일지로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츠타야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업의 범주를 넘어서 제안합니다. "이런 라이프 스타일은 어때?"라며 새로운 삶을 제안하고, 이 제안에 맞춰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과 서점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합니다. 진열도, 공간도, 다 바꿨습니다. 그것은 고도의 ‘지적 자본’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고객의 가슴을 파고들 수 있는 제안을 몇 가지 정도 생각해 내고 그 주제에 맞는 서적이나 잡지를 진열해야 한다. 이것은 고도의 편집 작업이다. 서점 직원은 말이 아니라 매장의 진열대를 특수한 방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자신이 제안하고 있는 내용을 표현해야 한다. 또한 각 구역의 테마를 결정한 뒤에는 새롭게 출간된 서적 하나하나를 어떤 내용인지 음미해 보아야 한다. 이 서적을 이 공간에 진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그럴 필요가 있다면 어디에 배치해야 할 것인지, 기계적으로 움직여 온, 기존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작업 태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시간과 공력이 엄청나게 소비되는, 아니 그 이상으로 견식과 교양도 요구되는 공정의 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자본론’이다. ‘서적 자체가 아니라 서적 안에 표현되어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는 서점을 만든다.’라는 서점의 이노베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지적자본이 필요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안 능력이 회사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척도가 된다."

"제안 능력이 회사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가?"라는 말은 저에게 ‘소비자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말로 들립니다. 비즈니스는 결국 연애와 같은 것이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 선물이나 하지 않는 것과 같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지는 영 관심이 없었습니다. 특히 연애 초반에 했던 선물은 정말 엉망이었는데, 아내는 물론 웃으며 선물을 받았지만 그 이후, 적어도 제 눈으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죠. 사실 고객으로 비유하자면, 아내는 선물에 관한 한 상당히 까다로운 편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내를 좀 더 지켜봤고, 대화를 통해 성향을 파악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테스트와 시행착오입니다. 7년의 연애 시간동안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결국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 방식을 알아 내었습니다.

최선의 결론은 아내가 선물을 스스로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돈을 내면 됩니다. 웃기죠 ㅋㅋㅋ 분석 결과, 결국 이게 만족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아내는 깜짝 선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기 별로 받고 싶은 선물도 달라졌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스스로 골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꽃이나 작은 선물은 깜짝 선물이든, 뭐든 좋아했구요. 저는 그에 맞췄고, 최근에는 꽤 만족하는 편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렇지만, 또 방심하면 안 됩니다. 언제 달라질지 모르고, 저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결국 이러한 제안 능력을 갖추게 된 이유는 ‘아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라 봅니다. 이처럼 ‘제안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끊임없는 테스트는 이를 가능캐 합니다. 여기에, 왕도는 없습니다.


바쁜 이들을 위한 3줄 정리.

고객은 ‘세계 최초’에 관심이 없습니다. ‘고개 가치 극대화’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기업으로선 고객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최고의 제안’을 해내야 합니다.
이 ‘제안 능력'은 결국, 소비자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테스트로 가능해집니다.


더 바쁜 이들을 위한, 한 줄 정리.

모든 답은 책상이 아닌 고객과 현장에 존재한다.






젊을 때 나 역시 그랬고, 
많은 이들이 아직 그러하고 있다. 
진정성을 부르짓는 자들이 많다. 
나만이, 우리만이 오로지 진정하단다.


진정한 나를 찾아 시골로 어디로 
떠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지만, 
치근차근 읽어나길 만한 인문 교양 책이다. 
개인과 사회, 미디어 등 전방위적으로 
배울 만한 점이 많다.


특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Make America great again
이 구호에 반응했던 시민이 많은 까닭이다.


그것은 얼마나 거대한 사기인가. 
IS가 외치는 이슬람 고전사회로의 회기와 뭐가 다른가.


사람들이 지금 무엇에 불안해하고
어디에 취하고 있는지. 
지금의 세상을 읽어내기에 좋은 책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진정성은 이미 또 하나의 지위경쟁이자,
탁월한 비즈니스 도구가 되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안녕하세요? :) 
오늘 제가 소개할 책은 슬라보예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입니다. 

1. 범인은 누구인가? 
'서울 성동경찰서는 6일 취업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해)로 최모(35)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4월26일 오전 10시쯤 서울 성동구의 자택에서 "언제까지 직업 없이 집에 있을 거냐, 이럴 거면 집을 나가라"는 어머니 황모(53)씨 말에 격분해 발로 마구 차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정한 직업 없이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온 최씨는 평소 취업 문제 등으로 어머니와 자주 다퉜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어머니가 쓰러지자 119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으며, 황씨는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최씨는 경찰조사에서 "평소 취업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주는 어머니에게 불만이 있었지만 어머니를 숨지게 할 생각은 없었다"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어느 날 보았던 뉴스 기사입니다. 존속살인라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죠. 저 역시 크게 놀랐는데요. 범인은 누가봐도 최모씨입니다. 정황도, 증거도, 범인의 자백까지. 모든 상황이 명백하죠. 하지만 한번 더 질문해 보겠습니다.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요?"

책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지젝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폭력에 대해서 새롭게 사유해보자’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폭력은 크게 2가지로 표현됩니다.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과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 (이는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으로 나뉩니다.) 무엇보다 폭력이란 말로 인해 우리가 떠올리는 상투적 관념에서 한 걸을 물러날 때만, 우리는 폭력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번 천천히 볼까요. 첫 번째, 주관적 폭력입니다. 명확히 식별 가능한 행위자가 저지르는 폭력이며, 누구나 손 쉽게 구분이 가능합니다. 특히 어릴 적에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한번쯤은 경험해 볼만한 일이기도 하지요. 물론 이러한 물리적 폭력이 결코 용인 되어선 안 됩니다만, 그 때문에 사건의 심층에 접근하지 못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이 사건의 원인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느 유명한 일화에 따르면,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독일군 장교가 파리에 있는 피카소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거기서 장교는 <게르니카>를 보고, 그림에 드러난 모더니즘적 ‘카오스’에 충격을 받아 피카소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렇게 한 거요?” 피카소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당신이 했잖소!” (폭력이란 무엇인가, P.37-38)

2. 구조적 폭력이라는 ‘기만' 
두 번째는 객관적 폭력입니다. 특히 이번에 저는 언어 폭력으로 대변되는 상징적 폭력 보다도, 구조적 폭력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간략히 상징적 폭력은 학교에서 접할 수 있는 따돌림, 인터넷을 통한 악성 댓글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더 들어가면 개념이 다소 복잡해서 제외합니다.)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것이 바로 이 ‘구조적 폭력’인데요. 여기에 대해서 따로 공부하거나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우린 쉽게 그것을 알아챌 수 없습니다. 지젝은 현대 자본주의에 굉장히 비판적이고, 다소 과격한 언행으로 유명한데요.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자선은 경제적 착취라는 얼굴을 감추고 있는 인도주의적 가면이다.’라고요.

“선진국들은 원조와 차관 등을 통해 미개발 국가들을 ‘도움’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후진국의 빈곤에 연루돼 있으며, 공동책임이 있다는 핵심적 쟁점을 회피한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P.52) 그는 이처럼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완화책을 마치 해결책처럼 제시하는 것을 ‘기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병을 고용해 자신의 철강소의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억누르면서 재산을 모으고, 이를 대의를 위해 내놓은 카네기 같은 사람을 대표적인 ‘기만적 사례'라고 보는 것이지요. 여러분에겐 어떻게 보이나요?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 이는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보면 구조적 폭력을 좀 더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기아를 악용하는 국제 기업과 국가들. 겉으론 약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론 독초를 먹이는 것과 같은 행동들 말이죠.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이 외에도 지젝은 다양한 ‘폭력’에 대한 사유를 끌어냅니다. 문화적 폭력부터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신적 폭력까지. 이 책을 보고 나면 무엇보다, 폭력을 보는 관점이 조금은 넓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IS'의 테러와 폭력이 단순히 광인의 미친 짓, 세계에서 없어져야 할 암적 존재들로 끝났다면. 지금은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과 구조는 뭘까?' 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이 용답되어선 결코 안 됩니다. 하지만, 그것에 모든 ‘초점’을 빼앗기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정말로 IS가 한창 말썽일 때 그들에 대해서 관심갖고 공부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맥락을 이해합니다. (물론 이해는 하되, 용납을 하진 않습니다.) 그들과 서구 세력간의 갈등이 어디서 부터 시작되어서 왜 이렇게 꼬였는지 말이죠. 사실, 결정적인 사건은 십자군 전쟁, 2차례 세계대전, 그리고 석유임을 간략히 밝힙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나중에 따로 대화나누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취업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엄마를 살해한 아들. 이 비극적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요? 첫 번째는 주관적 폭력을 행사한 아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럴 거면 집을 나가라’라고 말한 그의 어머니도 ‘상징적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다들 공감 하시리라 믿지만, 언어를 통한 폭력은 결코 신체를 통한 그것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들 모두 가해자 이지만, 어쩌면 무언가의 희생자인지도 모릅니다. ‘취업’이라는 구조적 난제, 그리고 사회적 폭력 앞에서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국가는, 기업은, 그리고 우리들은 이 거대한 책임에서 과연 면제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면 진짜 범인은 청년들의 꿈을 좌절시키는 '현대 사회'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오늘은 10월 29일입니다. "박근혜 하야하라"는 수 많은 시민들에 의해 외쳐졌습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 앞에서 우린 모두 할말을 잃어버렸고,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소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폭력일까요? 일부 과격해진 시민이 폭력을 저지른 것일까요? 아니면 권력자들이 웃으며 그런 것일까요?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더 두려워해야 할까요?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2005년 파리 교외에서 일어났던 약탈과 같은 폭력적인 사태가 일어나기만 하면 여전히 급진적 사회 변혁을 믿고 있는 소수의 좌파들에게 묻는다. “이런 짓을 한 건 당신을 아니오? 당신이 바라는 게 이거요?” 그러면 우리는 피카소처럼 대답해 줘야 한다. “아니오. 당신이 했잖소! 이건 당신네들 정치가 가져온 결과잖소!” 

우리나라에선 19세가 넘으면 성인으로 대우 받습니다. 성인이 된 이상, 자신의 인생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하며, 스스로 나아지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적 변화과 구조적 폭력에도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젝은 “저항하라!" 라고 외칩니다. 제가 이번 사건을 유심히 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아하게 웃으며, 손 한번 쓰지 않고 폭력을 저지릅니다.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치는 지는 모른채 말이죠. 그리므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입니다. 

4. 상실의 시대를 견디는 법 
아직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남았습니다. 앞서 ‘저항하라’고 했지만, 지젝은 아이러니 하게도, "행동하라!, 혹은 참여하라!"고 섣불리 말하지 않습니다. 약간은 이외인데요. 지젝은 우리에게 ‘공부하라’고 합니다. 서둘러 행동하지 말고, 더 공부하고 공부해서 진짜 혁명을 이루라고 말이죠. 단순히 눈에 보이는 ‘외면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적 변화’를 일구어 내라고 촉구합니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요. 

이는 저에게 마치 조광조가 아닌 퇴계 이황과 안창호가 되라는 말로 들립니다. 어떠한 변화도 급작스럽게는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조광조는 결국 급진적 혁명을 이루어냈지만, 궁극적 변화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런 역사적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3일 천하'란 말도 있지요. 그리고 우리 역시 1979년에, 그리고 1987년에 경험했던 일이죠. 하지만 이황과 안창호는 달랐습니다. 퇴계는 제자들에게 올곧은 학문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서원창설운동’을 벌립니다. 그로 인해 사사한 인재만 300여명에 이릅니다. 독립운동 당시 안창호도 ‘흥사단’을 조직하며 후임들을 양성해 나갑니다. ‘테러’와 같은 급작스런 방식과 다소 대조적이지만 더 근본적입니다. 

"그대는 바둑 두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까? 한 수를 잘못 두면 판 전체를 망치지 않던가요? …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묘년에 앞장서서 개혁을 주장한 선비는 학문을 연마하다 아직 완성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대단한 명성을 얻고 나서는 대번에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겠노라고 자부했지요. 임금님도 그가 명성이 높은 것을 좋게 생각하시어, 그를 두텁게 신임하셨고요. 그러니 이것이 바둑으로 치면 수를 잘못 두어 일을 망치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황의 '도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지젝의 조언은 저에게 ‘균형을 갖추라’라는 말로 들립니다. 지나치게 분노하지도, 그렇다고 차갑게 외면하지도 않는 것. 그 균형 속에서 ‘대안’을 찾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열심히 공부하던 이는 이제 행동해야 하며, 뜨겁게 행동하던 이는 공부해야 합니다. 뜨거워지고 다시 차가워지면서 우리 모두 단단해 져야 합니다. 그래야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사회'는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법이니까요. 너무나 허망하고 비참한 그런 상실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지만,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같은 민초들은, 들풀은, 쓰러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나락으로 떨어진 한 남자의 자기 변명서


세월이 지나며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낸다. 40대, 50대가 되고, 인생의 절정기도 함께 찾아온다. 
드높은 성취의 열매도 맛보고, 권력도 움켜쥔다. 하지만 그 영광의 시절을 모두 누리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그 성취는 '속물'이 되고, 변해가는 그를 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이 책은 지리학을 통해 중요한 진실을 내뱉는다. 
‘지리학의 제 1법칙은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지만, 
가까운 것은 먼 것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승하는 시절, 자신만 생각하기 쉬운 시절,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 봐야 한다. 
주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러하다. 나 혼자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 만큼 더 멀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모르는 이는 어느새 구멍에 처박힌 자신을 묵도할 수 밖에 없다. 
가까운 것은 더 긴밀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치기에.
 

주인공 ‘오기'에게서 나를 본다. 그의 변명에 동조하는 내 모습을 들킨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대로, 나 역시 구멍에 처 박힌다. 
인생의 행복은, 그 빛나는 불꽃은 결코 한번에 꺼지지 않는다. 한번에 하나씩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일상에, 순간에, 관계에 깨어있으라는 하나의 메시지이자 나에게 던지는 충고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읽혔다. 




[참고] 본 글은 ST UNITAS 사내 그룹 웨어에 올린 글입니다.

보안에 해당하는 내용은 없는 것 같아서, 개인 블로그에도 그대로 공유합니다. 






이번 달에 작성할 책은 우리 회사에서 발간되는 자랑스런 브랜드 전문 매거북이죠. <유니타스 브랜드>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유니타스 브랜드를 2009년에 처음 알았는데요. 관심있는 분야가 나오면 구입해서 보기도 했고, 가끔 권민님 강의를 찾아가서 듣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함께 일하고 있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자, 참 신기한 일입니다. :)

물론 저는 마케팅과 브랜드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업계에서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왜 제가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거기에 바로 이 ‘브랜드’의 매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 매력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그릇이 바로 이 <유니타스 브랜드>이기도 하구요.그렇기에, STian 여러분께도 제가 왜 브랜드에 열광하는지, 그 썰을 한번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호 <브랜드 내재화>를 읽으면서 제가 했던 생각을 한번 풀어 보고자 합니다. 휴일이나, 퇴근 후에 중간 중간 쓴 글을 붙였기에 어색할 수 있습니다만, 즐겁게 읽어주시길 :)


1. 가치를 위해 돈을 포기하는 사람들

P.14 / 이웃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남편에 대해서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간직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브랜드의 가치를 간직하기 위해서 다음에 또 벌 수 있는 돈을 포기하는 경영자는 바보가 아니다.’ 이 비유는 극단적이지만 브랜드 경영을 이해하기 위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실제로 브랜드의 세계는 가치를 위해 돈을 포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결국 브랜드란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은 자유를, 나이키는 승리를, 스타벅스는 도시의 안식처라는 ‘가치'을 팔고 있죠. 개인에게 대입해 봐도 비슷합니다. 한 개인이 돈이 아니라 어떠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쫓고, 사람들이 이를 인정해줄 때 그는 그 가치를 대변하는 하나의 '휴먼 브랜드'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인, 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하나의 목적을 쫓아서 인생을 던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행동으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보여주는데요. 그래서 그가 선택한 전략이 부산시장 선거에 나가는 것이었죠. 그 무모한 도전의 결과 그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선명한 브랜드를 갖게 되었고, 이는 훗날 대통령이되는데 어마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지금도 그를 추억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브랜드의 힘을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한번쯤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해 본 경험이 있지요? 저는 그 당시에 우리 자신이 내렸던 결정적 판단 근거. 그것이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잘 드러내는 비밀의 성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싸우고 부딪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연봉을 쫓아서 갈 것이냐?" 아니면 "내가 추구하는 의미를 쫓아서 갈 것이냐?"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서 갈 것이냐?" 아주 단편적인 예시긴 하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경계선이 아닐까요. 이때 자신의 선택이 곧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브랜딩’ 과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 역시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이 있다면, 공대를 나와서 교육 업계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친구들의 높은 연봉이 너무 부러웠지만, 지금은 거꾸로 몇몇 친구들이 절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넌 니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라고 말이죠.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나마 빠른 나이에 저는 저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 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욕망 하는지, 무엇을 기피하고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말이죠. 그리고 저는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정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이런 질문을 곧잘 던졌다고 하죠.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저 역시 제가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을 따라가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


2. 우리 기업만의 핵심가치를 정립하는 방법

P.30 / 많은 기업들이 핵심가치는 액자 속에만 걸어둡니다. 하지만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의사결정하고, 직원 평가가 이루어지는 등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상사가 리더십을 보여주고, 회의를 진행하고, 조직원을 육성해야 합니다. ... 사내용 책자를 하나 만들더라도 표지가 왜 검정색인지를 브랜드니스로 설명하는 페이지가 있다면 처음에는 핵심가치, 브랜드니스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어느새 생각과 행동이 ‘우리다움’으로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한 두 번의 만남을 통해 '그 사람이 이럴 것이다.' 라고 미리 짐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평가하게 됩니다. 어떻게 말하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꾸준히 보여줬는지, 이처럼 우리가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그 만큼의 ‘경험과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 "생각과 말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이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말을 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우선 순위에 따라 선택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꾸준히 말이죠. 그래서 전 사람을 평가할 때 가급적 조심합니다. 한 인간의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잊지 않습니다.

저에겐 이제 19개월이 갓 지난 아들이 있습니다. 한참 돌아다닐 시기라, 주말이면 이 녀석이랑 노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일요일도 어김없습니다.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먹이고, 입히고, 놀고, 씻어주고 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제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키우는게 이처럼 힘들지만, 지금까지 결코 배울 수 없었던 배움도 얻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배움은 바로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대로 하지 않고, 하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던 ‘말이 아닌 행동’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게 바로 ‘육아’가 아닐까요.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보여주는 특징이 있는데, 밀대나 청소기를 무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뭐든 주위에 보이는 건 쓱쓱 정리하고 닦는것도 잘 합니다. 왜 일까요? 바로 제 아내 덕분입니다. 더러운 꼴을 거의 못 보고 사는 우리 아내 덕분에 저는 맨날 혼나고, 아가는 밀대를 들고 돌아다니기 바쁩니다, 아내는 아가에게 청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 그것이 리더십의 기본이며 전부이기도 합니다. 가장 어렵기도 하죠.

기업도 하나의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도 그저 형성되는 법은 없습니다. 한 기업의 조직문화는 설립자를 중심으로 조직원들이 지금까지 반복해온 작은 행동과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에 올바른 문화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제가 보는 문화의 특성은 오로지 ‘적응성’입니다. 만약, 어떤 기업의 조직문화가 업종과 시대에 맞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 시킨다면 그 기업은 번창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쇠퇴 하겠죠. 그게 다 입니다. 문화는 옳고 그름의 범주가 아니지요. 다만, 중요한 것은 내부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아닐까요? 외부 고객의 목소리와 내부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여다 보고, 민감하게 깨어있는 사람이 많다면 그 조직은 자연스럽게 문화를 시대에 맞게 적응시키고 번창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합니다. 확실한 것은, 이는 결코 한 명의 개인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포시즌스 그룹 CEO 이사도어 샤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업문화는 반드시 조직 내부로부터 성장해 많은 시간에 걸쳐 회사에 몸 담아온 사람들의 집단적인 실행에 의해 탄생된다.” 그렇습니다. 집단적인 실행만이 이를 가능캐 합니다.


3. 철학이 지은 건물, 행복의 건축

p.78 / Q, 보통 브랜드 본사의 중앙에는 위용 있는 안내데스크나 접견실이 있는데요. 할리데이비슨 코리아의 건물 중심에는 탁아방이 위치해 있어서 놀랐습니다. 설계 의도가 무엇인가요? A. 건물을 짓기 전에 탁아방의 위치를 먼저 정하자 사람들은 건물 효율 면에서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건물의 효용은 무엇인가요? 이익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일까요? 저에게 건물은 ‘직원이 행복하게 일하는 곳’입니다. 행복은 경제 논리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건물을 지은 다음 가장 행복해지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와 직원들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부모와 함께 회사에 온 아이들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예전에 권민님의 강의에서도 들었던 사례입니다. 다시 봐도 멋진 사례구요. 건물 중심에 놓여진 탁아방.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 일까요? 몇 차례에 걸쳐서 반복하는 것이지만, 브랜드는 말로는 결코 표현될 수 없습니다. 그 정신은 '볼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중심이 된 철학은 결국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성과가 그저 ‘카피’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멋지다고 해서 '우리도 탁아방을 건물에 설치하자'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태도입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앞서서 철학과 정신이 깃들어야 멋진 ‘브랜드’는 태어납니다. 할리데이비슨에게 결과는 ‘탁아방’이었지만, 철학은 ‘행복’입니다.

행동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담긴 행동'과 '그냥 행동’. 기획서도 그렇지요. 진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유와 기획자의 강렬한 의도가 담긴 기획서와 그냥 작성해야만 하기에 작성한 기획서가 있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기획할 때 ‘왜’ 해야하는지 알고 기획한 적이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또한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진짜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기획서를 작성할 때,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는 꽤 몰입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끄적거린 기획서는 대부분 쓰레기 통으로 직행했던 것 같습니다. 설사, 그것이 통과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추진해야 하는 내 마음에는 스트레스가 계속 되죠.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돌아오는 건 자기 원망 뿐입니다.

결국,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를 의미있게 이루게 하는 것은 ‘철학’이라고 봅니다. 어떤 회사가 있습니다. 건물 중앙에 ‘탁아소’가 놓였다고 칩시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왜 탁아소를 거기 만들었나요?” 그들은 답변합니다. "여기 공간이 남아서 뭘 할까 하다가 탁아소를 만들었어요.” “네. 그렇군요” 같은 결과이지만, 우린 여기서 어떤 ‘메시지’도 느낄 수 없습니다. 결국 작은 행동부터 큰 행동까지,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우리는 누구인지. 이를 행동 하나하나에 이입하고,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작은 선택의 누적이 뭉쳐서 거대한 ‘철학’을 보여주는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누군가 ‘단기 페이퍼’를 왜 만들었냐고 물었을 때 ‘그냥 종이를 저렴하게 만들고, 유통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할 수도 있지만 ‘사용자가 ST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접하는 경험이 종이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180% 다르겠죠. 그래서 ‘철학’은 ‘행동’과 강렬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칸트의 명언을 조금 바꿔봅니다. '철학 없는 행동은 무모하고, 행동 없는 철학은 공허한 법'입니다.






끄적끄적 

나에겐 한 가지 역설이 있다. '내 책보다, 남의 책을 더 열심히 읽는다'는 역설. 

이러한 역설이 생기게 된 계기는 내가 책을 '구입'하면서 부터다. 2009년부터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던 나는 어느 순간 꽤 많은 책을 보유한 '장서가'가 되었다. 지금은 한 1.000권 정도 된다. (물론 10,000권 이상 가진 사람도 수두룩 하지만 나름대로;;) 그렇다 보니, 내가 읽고 싶은 왠만한 책은 가지고 있게 되었다. 책 사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가끔, 읽고 싶지만 사기에도 애매한 책을 만나게 된다. 

그때, 나는 초서를 시작한다. 내가 가질 수 없기에, 더 열심히 옮겨적는다. 마치 언제나 볼 수 있는 가족에겐 소홀하면서, 가끔 만나는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더 열과 성의를 쏟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끔 내가 초서했던 책들을 보면 대부분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아니더라.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가진 책이 언제 불타버릴지 아는가? 나는 뭘 그렇게 '내것'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가지고만 있으면 내 책인가? 아니다. 읽고, 이해하고, 삶에 반영해야 내 책이다.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주절거릴까? 이 책이 바로, 빌린 책이므로. 어른이 되기엔 난 아직 멀었다. :) 



옮겨적기 

27. 진짜 좋은 아이디어는 스스로 걸어서 널리 퍼져나간다.
-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 이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됩니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고 진짜 목적은 ‘숨어 있는 요구’를 끌어내는 것이라야 합니다. …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숨어 있는 필요를 끌어내 문제의 핵심을 찾는 일입니다. 

+ 숨어있는 필요, hidden needs 이 말처럼 하기는 쉬워도 발견하긴 어려운 말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소통하길 원한다. 그래서 카톡은 그 필요를 충족시켰다.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그 많은 메신저 시장에서 이기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47. 
- … 개미의 뇌는 용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투, 정탐, 운반 등 그 역할이 바뀔 때마다 뇌 자체의 시스템도 바뀐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뇌가 변화한다’는 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뇌는 여러모로 근육과 비슷한 기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운동선수는 자신의 종목에 맞는 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을 재정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라토너, 보디빌더, 스모 선수가 지닌 근육의 질과 양은 서로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운동선수의 근육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뇌를 의식적으로 훈련해 특정한 기능에 최적화시키는 접근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 뇌는 진짜 신비하다. '뇌의 가소성'이란 말을 내가 이해한대로 설명하자면, 뇌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그 중간의 무엇이다. 뭔가를 이해한만큼 '회로'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회로'가 사라진 만큼, 인지능력도 사라진다. 결론은 평생토록 '배우는 뇌'는 늙지 않는다는 말이며, 반대로 '배우지 않는 뇌'는 나이와 상관없이 늙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 만큼은 '일반적인 물리세계'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49. ‘센스’ 보다 중요한 것
- ‘나는 센스가 없어서 못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제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꺼내는 데 있어 센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좋아하느냐의 여부이기 때문이죠. 

… 누구보다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할 것. 누구보다도 그것을 더 많이 좋아할 것. 그것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 흥미를 갖고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것들에도 도전해볼 것. 이런 것들을 의식하며 매일의 과제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연습을 하루 거르면 그것을 회복하는 데 3일이나 걸린다고 하죠.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매일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의식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다. 진짜는 진짜 많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니까. 위대한 브랜드가 태어나건 건 아마 '그 브랜드'와 '자신을 일치시킨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자신 안에 무언가를 품고 있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그건 바로 '즐거움'이다. 앞서 언급된 '뇌'의 특성과도 다를 바 없다. 뇌는 '좋은 것'은 계속 기억하지만, '싫은 것'은 튕겨 낸다. 물론, 싫은데 꼭 필요한 것도 있다. 그럴 땐 싫은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익숙한 것'을 '좋다'고 느끼는 것이 뇌의 또 하나의 특징이니까. 결론, 무언가를 '반복'하면 된다. 그것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53.’ 귀찮음'에 대한 시도
- 기회는 교묘히 숨겨져 있죠. 그렇기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한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다만 그것이 기회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귀찮다고 생각해 기회를 외면해버린 사람일 뿐인 거죠. 귀찮다고 생각되는 일에 엉거주춤 불평불만하다 보면 정말로 그 일은 자신에게 손실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면 실이 아닌 득으로 돌아와 주죠. 귀찮다고 생각되는 일일수록 의식적으로라도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기회도 찾아오니까요. … 문제가 찾아지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보고도 못 본 척 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보는 건 어떨까요?


63.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체질은 ‘변화를 줄이는’ 노력부터
- ‘평소와는 다른 환경일수록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지만 제 경우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같은 곳에서 개를 산책시키고 같은 카페에서 같은 음료를 마시죠.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에 일상 업무의 리듬을 지키며 가능한 한 변화를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변화라는게 스트레스의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온 힘을 다해 리듬, 같은 페이스,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래야 ‘바로 지금이다’ 싶을 때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긴장과 이완의 폭이 클수록 그 힘이 커지는 근육과 비슷하죠.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가능한 한 릴렉스 상태를 유지하며 부담을 주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다. 거기서 나오는 말과 비슷하다. 그는 일어나서 5-6시간 동안 글을 쓴다. 그리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쉬고, 독서를 하거나 한다. 매일을 그렇게 반복한다. 글을 더 쓰고 싶다고 해서 더 쓰지도 않는다. 매일 일정한 양을 쓴다. 그것이 마스터의 비법이다. 


67. “몇 퍼센트의 사람이 익숙하다고 느낄 것인가” - 기시감을 조절한다.
- 새로운 기술이나 가치를 구현하려는 상품일수록 익숙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몇 퍼센트의 소비자가 익숙하다고 느낄 것인가' … 대중적인 상품일수록 얕고 넓은 접근이 필요합니다. … 반면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면 특정 소비자 층을 깊고 정확히 저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상품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게 되죠.


79. 아이디어의 ‘입력’과 ‘출력’을 원활하게 만드는 세 가지 단계
1) 흑백을 구분하지 않고 가능한 한 ‘회색’ 상태를 유지한다. 어떤 정보가 도움이 될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2) 머릿속에 들어온 모든 정보를 ‘비주얼화’한다. … 정보를 어떤 ‘상’으로 만들면 저장하면 머릿속에 훨씬 더 쉽게 정착된다. 
3) 사물을 바라볼 때 가능한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97. ‘빠른 결단’와 ‘양자 택일'
- 상품을 만든다는 건 결단의 연속입니다. 소비자의 요구, 생산성, 기능, 비용, 스케줄 등에 대한 최적의 결단을 끊임없이 해나가야만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결단의 요령’같은 것이 만약 존재한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틀려도 괜찮으니 가능한 한 빠른 결단을 내린다.’ 

- 좋은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스피드와 더불어 선택지 안에서 ‘해답을 좁혀가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정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정답이 아닌 것을 찾기란 비교적 쉬운 편이죠. …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양자택일’로 선택지를 줄여버립니다. 


100. ‘강력한 선택지’ 두 개로 걸러내는 습관을 들인다. 
- 승부처에서 리스크를 확실히 줄이려면 제대로 된 선택지 두 개를 걸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요령이 있습니다. 양극단적인 두 개의 선택지를 준비해 그 양쪽 끝을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죠. 평범/비범, 적극적/소극적, 대비하다/방치하다.. 찾아보면 의외로 답은 쉽게 보입니다. 

강력한 선택지를 두 개, 그리고 최단 코스로 발견하는 것이 결단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아주 유용하게 배운 것 중에 하나가 'AB테스트'다. 무언가 '평균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도발적인 아이디어' 이 둘을 사용자에게 묻고, 대답을 구하는 것. 엄청 빠르게 테스트 할 수 있고, 또 효과도 좋다. 확실히 사람들은 '양자택일'할 때, 쉽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더라. 강추강추. 

141. 장점에 집중해 ‘차별화’를 만들어낸다. 
- 무엇이 애플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게 해주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한쪽으로 치우친 콘셉트’ ‘효율성 낮은 제조 방식’을 고수하면서 태어난 ‘차별화’입니다. 국내 브랜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죠. 가격 대비 성능만을 비교하면 타사 제품이 머리 하나 정도는 더 뛰어납니다. 그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애플을 사게 되는 건, 그만큼의 ‘광기’가 제품 개발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마그네슘 덩어리를 깎아내 본체 프레임을 만든다거나 알루미늄 압출 성형으로 아이팟 미니를 만든다거나 완전히 경면 처리되어 있는 아이팟의 뒷면도 ‘미쳐 있기에 가능한’ 제조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해버리기 때문에 애플유저는 가슴이 뛸 수 밖에 없는 거죠. 오로지 강점에 집중한다. 대담한 곡예 같은 전략입니다. 

+ 이럴 때, 나에게 묻고 싶다. 나의 '광기'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뭘 할때 정말 신이 날까? '이거 하나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무엇일까? 시기마다 조금씩은 대답이 달랐던 것 같다. 근데 요즘 나는 '대화'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 거기에 나는 관심이 많다. 그리고 잘 하고 싶다. 심톡을 진행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그냥 대화는 싫다. '진짜 가치있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그러면서 배움도 있는' 그런 대화를 하고 싶다. 그거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 


174. ‘어떻게 보이는가’와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의 차이를 이해한다. 
- 말하자면 헤어스타일을 고르기 전에 자신의 머리가 벗겨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후 대머리의 장점을 부각해 멋지게 박박 밀어 스타일을 완성시킬 것인지 가발을 써서 가릴 것인지 선택해야 하죠. 그 과정이야 말로 ‘브랜드 전략’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기업의 종합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는 지금 현재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당신 회사를 자동차 브랜드로 비유한다면 어떤 회사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과정을 통해 ‘되고 싶은 기업의 모습’을 형태를 지닌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 눈앞에 구체적인 형태가 있어야 논의 작업에서 기준이 만들어지고, 기준이 서야 발언하기도 훨씬 쉬워집니다. '어떤 타입의 여성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곤란해도 ‘A씨와 B씨 중 어느 쪽이 당신 타입이냐’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한결 쉬워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죠. 


182. 메타포 사고로 ‘비유해서 전달하는’ 기술
-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잘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특별히 그림 솜씨가 좋아야 한다거나 손끝이 야무져야 한다는 조건일 필요는 없습니다. 기발한 상상력도 필요 없죠. 사물을 선입관 없이 관찰해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해낼 줄 아는 ‘눈’, 그것을 제대로 된 형태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끈기’, 자신의 생각을 올바로 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있다면 디자이너로서 굶을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 디자이너가 적성에 맞는지 판단하려면 적절한 비유를 써서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연결하는 대상 간의 관계성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대상 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고급스런 은유라 할 수 있다.) 


+ 눈, 끈기,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 세가지가 얼마나 어려운 건데. 이렇게 쉽게 말하다니. ㅠㅜ 이건 비단 디자이너에게만 해당 되는 역량이 아니다.  기획자든, 개발자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가 회사에 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역시 '커뮤니케이션 역량'의 중요성이다. 기존에 나는 3년 동안 프리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컨펌'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가 결정하면 끝이니까. 하지만 회사와서 가장 많이 해보는 것이 '컨펌 요청'이다. 그 무엇 하나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논의해야 할 대상'이고, 나는 설득해야 한다. 지금은 그것을 훈련하는 하나의 단계라고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결국, 설득이다. 설득. 결국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209. '장인 기질’과 ‘소비자의 시선’의 양립
- 오히려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디자인적인 ‘혼잣말’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의외다 싶겠지만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근면, 성실, 집중력, 자기 일에 대한 깊은 애정, 정열,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런 특성은 상품 제작에 꼭 필요한 적성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장인 기질’이라는 녀석이죠. 

물론 스스로의 세계를 파고들어야만 가능한 것이 장인의 일이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느끼는가. 이런 시점이 누락되면 누군가를 위해 전달하려는 말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뉘앙스가 생겨나게 되죠. 그러면 메시지는 ‘혼잣말’ 혹은 ‘투덜거림’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맙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멋대로인 손님’의 시점에 서 보는 게 좋습니다. 만드는 이로서의 완고함을 소비자인 내가 느낄 수 있다면 소비자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여기선, 장인 기질과 소비자의 시선이라고 언급하지만, 나는 이를 '예술가'와 디자이너'라고 명명한다. 결국 '내 생각'을 표현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상대의 생각'을 대신 표현해주길 원하는가? 이 차이라고 본다. 둘 중 무엇이 좋을까? 그런 건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자기 자신을 예술가 혹은 디자이너'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다른 사이드를 할 수 없다고 변명하는 이를 가장 하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몇 십년 동안 다른 사람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고자 노력해온 장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의 높은 기준과 이상을 다루고자 엄청나게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탁월한 '장인'일까? 적어도 나의 기준에선 아니다. 한 단계를 더 넘어서야 한다. 그러한 장인이 진짜 '장인'이 되는 순간은 바로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철저히 예술가였던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하는 순간, 나는 그가 진짜 '성장했다'고 느낀다. 그렇게 끊임없이 '내 안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이를 나는 '장인'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말만 듣는 예술가, 혹은 남의 말만 듣는 디자이너 둘 다 매력없다. 만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이 들이 만날 때, 진짜 탁월함은 꽃 피어난다고 자부한다. 물론, 뭐 이것도 나만의 개똥철학이긴 하지만 :) 


251. ‘엔지니어 타입’과 ‘아이디어 타입’ 
-  의사로 비유하자면 ‘머리가 아프다’는 정보를 접하고 두통약을 처방해주는 이를 전자라고 한다면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몸 상태가 좋지는 않다’는 애매한 정보를 기초로 독자적인 진단과 치료, 예방을 위한 의학적 조언을 해주는 이를 후자라 할 수 있습니다. 

- 세계로 눈을 돌리면, 톱 브랜드들의 관심은 아이디어 타입 쪽에만 쏠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정한 혁신은 아이디어 타입에서만 탄생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본은 그 두 타입의 균형이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습니다. … 일본의 경우, 디자이너의 99% 이상이 ‘엔지니어 타입’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포스팅을 한다. 
사실 그 동안 블로그를 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글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프리랜서이던 작년 보다 글의 양이 확연히 줄어든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ㅠㅜ 모르고 입사한 것도 아니고, 나름 회사 경험을 통해 얻는 것도 많으니 스스로 위안을 할 뿐이다. 

이 글도 전혀 새로운 글이 아니다. 지난 번에 올렸던 책 '오리지널스'와 마찬가지로, 회사 그룹웨어를 통해서 공유했던 글이다. 다만, 내 블로그에 올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복붙'하려 한다. 자랑스런 글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낳은 글이니까. 엄청나게 방치하고, 모른척 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에 꾸준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일부러 모른척 했던 내가 부끄럽다. 

뭐 대단한 글을 쓴다고. 쳇. 
바쁜 와중에 그냥 가끔 들어와서 '나 잘 살아가고 있소'라고 글을 쓰면 되는 것임을. 





서문


다음 애니메이션의 공통점은 무엇 일까요?
몬스터 주식회사, 월E,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

정답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 공통점은 바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니까요. 하하.. 죄..죄송합니다. 아재라서;; 사실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자타공인 지구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 PIXAR’의 히트작이란 점이죠.

이번에 선정 한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픽사의 집단 창의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노하우가 담긴 책입니다. 조직 외부에서 바라보며 쓴 내용이 아니라, 창립자 에드 캣멀(현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회장)이 직접 쓴 글이라 진솔 하면서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는 CEO로서 자신의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픽사 사장으로서 내 목표는 언제나 픽사가 창업자들보다 오래 생존할 수 있게 픽사에 계속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의적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p.14)

에드 캣멀이 품고 있던 질문, 그리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집단 창의성을 길러 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자기 자신보다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 구조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그 목표이죠.

매 작품마다 창의적인 스토리와 뛰어난 그래픽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 픽사이기에, 이 질문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제 픽사의 창업자, 에드 캣멀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PIXAR 캐릭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비밀을 알게 될 거에요.


첫 번째, 안전한 공간을 형성하라.

집단 창의성을 길러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문책받을 걱정과 두려움 속에선 다양하고 풍부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고, 그렇게 될 수록 창의성과는 멀어지게 되죠. 에드 캣멀도 같은 고민에 빠졌고, 몇 가지 장치를 고안하기에 이릅니다. 첫 번째는 '물리적 변화’입니다. 즉 테이블 거리를 조절하고 명패를 없애기로 한 것이죠.

"나는 회의 참석자들이 서로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며 앉을 수 있는 테이들이 놓이길 바랐다. 그래야 회의 참석자들이 자신을 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터놓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회의실에는 새 테이블이 놓였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 새 테이블에도 이전과 똑같이 명패가 놓여 있었다! … 명패는 우리가 픽사에서 피하려고 노력한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p.26)

이쯤에서 "그런게 효과가 있을까?" 라는 의문도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변화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예전의 어느 심리학 실험에서도 미팅 시 ‘테이블’을 치우니 더 많은 의견이 나오더라는 결과를 본 적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스탠딩 미팅도 유행이라고 하죠. 서서 미팅을 진행하면 분위기가 좀 더 활기차 진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물이나 공간의 배치는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변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지위 계통을 넘어선 자유로운 '의사소통 규칙'입니다. 누구나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죠.

"나는 모든 임직원에게 직위나 시간에 상관없이, 누구든 문책받을 걱정하지 말고 다른 임직원에게 자유롭게 얘기하라고 말했다. … 직원들끼리 직접 소통하고 나중에 상관에게 알리는 편이 ‘적합한 절차’와 ‘적절한 지위 계통’을 거쳐 정보를 교환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p.102)

위의 단락은 무엇보다 ST와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우선 저희도 ‘호칭’이나 ‘명패’가 따로 없습니다. 테이블을 가로막는 ‘버티컬’도 없죠. 게다가 의사소통 시 장애가 될 만한 것도 거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편하게 받아준다는 점이 우리 회사 최고의 장점이라고 봅니다. 저 역시 초반 한달 동안 막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궁금한 내용을 물어봤는데요. 그때 우리 ST의 문화를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 한분도 귀찮다는 내색 없이 모두 친절하게 대해 주셨고, 그때의 감사함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혹시 신규 입사자 분들 중에서 이 글을 읽으며 믿어지지 않는 분들은 한번 실험해 보셔도 좋습니다. (물론 분위기 봐 가면서, 필요한 내용을 물어봐야 하겠죠. ;;)


두 번째, 진실된 대화를 나눠라.

픽사에는 무엇보다 우선되는 제 1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토리가 왕이다’ 입니다. 아무리 어두컴컴한 상황이라도 언제나 그들은 '스토리'를 등불로 삼고 나아갔습니다. 한번 기억해 보세요. 보셨던 픽사 작품 중에서 스토리가 엉망인 영화가 있었나요? 이처럼 픽사는 탁월한 스토리를 중심에 놓고, 토론하고, 싸우며 영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핵심 교훈을 얻게 되죠.

"나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좋은 아이디어를 평범한 팀에게 맡기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반면 평범한 아이디어를 탁월한 팀에게 맡기면, 그들은 아이디어를 수정하든 폐기하든 해서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다." (p.115)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겁니다. '탁월한 팀’을 만드는 것이 ‘스토리 메이킹’의 본질입니다. 이 팀은 무엇이 가장 탁월한 것 일까요? 역량도 아닙니다. 전문성도 아닙니다. 집단 창의성을 위한 두번째 비법, 그것은 바로 ‘진실한 대화’입니다. 픽사의 언어로는 '브레인 트러스트’라고 합니다. 변화를 위한 제도나 형식이 갖춰지더라도 ‘내용’이 빈약하면 성과는 요원합니다. 브레인 트레스트는 그 ‘내용’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브레인 트러스트의 핵심 요소는 언제나 솔직함이다. … 솔직함이 없으면 신뢰도 존재할 수 없다. 신뢰가 없으면 창의적 협업은 불가능하다.” (p.132)

‘건설적인 비평’ 즉, 솔직한 대화는 올바른 협업을 이끌어 냅니다. 서로 다치지 않게, 발전을 위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최고의 스토리가’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 뿐만 아닙니다. 저는 최근에 JYP엔터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프로듀서 개인의 ‘감’으로 곡을 선정 했지만, 지금은 내부, 외부의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결정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평균 점수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설사 박진영이 작곡한 노래라도 빛을 못보게 된다고 합니다. JYP 엔터는 이 시스템을 지난 2년 동안 실험해 왔고, 그 결실이 바로 트와이스의 성공으로 찾아온게 아닐까요? 그게 어디든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픽사 사람들은 어떻게 이 솔직한 피드백을 훈련 했을까요? 그 비결은 픽사 유니버시티의 ‘예술 교육’입니다. 예술의 핵심은 ‘표현과 비평’입니다. 픽사 직원들은 예술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 하고, 협업하고, 그 과정에서 작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비평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한 잦은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일상 업무를 할 때도 더 원활한 상호작용을 이뤄냈다고 합니다.

"앤드루 스탠튼의 설명을 들어보자. “비평과 건설적 비평은 다릅니다. 건설적 비평은 비평하는 동시에 건설합니다. 부수는 동시에 짓고, 해체하는 동시에 조립하죠. 건설적 비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형태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영감을 주는 의견서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54)

비난은 서로를 헐뜯고 부수지만, 건설적 비평은 해체하는 동시에 조립합니다. 창의적인 시나리오, 탁월한 결과물은 그 ‘솔직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분명 앞서의 ‘물리적 조건’을 갖췄을 때 더 촉진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세 번째, 끊임없이 숙련하라.

결국 '좋은 그릇’에 ‘훌륭한 음식’이 담겨야 합니다. 이렇게 형식과 내용이 갖춰지면 끝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집단 창의성을 위한 세 번째 방법. 그것은 바로 ‘숙련’입니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픽사에서 물러날 테니, 누가 감독이 돼도 최고의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직원들을 가르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베테랑 감독을 감독 후보의 멘토로 연결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 핵심 활동은 멘토가 8개월 동안 멘티를 데리고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멘토는 자신의 노하우를 모두 멘티에게 전수합니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목표는 깊은 유대감을 구축하고, 공포와 도전을 공유하고, 경영자가 실제 고민하는 외적 문제 및 내적 문제와 씨름해보고, 직원들을 관리하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신뢰감을 구축하는 것이다.” (p.182)

도제식 멘토링 제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교육 제도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픽사 유니버시티’인데요, 그 커리큘럼은 수년에 걸쳐 조각, 회화, 연기, 명상, 댄스, 발레부터 실사영화 제작, 컴퓨터 프로그래밍, 디자인, 색상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학 교육이 직원들의 업무 성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원 사이에서 ‘상호 작용’ 촉진과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픽사대학이 직원들의 업무 성과 증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촬영 기술자 옆에 경험 많은 애니메이터가 앉고, 그 옆에 회계부서나 보안부서나 법무부서 직원이 앉아 수업을 들은 시간은 그 가치를 금전적으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산이 됐다. 강의실에서 직원들은 사무실에 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했다. 강의실에서 직원들은 경계심과 긴장을 늦추고 마음을 열었다. 강의실에서는 직급이 적용되지 안았는데, 그 결과 소통이 활발해졌다. … 픽사대학은 그 과정에서 픽사의 조직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었다. 픽사대학은 모든 직원이 직위에 상관없이 다른 직원이 하는 일을 존중하도록 가르쳤으며, 모든 직원이 초심자로 돌아가 낯선 일들을 배우며 실수할 기회를 제공했다. 창의성은 실수로 점철된 미숙한 과정을 거치면서 발현된다. 나는 직원들이 이런 개념에 익숙해지길 원했다.

… 픽사대학의 목적은 결코 프로그래머를 애니메이터로 바꾸거나, 애니메이터를 댄서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픽사대학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계속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모든 직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는 것은 유연성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 나는 픽사대학을 통해 직원들이 더 유연하고 강한 인재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중요한 문장이라 한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픽사대학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계속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모든 직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는 것은 유연성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전 직원들이 유연하고 솔직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 전략은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오늘도 그들은 끊임없이 숙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사랑하는 픽사의 수 많은 캐릭터와 생생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꾸준히 학습하는 조직만이 번성할 수 있는 거겠죠.


결론

제 리뷰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열린 공간과 건설적 비평, 그리고 숙련을 위한 교육. 이 삼박자가 갖춰질 때, 개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깨어나게 되고, 전체적으로 ‘집단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하나의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제창한 ‘리좀’이 바로 그것입니다.

들뢰즈는 모든 사물이 평등하게 ‘AND 그리고’의 관계를 맺는 것을 꿈꾼 철학자 입니다. 그는 사물들이 하나의 중심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어가면서 새로운 ‘and 그리고’ 그리고 ‘between 사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는데요. 이러한 형식의 사유를 들뢰즈는 ‘리좀’이라고 불렀습니다. 쉽게 말해서, 리좀의 철학은 ‘관계의 철학’이며, 조직이 보다 유연할수록 더 역동적인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마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초기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직위도 부서도 없고, 네 일과 내 일이 구분되지 않고, 서로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는 그 역동적인 모습 말이죠. 그럴 때 ‘집단 창의성’은 깨어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우리’가 해내는 기적을 연출합니다. 저희 ST의 지금까지의 모습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구요.

글을 마무리 지으며, 저는 이 글이 저에게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 자신부터, 스스로의 역할을 구분하고, 부서를 나누려는 자세를 경계하고자 합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믿고 있는 나의 정체성에 돌을 던지고자 합니다. 저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어디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말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와 ‘장Field’ 속에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능성이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아,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꾸준함’ 그 불변의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서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모두 함께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정말 멋진 기업 문화를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 가지 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창의적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한 가지 과제를 해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창의적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늘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해내고 싶었다."






서론
책 <오리지널스>의 메인 질문은 꽤 매력적이다. “어떻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이 도발적 질문에 대해 저자가 답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본 책의 줄거리다. 생각해보자. 순응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독창성은? 누가 세상을 움직이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언듯보면 굉장히 식상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덤 그랜트는 이 책을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몰고 나간다. 특히 돋보이는 미덕이 있다. 바로 다양한 ‘과학적 실험’에 밑바탕을 두었다는 점이다. 최근에 회사를 다니면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가설과 검증’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느끼고 있던 터라,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펴는 저자의 논리가 부러웠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중간 중간 인상깊은 3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리뷰를 쓴다.  

본론
1) 독창성에 대한 재미있는 접근 
"당신은 크롬을 쓰는가? 익스플로러를 쓰는가?” 이 질문이 한 사람의 독창성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면 믿어지는가? 1장 '창조적 파괴'에서 ‘독창성’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나온다. 매우 매력적인 도입이 아닐 수 없다. 

"웹브라우저로 파이어폭스나 크롬을 사용한 직원들이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사파리를 사용한 사람들보다 재직 기간이 15% 더 길었다. … 그 직원들이 더 오래 재직하고, 더 성실히 일하고, 업무 수행 능력이 더 뛰어난 이유가 브라우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브라우저 선호도가 그들의 습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 파이어폭스나 크롬을 사용하려면 사람들은 수완을 좀 부려서 다른 브라우저를 다운로드해야 한다. 내장된 기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주도력을 조금 발휘해서 더 나은 선택지를 찾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약간의 비약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접근이 좋다. 익숙한 일상에서 ‘아무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장면’을 잡아 채는 것. 그 누가 크롬과 익스플로러의 차이를 눈여겨 봤을까? 물론 '과연 그것으로 독창성을 구별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면 ‘꽤 그럴듯 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불편해도 그걸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는 더 많다. 특히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 엑티브 X를 아직까지 쓰는 것. 놀라운 관성이 아닌가? 그 작은 차이가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는 것이 주목할 만 하다. 그와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직장에서의 업무란 한군데도 손대면 안 되는 조각품이 아니라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융통성 있는 집짓기 블록 같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자기 업무를 스스로 설계한 사람들의 사례와 자신의 관심사, 숙련 기술, 가치와 좀 더 부합하도록 자신의 업무나 인간관계를 개인 맞춤형으로 조정한 사례들을 소개해 주었다. … 구글 직원들에게 업무는 조정 가능한 것임을 알려주자, 행복지수나 업무 수행 능력에서 상승효과가 최소한 6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 현재 주어진 업무를 그냥 받아들이거나 기존의 기술만 이용하기를 거부하는 행위만으로도, 그들은 더 행복하고 더 유능한 직원이 되었다."
 
이것도 재미있는 비유가 아닌가? <블록과 조각품> 비유. 얼마 전, 총선이 있었는데 선거도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조각품'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투표’가 의미없다고 느낄 것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아!" 라고 외치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각품처럼 그저 바라 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이 ‘블록’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뭐라도 한다. 내가 개입해서 바꿔볼 수 있다는 것. 그 느낌을 선사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느낄 때 우린 좀 더 주체적으로, 독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법이기에. 다행히 이번 선거 결과는 나에게 세상이 ‘블록’이라고 느끼게 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것. 기득권층이 오만하고, 방심할수록 민중은 들고 일어난다는 것. 그 사실을 인식시킨 결과라고 느껴져서 좋았다.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참패하고, 더민주당이 호남에서 참패한 것. ‘민중의 메시지’를 보내기엔 모두 좋은 결과라고 느껴진다. 이러한 선거 결과를 받아 들일 때 시민들은 활기를 찾는다. 다음 날 아침에 사람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보인 것은 그 때문일까. 

2) 현장에서 답을 찾아라. 
이 책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에게도 잘 어울리는 책이다. 특히 요즘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내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 유명한 발명품 ‘세그웨이’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성공할지 여부를 평가할 때,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열정에 쉽게 매료된다. … 카멘은 다른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는 뛰어났지만, 풀어야 할 문제를 찾는 데는 그다지 재주가 없었다. 세그웨이의 경우, 카멘은 먼저 해결책을 찾은 후에 비로소 그 해결책이 쓰일 문제를 찾아 나섰다. 그는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시장 견인의 전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만든 신기술을 시장에 공급하는 기술 주도 전략을 밀어붙이는 실수를 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세그웨이라는 희대의 발명품을 만든 카멘은 놀라운 실수를 저질렀다. 먼저 ‘해결책'을 찾은 후에 ‘문제’를 찾아나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비자들이 이 물건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이 소비자를 필요로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 그건 아주 먼, 요원한 일이다. 소비자들은 필요없는 일을 하고, 필요없는 것을 살 만큼 그리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지난 달 오랜만에 업무를 시작할 때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부끄럽지만, 그때 썼던 글을 잠시 옮겨보기로 한다. 회사를 다닌 지 3일째 되는 날 쓴 글이다. 

"직장 생활을 한지 3일이 지났다. 이제 목요일이다. 프리랜서를 아무리 오래 해도 느낄 수 없는 것, 혹은 엄청나게 오래 해야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지난 3일 동안 느꼈다. 마치 직장 생활은 나에게 ‘동아줄’이다. 비유를 들자면, 하늘에서 있던 내가 땅으로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는 느낌? 원래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지만, 나는 되려 내려오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원했기에. 그것이 나의 부족한 점이었으므로. 그 동안 느낀 점 3가지만 써보자. 가장 많이 느끼는 어려움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겠는 것이, 나는 정말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의 패배감을 맛 본다. 나의 강의도 하나의 논리보단 통찰이었고, 삶의 방식도, 아이디어도, 모든 것들이 그랬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다시 말해 논리가 아닌 통찰. 두 번째는 나는 철저히 주관적인 사람임을 다시 느낀다. 객관이 아닌 주관. 그래서 어떤 컨텐츠를 보거나 했을 때 그것을 파악하고 ‘나의 맥락’으로 가지고 오는 것은 잘 한다. 성찰 지능이 높은 것도 그런 유익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한다. 게다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어서, 내가 좋은 것 누가 뭐래도 하지만 나에게 요구되는 것이나 필요한 것은 최대한 미루거나 안 하려고 한다는 것도 본다. 굉장히 유아기적 성향이다. 마지막으로 너무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솔직히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 예전 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그건 정말 노다가에 가까운 일을 한 것 같다. 내가 정말 이 회사를 얼마나 아는가? 그들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가? 그런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음을 본다. 그게 나의 지난 3일 동안의 솔직한 회고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난 2일 동안 나는 이런 저런 산출물을 만들었다. 어떻게 만들었냐면, 일단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중심에 놓았다. 첫 날에는 "10대 운영원칙을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신규입사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물론 기초 역량과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핀트는 어긋났다. 나에게 요구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래도 그건 뭐 나의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 진행되어도 괜찮을 법한 재미있는 시행착오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튿날이다. 첫날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나는 ‘어떻게 하면 서로 자연스럽게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게임 혹은 룰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것을 주제로 삼았고, 개인적으로 이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지식경영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사실 그 과정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즐거웠다. 퇴근 길에, 출근 길에, 심지어는 집에서 내내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중간 중간 떠오를 때 마다 적은 메모도 10장이 넘는다. 왜냐? 내가 하고 싶은 주제로 맘대로 하니 그럴 수 밖에. 하지만, 그렇게 내놓은 아이디어에 팀장님이 주신 피드백은 ‘이건 일이 아니다’라는 것.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일이 아니다. 그냥 나의 유희였을 뿐이다. 굳이 포장하면 전체적인 개념을 잡기 위해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공부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건 알아서 스스로 해야 한다. 회사에선 일을 해야한다. 그렇다면 일은 무엇일까? ‘공감’에서 시작한다. 나는 지금 뜬구름만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이고, 누가 일하고,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다. 분명 24시간 내내 몰입했고, 무언가 쉰 적도 없고, 내 가치와 일치하는 주제를 탐구했지만 결과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감’의 부제. 디자인씽킹 1번째 원칙을 잊어버렸다. 

결국, 맨 처음 말했던 나의 성향 3가지가 그대로 드러난 결과물이었다. 이런 저런 자료를 보고 책을 보면서 공부하다가, ‘몇 가지 개념’이 번쩍 떠오른다. 현실에 기반한 논리는 시간이 걸리니 접어두고, 일단 그럴 듯한 통찰에 목을 맨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관심갖기 보다는 ‘내가 재미있는 것’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그래도 한 가지 잘한 것이 있다면, 이런 시행착오를 일단 빨리 하고, 피드백 받았던 것이다. 3일째에 피드백 받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것을 일이라고 착각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어제 피드백을 받고 다짐했다.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현실 파악이 추상적이면 기획도 추상화가 된다. 두 번째, 대표와 부서장, 그리고 팀장님의 머릿 속을 들어간다. 그들의 일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 마지막, 지금 몸 담은 조직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파악하라. 사실 그 답도 그들이 안다. 그 기반 위에서 놀자."

위의 글의 결론은 바로 “이제 땅으로 내려오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다르게 행동하고자 애썼다. 그렇게 2주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30분 이상 걸리는 심화인터뷰를 총 9분과 진행했고, 간단한 테스트는 대략 60여분을 만나서 진행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컨셉이 바뀌어 나갔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어느새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기획’이 아니라 ‘발견’을 한다는 느낌이었고,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것들이 갈수록 더 ‘단단한 현실’를 만나며 변해갔다. 쉽지 않았지만, 즐거웠고, 특히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접근법은 정말 중요하다. 나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요즘 미국에서 정말 핫하다는 와이파커도 그랬다. 그러니까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물어보라. 그게 답이다. 

"와이파커가 성공한 비결은, 그들이 아이디어를 평가할 때 동료들의 의견을 구했다는 점이다. … 최선의 방법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무작정 낸 다음에 동료 발명가들로부터 의견을 구하고 나서, 어떤 아이디어가 실용성이 있는지를 식별해내는 능력을 더 연마하는 일이다."

3) 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법 
질문이다. "전문성, 가능성, 그리고 헌신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 중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조직은 어디일까?” 우리의 직관과 위배되는 결과일 수 있다. 결론은, 헌신이다. 창립자들이 헌신을 강조하는 조직문화를 조성한 기업들은 나머지 두 가지 청사진 (기술, 잠재력)에 비해 월등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같은 열정과 목표를 공유한 사람들에 둘러싸인 랜드의 직원들은 강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꼈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과 동료들에 대해 그 정도로 강한 결속력과 유대감을 느끼게 되면 다른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나는 예전에 스타트업을 다닐 때 이런 느낌을 가졌다. 그 특유의 소속감과 유대감은 아직도 작은 커뮤니티로 유지되고 있을 정도다. 그때를 돌아보면 다들 뭐 그리 뛰어난 능력이나 전문성은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가치로 우린 똘똘 뭉쳤었고,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속되진 못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들어왔지만, 결국 더 많은 사람이 퇴사했기에. 이 책에 따르면, "조직의 생애주기의 초창기에는 헌신형 문화가 결실을 거둘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조직이 나이가 들어가면 헌신형 문화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헌신형 기업들은 다양한 인재를 유치하고, 보유하고, 통합시키는데 훨씬 어려움을 겪는다. … 심리학자 벤저민 슈나이더는 조직은 시간이 흐를수록 동질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직은 비슷한 사람들을 뽑고,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비슷한 사람들을 보유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고나 가치의 다양성을 솎아내게 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기업들에서는 유사성이 직원 채용의 기준이 되고, 직원들은 조직문화에 순응하라는 강한 압박에 직면하거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다."

이러한 헌식형 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독단성’이다. 구성원들이 하나의 가치로 정렬되는 것은 엄청난 퍼포먼스를 끌어내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다른 가치’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유사성이 직원 채용의 기준이 되는 순간 그 조직의 역동성은 사라진다. 근친 교배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 버리는 것이다. 특히나 독단적 리더 밑에서 길들여지는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당시에 내가 속한 조직도 딱 그런 모습이었다. 사실 돌아보면, 그곳에선 단 한가지 목소리 밖에 존재하지 못했다. 바로 ‘대표의 목소리' 뿐이었다. 

다양성은 곧 생태계를 의미한다. 하나의 종만 건강하게 살아남는 일은 없다. 내가 다니는 이 회사에서도 지혜가 필요하다. 워낙 강한 조직문화가 있는 곳이고, 또 최근 몇년 사이에 급격한 인수합병이 이뤄지고 있는 터라,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품기에 엄청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의견을 포용할 줄 아는 강한 조직문화를 조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역설적인 질문이 나의 고민이며,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꼭 해내고 싶은 나의 과업이다. 예전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진심으로 말이다. 


결론
다 쓰고 나니, 뭔가 촉박하게 마무리 된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그랬다. 지난 한 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였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와 교육에 투자했다. 2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도 글을 쓰기 보단 일을 해야 했고, 특히 퇴근 이후에는 집에 와서 잠들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책을 읽고 리뷰를 쓰던 시간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오리지널스’를 쓰는데 들일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조금은 불만족스럽다. 특히 워낙에 좋은 책이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했다는 것에 또한 의의를 둔다. 심북스라는 약간의 강제성이 아니었다면 이 글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이젠 나에게 물을 시간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순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회사에 다니면서 독창성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초심자의 눈’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최대한 늦추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고, 또 그냥 익숙해지는 것에 체념하는 사람이 있지만, 적어도 나는 최대한 늦추고 싶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퇴사하는 그 날까지 늦추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는 것은 바로 ‘기록’이다. 지금 내가 경험하는 일들을 최대한 날것으로 적는 것. 그것이 내가 나에게 주는 유일한 ‘시각 보호장치’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지금 쓴 글을 읽을 때 조금이나마 시력을 회복하지 않을까? 그 기대를 한다. 매일 30분은 반드시 글을 쓰는 것. 그렇게 나의 눈을 새롭게 뜨는 것. 그것이 내가 반복해야 할 나의 첫 번째 과제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실천’이다.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는 것은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을 새롭고 독창적인 일을 ‘몸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 몸으로 새긴 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난 내 이름을 건 서비스 하나를 만들고 싶다. 누가 보더라도 ‘아, 이건 강정욱이 만든거지!’라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하고 싶다. 강정욱다운 것.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그 결과물로 말하고 싶다. 그것은 결코 회사의 방향과 위배되어선 안 되지만, 나와도 멀어져선 안 된다. 회사와 나, 그 둘 사이에서 최적의 거리에 있는 그것. 그것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회사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을 먹는 찰나, 책에 이런 글이 봤다.  

“내 주장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그동안 내가 쌓아온 실적과 영향력 덕분이었다. 직원들은 나를 맡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 그것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으로 알려지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게 된다.” 

아차.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바로 ‘누가 그 일을 하는가?’이다. 욕심부리지 말자. 앞으로 1년,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책임'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것에 나를 담아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 그것이 바로 내가 될 수 있도록 한다. 독창성과 변화는 그 다음이다. 몸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많이 빙 돌아갔지만 결국 돌아온 곳은 ‘기본’이라는 자리다. 결코 잊지 말자는 각오와 함께 리뷰를 마친다.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들은 한번 만나는 것으로 왠지 아쉽다. 시간을 두고, 또 만나고 싶어진다. 책도 마찬가지다. 한번 읽고 나서, 뭔가 아쉬운 그런 책들이 있다. 나에겐 희망의 인문학이 그런 책이다. 나에게 '성찰과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소중한 책이다. 오늘 아침, 작년 1월에 읽었던 '희망의 인문학'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잠시 옮겨보았다.


"오늘날의 24번 구역과 내 아버지가 정치활동을 하던 당시의 24번 구역 사이에 드러나는 결정적인 차이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빈곤으로 고통받느냐 하는 것이다. 대공황 시기 24번 구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절대빈곤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빈곤하다고 생각할 때, 슬픔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

이제 24번 구역의 어느 누구도 절대비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 어디를 보고 있든, 어떻게 생각하든, 누구를 위해 기도하든 상관없이 쉼터의 거주자들이 바라보는 건 타인의 두툼한 지갑에서 넘쳐나는 부일 뿐이다. … 이제 24번 구역에서는 어떠한 정치활동도 일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경제가 지배 규칙이 된 것이다.

세계는 경주 만큼이나 상대적이며, 상대적인 빈곤은 견디기가 어렵다. 이것은 인류 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기존중에 대한 모욕이다. 게임의 끄트머리에서 중산층이 승자와 맺는 동맹을 선택하고 다른 모든 이들을 빈민으로 규정해버리면, 24번 구역에 시기심이 등장한다. 그 시기심에서 소외, 증오, 그리고 분노가 피어오른다." p. 57-58


결론은 이것이다. 불평등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존재할 때 발생하며, 그 속에서 폭력의 씨앗(소외, 증오, 분노)은 무럭무럭 탄생한다. 우리가 사회의 암덩어리라 생각하는 IS나 일베도 그러한 현상의 일부일 따름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니.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키케로는 주장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며, 사적 삶이 아니라 공적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말과 행동의 일치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적절하게 중용을 지킬 수 있으며, 정치를 통해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P.71


내가 내리는 이 책의 짦은 결론은 이렇다. '성찰적으로 사고하고, 함께 대화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하라' 인문학이라는 지적 동력 없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실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자유의 형태가 처음으로 확연하게 드러났던 고대 아테네에서는 ‘공적 세계’에서 인문학을 따로 떼어내는 일이 불가능했다. 인문학과 도시국가는 자신의 존립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다.(p.27)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고대 폴리스에선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현자가 아니라 미치광이로 취급했다. 폴리스에스 진정한 삶이란 정치적인 삶이었으며, 다른 것은 생각해볼 가치조차 없었다. 개인적 삶에 매몰된 사람들은 수동적이었기 때문에 시민의 대상에서 배재됐다. 폴리스의 경이로움은 대화 속에, 그리고 언제나 공적인 삶, 행동하는 삶 속에 존재했다. 그러므로, 함께 대화하고, 행동해야 한다. 글을 마치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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