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사실 다시 글을 남기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지난 번에 쓴 '이너게임'이란 글 때문입니다. 사실 제 예상보다, 이너게임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책 추천 받아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각보다 어려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

나름 원망 아닌 원망도 들어야 했는데요. 덕분에 "아직도 내 글이 너무 어렵구나. 좀 더 쉽게 쓰자."는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빌려서 피드백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 

다소 어렵다는 분들을 위해, 나름의 변명과 위로를 드리자면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코칭이란 분야에 대해서 많이 읽어보지 않은 경우에 낯선 개념이 주는 어려움이 컸으리라 생각 됩니다.
마치 처음 여행가는 외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내집 안방처럼 자유롭게 돌아 다니기는 어렵듯, 코칭이란 분야에 대해서 처음 접하는 분들이 많을테니 그로 인한 이해의 어려움이 예상이 됩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해 주셔요.

두 번째, 번역이 좀 아쉽습니다. '비평가적 인지'라거나 '기동성'이라거나.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번역이 매끄럽게 잘 된 편은 아닙니다. 원문으로 해석하면 되려 이해가 쉬우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책 마시고 여러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2번째 읽었을 때 이런 내용이었나 하면서 새로워했고, 3번째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닐 거라 믿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너게임에 나온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다른 책 한권을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바로 구본형 소장님의 '필살기'라는 책입니다. 구본형 소장님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낯선 곳에서의 아침’ 등의 책으로 유명한 변화경영 전문가입니다. 
안타깝게도 2013년에 갑작스래 돌아가시고 말았지만, 후학들로 구성된 구본형변화연구소가 이어져 내려오면서 그의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이자, 제가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에 큰 영향을 미치신 마음 속 스승님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소개를 보시고 관심이 생긴다면 다른 책들도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사실, 소장님의 책 중에서 '필살기'는 제가 그리 좋아하는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제가 시의적절 했기에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읽어보시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추천드립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1. 욜로와 영수증, 우리는 무엇을 따라가야 하는가?

YOLO(욜로), 다들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얼마 전, 한참이나 YOLO(You only live once) 열풍이 불었습니다.
"단 한번 뿐인 삶,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길꺼야!" 라는 주제의식은 나름 시의적절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을 풀어내는 방식은 어떠했을까요?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진행하던 모든 일을 접고 제주도로 내려간 사람도 있고, 몇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니기로 결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수도 있고, 나름의 필요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방식이 더 이상 내 삶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는다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일탈적 소비'에 불과했다면 어떨까요? 
수 많은 기업들의 욜로 마케팅에 쉽게 휘둘려 버리는 상황도 진정한 ‘자기 만족'이라 볼 수 있을까요?

이 극단에 ‘김생민의 영수증’이 있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욜로하다 골로간다’는 말을 유행시킨 김생민은 이 코너에서 인생 첫 전성기를 맞이하죠. 
저 역시 몇 편을 들었는데, 재미있더군요. 저 역시 물가 비싼 서울에서 살면서, 혼자 버는 입장에서, 아이도 키우는 상황이라 공감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죠. 돈이라는 건 원래 안 쓰는 것이죠. 저도 처음 들었습니다만, 이러한 사람들을 ‘YALT’(You also live tomorrow) 족이라고 부르더라구요. 
우린 내일도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능한 혼자 다니며, 음악은 1분 무료 듣기로 듣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미래를 준비합니다.


욜로와 영수증, 무엇이 정답일까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할까요,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해야 할까요?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죠. 어쩌면 이 딜레마는 같은 문제의 다른 ‘해결책’이 아닐까요?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요? 최근, 일련의 현상을 지켜보면서 나름의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욜로와 영수증, 이러한 신드룸의 본질은 바로 현대인의 ‘불안’ 때문이라고 봅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동시다발적 불안이 우리를 목 조릅니다. 일을 해도 불안하고, 놀아도 불안합니다. 돈을 써도 불안하고, 안 써도 불안합니다. 
나의 미래가 불안해서, 살아있는 현재에 모든 것을 걸거나 (YOLO), 지금이 아닌 앞으로의 먼 미래에 모든 것을 겁니다. (YALT)

저 역시 그랬습니다. 이 글에서 모두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꿈꾸던 이상'을 쫓아 현실을 벗어나고자 애쓴적도 적잖이 있고,
"미래 따윈 개나 줘”란 생각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버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 경험은 늘 얼마의 후회를 남기더라구요. 
적어도 저에겐 멀리 떨어진 이상 속에서만 사는 삶도, 순간 순간 펼쳐지는 현실 속에서만 사는 삶도 ‘정답’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질문은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와 미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근본적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합니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필살기’를 제안합니다.

P. 20 "참을 수 없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두려워 말고 그 일을 따라 나서라. 그 우주적 떨림을 거부하지 마라. 그 일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면 그 일이 곧 자신의 천직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런 떨림을 얻지 못했다면 지금 주어진 일을 아주 잘 해낼 수 있는 즐거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을 알아내는 순간 매일 숙제처럼 목을 죄어오던 일상의 일들 중에 어떤 것들은 나의 타고난 적성에 잘 어울려 이내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일이 내 천직으로 가는 입구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 일에 통달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는 평생의 직업으로 변용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직장인의 필살기 발굴 원칙이다."

어떻게 해야 ‘필살기’가 우리 같은 직장인의 반복되는 일상에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같이 한번 답을 찾아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반복되는 일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한번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아니 우리 직장인은 얼마나 업무에 몰입하고 있을까요?
몇년 전 기사이긴 하지만, 한국경제 (2013년 10월 21일)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 직장인의 67%는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며, 22%는 ‘적극적 비몰입’상태로 업무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무에 몰입하는 비율은 약 11%에 불과하다."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부끄럽게도, 저 역시 스스로에게 "100% 집중하고 있는가?" 라고 자문한다면 떳떳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과 SNS가 일상을 지배하는 요즘은 더욱 몰입이 어렵습니다. 위기의 전조입니다.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몰입을 하지 못하니, 다른 곳에서 그리고 보다 멀리서 '나'를 찾습니다.

p28 직장인의 정신적 불행은 일 속에 ‘내’가 없기 때문이다.
일 속에 자신이 들어 있는 지 자세히 살펴라. 충분히 깊게 들여다보면 그 속에 ‘내’가 있다. 여기가 출발점이다.

우리만의 필살기를 갖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어디 멀리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일상과 업무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공부로 예를 들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공부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과 잘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공부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공부' 그 자체를 싫어합니다. 공부를 중간정도 못하는 사람은 '공부' 중에서도 예를 들면 '수학'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수학' 중에서도 '미적분'을 싫어하고, 공부를 아주 아주 잘하는 사람은 '미적분'중에서도 ‘특정 문제'가 싫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무엇을 잘 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가 구체적이고 명확 할수록, 그것을 '잘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업무에 그대로 가져와 봅시다. 안타깝게도 많은 직장인들이 '업무' 그 자체를 싫어합니다. 
'워어얼화아수목금퉐'이란 말이 있듯, 오로지 불금만 목을 빼고 기다립니다. 
물론, 직장에서의 그 힘든 스트레스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여기서 단순히 결론 지어선 안 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나는 무엇이 좋고, 무엇이 싫은가?” 여기에 대한 세밀한 분별이 있는 사람이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더 낮고, 성과도 높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선 일상 업무를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장이 아닌 이상, 어떤 직무도 한 가지만 반복되진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업무를 한번 세부적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아래 5가지 분류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의 업무가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그 수많은 일을 쪼개고 쪼개서,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p.35~39 업무를 최소 단위로 나눌 때의 원칙
People: 사람을 만나서 진행되는 모든 일- 보고, 멘토링, 코칭, 면담, 판매, 설득, 의견교환, 반론, 지원 등을 얻어내는 일
Activity: 다수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는 모든 일- 회의, 모임, 평가, 세미나, 발표, 강연, 프로젝트 등
Paper: 모든 서류 작업의 총칭 - 세금계산서 발행, 전표 만들기,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들기, 엑셀 보고서, 디자인 등
Event: 행사 관련된 일련의 준비활동 - 홍보의 기획, 공간 셋팅, 도구 설치, 스폰서, 강사 섭외 등
Research: 특별한 결과를 만드는 일련의 연구 및 개발 - 자료 구하기, 고객 반응, 실험, 개발, 기록, 전문가 자문 구하기,

예를 들어, 제 첫 직장생활을 적어보겠습니다. 당시 제 업무는 교육 영업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업체를 찾고 전화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지만(Research - 고객 발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건 재미있었습니다. (people-대화) 교육이 성사되면 강의를 듣고, 피드백하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Activity-강연) 하지만, 영업 그 자체에 아주 흥미를 느끼진 못했습니다. (People-세일즈) 강의안이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건 괜찮았지만(Paper-프레젠테이션), 회계 관련 처리를 하는 건 그때도 지금도 영 잼병이죠 (Paper - 세금계산서)

그리고 이런 저런 자료를 찾고, 공부하는 건 좋아합니다. (Reserch - 책, 자료) 그렇게 자료를 모아 나만의 컨텐츠를 만들면서(Paper -프레젠테이션) 함께 스터디를 했었는데요. (Activity- 스터디 모임)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저는 지식을 모으고, 정리를 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는 2년 정도 그렇게 스터디를 했습니다. 결국 회사를 나와서 작은 스타트업을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본격적인 교육을 하게 되었죠. 그런 경험을 쌓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오기 전 3년 간 1인 기업을 하면서 계속해서 교육 컨텐츠를 만들고 학습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게 되었구요. 헌데, 제가 만약 영업을 하면서 그 자체에 흥미를 못한채로 머물러 있었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감히 예상컨대 높은 수준의 몰입도, 성과 창출도, 색다른 경험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일상의 업무를 세부 항목으로 나누기! 그것이 필살기 발굴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수 많은 일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 나를 드러내는 일'를 찾는 것.
이를 분명히 알고 있다면, 여러분도 첫 걸음을 내딛은 것입니다.


3. 찾았어요! 그렇다면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자, 여러분이 한 가지 일을 발견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중요도’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직장인에게 회사는 고객입니다. 늘 그렇듯 내가 아니라, 고객이 가치를 매깁니다. 나의 업무 중에서 어떤 일은 상대적으로 시시하고, 어떤 일은 비교적 중요합니다. 그 순위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와 잘 맞으면서도, 회사 성과에 중요한 업무.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의 '핵심 업무'입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한 것입니다.

자, 이제 갈 곳이 정해졌고, 달릴 의지도 생겼습니다. 남은건, ‘숙련’입니다. 새로운 습관이 실천을 이끌고,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부여한 규율이 행동의 고삐를 쥐게 하는 것이죠. 그러면 시간이 지나 빵이 익어가듯 각자의 필살기도 구워진다고 믿습니다.

P. 171 실천은 곧 매일 일정한 시간을 쏟아붓는 집중력과 반복 훈련을 의미한다.  아직 우리는 전환의 과정에 있다. 창조는 아직 개인적인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 맡긴 일은 회사에서 업무 시간에 실습하고 실험하여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허용되지만 회사가 시킨 일 이상을 스스로 창조하여 공부하고 실험할 때는 개인의 시간을 추가로 써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자신을 위한 투자이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평생직업 하나를 발굴해 내는 작업이다.

앞서 정한 핵심 업무를 '체계적으로 훈련'하다보면 나만이 차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회사 내에서 이름이 알려지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것이 넓어지면 업계에 이름이 퍼지게 됩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브랜드 파워가 되겠죠. 결국, 브랜드란 내가 줄 수 있는 가치에 비례해서, 영향력이 갖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통달의 경지에 이르려면 ‘나는 이 일로 유명해질 것이다’라는 뜻을 먼저 세워야 한다. 뜻을 세우고 나면 방법은 따라온다. 승부를 걸만한 전략적 태스크를 찾아내 ‘그 일로 유명해질 것’이라 뜻을 세우고 ‘어느 누구도 너처럼 그렇게 잘할 수는 없다’는 평을 들을 때까지 탁월함으로 치솟아 올라야 한다.


구본형 작가가 강하게 강조한 부분이 이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너처럼 그렇게 잘할 수는 없다’는 평을 듣는 것.
헌데, 이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선 수동적 태도로는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선 관점을 전환한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은 ‘나는 시키는 대로 일하는 수동적 월급쟁이가 아니라 내 직무를 비즈니스로 전환한 1인 경영자’라는 정신적 혁명이다. 
내가 곧 회사다.

내 직무를 비즈니스로 전환한 1인 경영자라는 말은 사실, 무서운 말입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반드시 한번은 지나가야 할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을 이리저리 거울에 비춰보며 철저하게 객관화해보는 기회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내가 회사라면, 이 회사는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지, 어떻게 팔고 있는지, 나는 이 회사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본형 작가는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선 ‘고정적인 투자시간’을 반드시 확보하라고 말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대를 정해놓고, 같은 양의 할일 정해 하라는 것이죠. 마치 하루 3번하는 양치질이 그리 어렵지 않듯 말입니다. 저 역시 출퇴근 시간은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몇 가지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한지 지금은 4개월째가 되었네요. 이제는 꽤 익숙해져서, 그 동안 부족했던 글쓰기 시간과 영어 공부, 운동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습니다. 

필살기는 현재의 업무에서 시작되지만, 미래를 겨냥해야 합니다. 익숙하지 않더라고 적응해야 하죠.
새로움이 몸에 완전히 익었을 때, 우리는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의지는 약하지만, 습관은 강합니다.

P. 178 생활 습관 중 지금 꼭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은 고정적인 투자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매일 같은 시간대와 같은 양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결정적이다그리고 이 시간에 할 일 하나를 정해야 한다어렵게 시간을 확보해 놓고정작 그 시간에 딴 짓을 하면 안된다또한 이것저것 섞어서도 안된다. … 하나를 정하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계속한다이것은 근육을 키우는 매커니즘과 다를 게 없다.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욜로와 영수증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시작했으니 이것으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필살기’에서 이 두 현상의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욜로는 후회하지 않는 삶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별로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예를 들면, 여행)은 가급적 의심해봐야 합니다. 나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섬세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반면, 영수증은 미래에 투자하는 삶입니다. 여기선 ‘우선 순위’가 중요합니다. 
앞서 ‘좋아하는 것’을 파악했다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잘 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다른 지출은 철저하게 틀어막아야 하겠죠. 
내가 가진 자원을 일점 집중하는 것, 이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것’과의 선순환을 불러일으킵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더군요.
욜로가 없는 영수증은 ‘내'가 없기 때문에 허무할 것 같고.
영수증이 없는 욜로는 투자되고 훈련되지 않았기에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글의 마무리를 ‘일에서 자신을 찾고’ 그것에 ‘시간을 내어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기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짧게 쓰려 했으나 쓰다보니 또 다시 길어져버렸네요.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P. 211~212 어떤 일이든 그것을 평생 죽을 때까지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다. 세월과 함께 점점 더 그 일을 잘하게 되고 그 일의 골수를 얻게 되면 그 일이 곧 내 삶의 정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말은 직업인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1. 안수호 2017.10.23 22:29

    지금 회사에서 술 먹고 퇴근 길에 읽으면서 적는 글. 자주 이 블로그 들어오는데 댓글은 처음이네. ㅎㅎ. 내가 삶에서 아끼는 책 중에 하나가 구본형 선생님의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 라는 책이어서.. 이 글 읽으면서 생각이 나더라구.
    아무쪼록 많이 배우고 느끼면서 살아가자고~언제 될지 모르는 그 날 되면 술 한잔 기울이자구!

    • 수호야! 엄청 오랜만이다 진짜. 잘 지내지?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작년부턴 다시 회사 들어가서 지내고 있지 ㅎㅎㅎ 올 연말이나 연초에 시간 되는 애들끼리 한번 보자~~ 어찌 사는지 궁금하네~ 구본형 선생님 책 좋아한다고 하니 더욱 반갑구만 :)

언제부터일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는 연초에 소설을 읽는 습관이 있다. 유래나 이유도 정확하지 않다. 

다만 추측건대 새해가 되면, 지난 1년간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게다가 겨울이다. 어느 때 보다 소설과 잘 어울리는 계절. 

그렇게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도 장편으로. 

작년 2016년에는 ‘은하영웅전설’을 골랐다. 삼국지와 함께, 내 중학교 추억을 다시 떠올릴 만한 책. 20년을 지나 다시 읽으니, 느낌이 참 달랐다

시에는 ‘전략과 전술’을 중심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심이 모아졌다. 

나의 우상이자, 동맹군 최고의 지장, 양 웬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멋있더라.


올해는 어떤 책을 볼까, 잠시 망설였다. 그렇게 고른 책이 ‘눈물을 마시는 새’다. 은영전과는 달리, 이 책은 처음 읽는다.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 자체가 15년 만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드래곤 라자 이후에 이영도 작가의 책도 처음이다. 

공부를 대단히 한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왜 읽지 않았을까. 요즘은 정말 그렇다. 그 시절에 공부 안 한건 별 상관없지만,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은 정말 후회된다.

마음만 먹으면 정말 원없이 읽어볼 수 있었을 텐데.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에이. 후회하면 뭐하나. 지금부터라도 많이 읽는 수 밖에. 판타지 소설이라니!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설레었다.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가볍게 정리해 보기로 한다 :) 



첫 번째 인상깊은 부분은 이영도 작가 특유의 수려한 ‘문장’이다. 기억에 남는 몇 개의 표현을 옮겨보고 싶다.

소설과 거리가 먼, 누구보다 매마른 정서를 가진 나로선, 이런 표현들이 그저 좋았다. 

판타지 본연의 역할, 나를 저 먼곳으로 옮겨놓는 것, 에 충실한 문장들. 그 때문에 소설 읽기 그 자체가 즐거웠다. 


“서녘으로 지는 해가 세상을 향해 마지막 빛을 뿌릴 때, 숲이 일몰의 애가를 부르기 시작할 때, 숲의 머릿결 사이로 새어드는 주홍빛 광선들이 질감을 가진 피륙처럼 허공을 미끄러질 때, 딱정벌레를 쓰다듬던 도깨비가 문득 돌아보며 익살맞은 미소를 지을 때, 케이건은 내일이라는 미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


“키보렌의 어둠은, 딱딱한 너무 등걸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슬로 몸을 씻고 음습한 초향 속에서 태양을 향해 소리 없이 호곡하는 그 어둠은, 신록으로 자신을 뒤덮은 대지가 완강히 햇살을 거부한 채 터무니없이 긴 시간 동안 키워온 밤의 사생아였다."


두 번째 인상깊은 것. 그것은 바로 ‘리더’에 대한 고찰이다. 그렇지 않아도, 리더십에 대해서 관심이 많던 차라 더욱 그렇게 보인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눈마새’에서 가장 유명한 질문이 등장한다. (지금부턴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한다.)


“네 마리 형재 새가 있소. 네 형제의 식성은 모두 달랐소.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있었소. 그중 가장 오래 사는 것은 피를 마시는 새요. 가장 빨리 죽는 새는 뭐겠소?” … 

“눈물을 마시는 새요.” … 

“다른 사람의 눈물을 마시면 죽는 겁니까?” 

“그렇소. 피를 마시는 새가 가장 오래 사는건, 몸 밖으로 절대로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 귀중한 것을 마시기 때문이지. 반대로 눈물을 몸 밖으로 흘려보내는 거요. 얼마나 몸에 해로우면 몸 밖으로 흘려보내겠소? 그런 해로운 것을 마시면 오래 못 사는 것이 당연하오. 하지만.” 

“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군.” 


이해가 되는가? 마치 선문답과도 같은 문장이다. 눈물과 피. 그리고 물과 독약. 아직은 뭐가 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명확하게 말한다. 

여기서 눈물을 마시는 새는 ‘왕’이라고. 그래서 왕은 가장 화려하고,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빨리 죽는다. 

그리고 왕이 사람들이 눈물을 다 마셔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눈물 없는 비정한 자들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여기선 각자의 해석이 필요하다. 나는 여기서 나의 해석을 던지고 싶다. 리더의 본질. 


리더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헌신'이다. 그 말인즉슨, 자신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  

결국,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자는, 리더가 아니다. 새치 혀로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하려는 자는, 리더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리더는 ‘부자연스러운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그래서 희귀하며, 가치있으며, 목숨이 위태롭다. 그런 각오가 있는 자만이,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오는 북부의 왕, ‘사모 페이’는 그런 점에서 진정한 왕이다. 

신을 잃어버린 두억시니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륜 페이를 살리려 하는 그녀는 

종족과, 성별과, 경험과, 능력을 초월하여 진정한 왕이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결국 리더십은 능력이나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욕망을 품고, 자신을 바칠 수 있을 때, 리더는 탄생한다. 

그렇기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리더는 선택하는 것이고, 또한 바쳐지는 것이다. 왕관의 무게는 아무나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인상깊은 것은, ‘신과 인간’의 차이점이다. 

인간과 신은 무엇이 다를까?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은 믿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그것은 동서고금,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진실이다. 우린 단 한번도 ‘진실의 눈’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오해하고, 자신의 기준에 끼워맞춘다. 심지어 ‘신과 자연’ 마저도. 

하지만 신은 다르다. ‘모든 것’을 인정한다. 말 그대로, ‘가능성 그 자체’이다. 결코 한 두 가지 만을 취사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이 신과 인간의 차이점이다. 여기서 도깨비의 신, 시우쇠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우쇠가 라수의 질문에 대답했다. 

“흥! 죽을 필요가 있어서 죽는 인간도 있느냐? 삶을 인정한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만 취사 선택하여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급작스러운 사고와 황당한 죽음도 인정한다는 것이다. 윷가락 네 개는 한꺼번에 던져져야 한다. 

그 중에서 배를 보이는 것, 혹은 등을 보이는 것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윷놀이를 할 줄 모르는 자의 말이다. 

페로그라쥬 사람들과 악타그라쥬 사람들이 분노한다면, 그 놈들은 놀 줄 모르는 자들이다. 그런 얼간이들에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인간에겐 ‘죽음’이지만, ‘신’에겐 ‘생성’이다. 삶을 일부만 긍정하는 것과 전부를 받아들이는 것. 그 둘 사이에는 건너갈 수 없는 수준의 ‘강’이 놓여져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게 뭐야. 세상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인생이 뭐 이래.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언제나 생명과 파괴는 동시에 일어난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진 방식이다. 


“인정하지 않겠다고?"

“예."

“우리가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우리는 너희들을 먹어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지"

“먹는다고요?"

“그래. 먹는 것. 그게 너희야. 그게 생명이지. 모든 동물들이, 식물들이. 생명이라는 생명은 모두 먹는다. 

먹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지. 우리가 만든 것은 그런 것이다. 너희들이 벌이는 모든 짓거리의 경계엔 큰 글씨로 뚜렷하게 적혀 있지. ‘일단, 먹고 나서.’” 


인정하기 싫다. 하지만, 아무리 위대하고, 고결한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에 ‘먹고 나서’가 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신과 동물, 그 사이에 놓인 무엇이다. 인생에는, 자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가진 슬픔에, 기쁨에, 놀라움에, 권태에, 사랑에, 증오에, 평화에,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이 세상은 언제나 혼란의 도가니였고, 또한 평화 그 자체였다. 가장 고결한 것과 가장 비참한 것은 언제나 함께 한다. 

문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인식의 장막에 가려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변화란, 있는 그대로를 이해할 때, 삶의 전체를 인정할 때, 세상에 뛰어들 때, 일어나는 법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구경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인정하고, 세상에 참여하라. 

그리고,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라. 행동하라. 그것이 이 소설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다. 





추신.

이 책을 보다 보면, 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인생’이 떠오른다. 

마치, 이영도의 입과 손을 빌려, 캠벨이 말하는 듯 하다. 인상깊은 구절이 있기에, 잠깐 옮긴다. 



완벽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모든 과정은 우선 뭔가를 깨뜨리는 것과 연관된다. 

생명이 움트기 위해서는 반드시 흙이 부서져야만 한다. 

씨앗이 죽지 않는다면 식물이 생길 수 없다. 

빵이란 결국 밀의 죽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생명이란 다른 생명들을 희생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근거한 것이다. 

자신이 살 만한 가치를 지녔다면 그 가치를 기꺼이 취하라. 

우리의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삶을 경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짝이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짝이다.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삶의 고통과 잔인함에 대한 부정은 결국 삶에 대한 부정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예”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후에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1. 2021 2021.01.23 03:44

    네마리의 새에 대한 제 생각으로는 각각 네종족을 상징한다 생각되네요.
    물은 레콘을 피는 도깨비를 독은 인간을 눈물은 나가를 상징한다 생각합니다.
    레콘은 물을 두려워하지만 다른 세 종족은 두려워하지않으며 피는 오직 도깨비들만이 두려워하는 액체고 독은 오직 인간이 인간에게만 사용하는 것이며 나가의 눈물은 다른 세종족과는 다르다고하죠.
    눈물을 마시는 새가 왕을 상징한다는것은 나가가 왕이 된다는것을 뜻한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털썩. 사무실에 앉자마자 하루는 시작됩니다. 시계는 멈춘 적이 없습니다. 똑각똑각. 모니터를 켜면 메일이 쌓여있고, 메신저를 키면 누군가가 말을 겁니다. 사방에서 나를 찾습니다. 대답하고, 답변하고, 달려갑니다. 여전히 시간은 총알같이 흐르고, 마음을 다잡을 때쯤, 하루는 지나가 있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습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도저히 집중하지 못한, 그런 날은 돌아가는 길도 무겁습니다. “난 왜 이럴까?” 자책하고, 후회도 됩니다. 배개에 머리를 붙이며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뜹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는 반복됩니다.

혹시, 여러분은 공감이 되시나요? 슬픈 현실이죠. 어느 특정인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직장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일'은 어떤가요? 안녕한가요? 불행하게도, 업무를 방해하는 적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새로운 정보로 가득한 스마트폰, 잦은 회의, 카카오톡의 알림. 이 뿐만 아니죠. 고객의 불만, 상사의 꾸짖음과 책망. 사방에서 나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끊임없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세요. 과연 그게 다 일까요? “난 왜 하는 일마다 이 모양 일까?” “이렇게 해도 될까? 진짜 모르겠어. 바보 같아.” 수 없는 자책들, 그것은 어쩌면 내 안에서 수없이 만들어내는 ‘나의 목소리'가 아닐까요? 이 때,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우린 더 충만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현 직장인 에스티유니타스는 제가 아는 그 어떤 곳보다 ‘젊은 기업’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회사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도 많은 편인데요. 종종 저는 그런 동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 과정에서, ‘일’이나 ‘직업’에 대한 질문도 받고, 나름의 답변도 하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 제각각의 '정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일은 임무의 수행이고, 누군가에겐 월급이며, 누군가에겐 책임이며, 누군가에겐 사교 활동이며, 누군가에겐 명예, 누군가에겐 정치, 누군가에겐 성장, 그리고 혹 누군가에겐 사명일수도 있습니다. 일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에 대한 제 생각을요. 일을 처음 시작하던, 오래되었던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 여러분께 소개 할 책은 ‘이너게임’입니다. 참고로, 이 책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 10권에 언제나 포함되는 그런 책입니다. 제 오랜 친구를 소개하려니 살짝 신나네요 :)




1. 이너게임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이너게임의 저자, 티모시 골웨이의 이력은 특이합니다. 그는 테니스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하나의 원리’를 터득하게 됩니다. 이후 스키, 음악, 골프 등에 실험해 보았으며, 나중에는 이를 기업에 전파하며 비즈니스 코치로 활동을 넓히게 됩니다. 심지어, 모든 영역을 성공적으로 말이죠. 도대체 그 원리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이 바로 ‘이너 게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나 자신과의 게임'에서 이기는 법입니다. 티모시는 수 많은 선수들의 훈련을 관찰하며 한 가지 이상한, 그리고 공통된 특징을 발견합니다. 바로 이것이죠.

"코치 시절 초기에 나는 두 가지 특징적인 현상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레슨을 받으러 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고치기 위해 정말 열성적이라는 점이었다. 또 코치인 내가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치료법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다들 믿고 있었다.” 코치들은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다양한 지시를 합니다. 해야 할 것과 해선 안 될 것은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이죠. “좋았어” 혹은 “틀렸어”라고 말하는 코치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학생의 역할은 점점 단순화되어갑니다. 자신도 모르게 외부의 판단에 길들여지는 것이죠. 정리하자면, ‘나는 문제가 있고, 답은 저기에 있어’입니다.

이렇게 학생들을 지도하던 티모시 골웨이는 어느 날, 생소한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위대한 스포츠 선수들이 최고의 능력을 펼칠 때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의외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한번쯤 그런 때 있으시죠. 완전하고 충만한 '몰입' 상태. 내가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 알고 있는, 적절한 난이도의 과제가 던져지고, 또 그에 맞는 역량을 가진 상황. 그럴 때면 우린 일에서 충만함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매번 그렇진 않죠. 이런 말도 들려옵니다. “누가 나를 비난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압력을 만들어내는 기분입니다. 기대만큼 플레이를 하지 못하면 자신을 비난합니다. 그러면 자신감이 더욱 떨어집니다.” 티모시는 발견합니다. 자기 자신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내면의 목소리’라는 것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여기서 ‘게임의 룰’을 바꿔버립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포즈나, 어깨, 라켓 쥐는 법 등 일절의 '지시'를 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 '공의 움직임'만 유심히 보라고 코칭합니다. 온 몸의 주의를 '외부의 지시'에서 '공'과 '손의 감각'으로 옮기는 것이죠. 그 외에 상세한 지도는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영상이 있는데, 테니스 경험이 전무한 아주머니가 이러한 코칭을 받고, 20분만에 공을 자연스럽게 넘기는 일이 벌어집니다.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이죠. 또한 티모시는 경기의 룰도 바꿉니다. ‘패자가 아닌 승자가 탈락하는 토너먼트’를 제안하죠. 패배자가 올라가고, 승자가 떨어지는 룰은 ‘승리’가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듦니다. 망설임 끝에 선수들은 자신들의 관심을 승패에서 '플레이 그 자체'로 돌립니다. "이기기 위해선,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그저 ‘순간 순간의 집중’이 남을 뿐이죠. 그러한 코칭은 '탁월한 퍼포먼스’로 증명됩니다. 지시와 명령이 없을 때, 지금 나의 상황이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 우린 자연스래 학습합니다. 인간은 원래 타고난 학습자입니다. 그리고 이너게임은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에 기초합니다. 변화의 걸림돌이 되는 장애를 없애는 법. 그것이 바로 이너게임의 원리이자, 코칭의 기본입니다.


"무언가를 바꾸길 원한다면 바꾸고자 하는 그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이너게임의 기본이다. 만약 당신이 예정된 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면, 우선 그 상황을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일과 시간과의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인지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매우 흥미롭게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P.118)



테니스의 이너게임



2. 뭔지 알겠는데, 내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이너게임' 원리가 운동이 아닌 일터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어느 날, 티모시는 AT&T의 상담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대부분 상담원은 일을 지루해하고 있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무엇인가요?” 반복되는 상담 업무 속에서 그나마 흥미롭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바로 ‘목소리’였습니다.

"우리는 ‘인지훈련’ 시리즈를 개발했다. 이것은 테니스를 배우는 학생에게 날아오는 공을 잘 보도록 연습시키는 방법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고객의 음성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들을 ‘온화함’, ‘친근함’, ‘신경질적임’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하고 각 속성의 수준을 1부터 10의 척도로 판정하도록 상담원들에게 요구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다양한 음성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했다. 마치 연기를 공부하듯. 스트레스 레벨이 9에 달하는 고객의 소리를 들은 상담원은 레벨 9의 온화함을 넣어서 응대한다." (P.75)

이것은 효과가 있었을까요? 대부분 그렇겠지만,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신경질적인 고객의 폭언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훈련을 통해 상담원은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평가가 개입되지 않은 자신만의 게임 (스트레스 레벨이 7인지 8인지를 측정하는 것)을 하는 사이에, 기존 업무의 스트레스와 거리를 두게 되죠.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순 없으니까요.

"이 훈련이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었을까? 상담원들의 스트레스는 대부분 신경질적인 고객에 기인하고 있었다. 상담원들이 고객의 음성에 집중하고 고객의 스트레스 레벨이 7수준인지, 또는 8수준인지를 측정하면서 상담원들의 기분은 고객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게 된다. 비평가적 인지가 긍정적인 대응을 만든 것이다. 상담원들은 지루함과 스트레스가 평균 40%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일이 재미있다는 응답은 30% 정도 증가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7년 전 제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첫 직장에서 제가 한 업무는 ‘영업’이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내성적인 성격이던 당시, 저는 제 자신을 바꿔보고자 ‘영업’에 지원 했는데요.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낯선 사람에게 전화해서 미팅을 잡는 ‘콜드콜’은 엄청난 스트레스였습니다. 10번 전화를 하면 1번 정도 성공했는데요. 9번의 거절을 버텨내는 건 사회 초년생인 저에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절이 일상이던 어느 날, 하루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기로 합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입꼬리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소리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죠. 그때부터 전 성공률을 측정해 봤습니다. 물론 어느정도 우연일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10번 중 3번 성공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수락률을 3배로 올린 것이죠. 성과도 기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나만의 게임을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실패하고 비난받는 목소리에서 벗어나,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면서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가 되는 것. 내 안의 자발성에 눈 뜨는 것이 이 시도의 진짜 결과입니다. 한번의 ‘작은 시도’가 결과를 바꾼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것은 다른 능동적 시도로 이어집니다. 저 역시 ‘입꼬리 올리기’ 이후에 몇 가지 실험을 더 했습니다. 어떤 담당자와 대화할 때 성과가 좋은지, 처음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설득을 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저에겐 작은 실험이었고, 게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영업에 대한 막연한 스트레스를 꽤 해소해 낼 수 있었던 것이죠. 이 방법은 그 이후로도 지속됩니다. 이후에 프리랜서로서 강의를 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 가급적 반복하려고 하지 않는 편입니다. 뭐든 기록하고, 아주 조금이나마 바꿔보고자 시도하는 것. 그것이 저에게 맞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회사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종종 저에게 이렇게 묻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서 의미를 못 느끼겠어요." 저는 되묻습니다."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주로 하고 있나요?”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을 디테일하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롭거나,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봅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하든,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영역은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을 하는 입장에선 그 ‘배움’이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생각해보니, 요즘 사람들과 협상 할 일이 많은데, 제가 엄청나게 깎고 있어요.” ‘협상’이라, 얼마나 좋은 ‘게임 소재’인가요. 그것을 붙들면 됩니다. 이번에 이렇게 협상해보고, 다음에 이렇게. 뭔가 다른 시도가 가능합니다. 그러면 협상은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온전한 나만의 ‘게임’이 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렇게 ‘실험과 배움’으로 가득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땐 이미 나는, 나의 목소리에 이끌려 움직이게 됩니다. ‘자발적 선택’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내가 선택하면, 저항은 사라집니다.

"학생은 자신이 스스로 학습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학습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되며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학생은 전통적인 지시와 통제의 학습방법에 심리적으로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습의 선택권을 갖게 되면 학생은 학습에 거의 저항하지 않는다." (P.44)





티모시 골웨이



3. 어떻게 해야, 이너게임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 아니냐는 비난이 벌써 들려옵니다. 물론, 일하는 것은 게임이 아닙니다. 냉철한 실전이죠. 성과가 좋지 못하면, 가차없이 평가받는다는 것, 저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직장인들의 동기부여는 ‘연봉’입니다. 성과를 내고, 연봉이 높아지고, 직급이 올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회사의 게임’입니다. 그 게임을 탁월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의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만이 유일한 가치도 아닙니다. 특히나 평생토록 일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우리에겐 ‘나만의 게임’을 발견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나와 맞아야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워야 오래가고, 오래가야 변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외부에서 요구하는 기준과 나만의 내적인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끝을 생각하기’입니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 예가 PCG그룹의 여준영 대표입니다. 저도 페북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인데, 철학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직원을 ‘일의 결과를 쌓이게 하는 사람’과 ‘흩어지게 두는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매월 회식장소를 정하는 ‘잡일(?)’을 맡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대부분은 투덜투덜 거리면서 일을 합니다. ‘아, 벌써 한달이 지났어?’하면서 괴로와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00회 회식 때쯤 ‘강남구 회식 지도’를 앱으로 만들어야지” 같은 일이지만, 그에겐 참 멋진 ‘그만의 프로젝트’가 되는 것입니다. 여준영 대표는 이 말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전통이 될 것이다” 끝을 생각하고, 거기서 출발하면, 내가 하는 아무리 작은 일도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에 부여하는 의미는 우리가 직장에서 하는 모든 행위의 배경과 상황을 결정짓는다." (P.135)

두번째 방법은, ‘되돌아보기’입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닌,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일어난다고 하죠.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성과를 내더라도 되돌아보려는 노력이 없으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내면화’되지 않습니다. 티모시 골웨이는 이 행위를 ‘디브리프’라고 합니다.

"하루를 돌이켜보고 ‘디브리프' 하는 것을 학습목표로 잡는 것이 좋다. 어떤 성과를 냈는가?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 잘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배웠는가? 이 STOP은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 하루 일을 마칠 때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돌아보면 그 다음 날의 질을 높일 수 있다.” (P.214)

하루를 정리하면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물어본다면, 아무리 정신없었던 하루라도 그날은 헛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내일, 더 나은 자신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죠.

마지막 방법은, ‘기록하기’입니다. 경험이 많아도 되돌아보지 않으면 배움이 적듯, 마찬가지로 성찰이 많아도 기록이 적으면 그 또한 아쉽습니다. 다들, 자신만의 메모장은 있으실 텐데요. 비단 일의 결과 뿐만 아니라, 업무 과정을 남기고 공유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쓰고 있는 것을 소개하자면, ‘에버노트’입니다. 직장생활 초기부터 쓴 에버노트는 저에겐 ‘두 번째 뇌’에 가깝습니다. 모든 기록, 생각, 업무는 이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정보가 스쳐지나갑니다. 그 중에서 의미있는 것을 저장하고, 카테고리화 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내가 가진 관심과 욕구를 그대로 드러내줍니다. 돌이켜보면 놀랍게도, 에버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찾아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이전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도대체 행방이 묘연합니다. 분명 나는 존재했지만,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기록만이 궁극적인 승리를 담보합니다.


글을 마치며.
만약, 여러분에게 여력이 있다면, '글쓰기'도 추천합니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여, 공유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산 활동’이자, ‘자아’를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무엇보다, 성찰적 글쓰기는 ‘나'를 발견하게 만들어 줍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오롯히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를 붙들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다 솔직한 나와 대면하게 됩니다. 제가 사내 그룹웨어에서 글을 공유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구요. 또 회사에서 누리는 저만의 작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 작은 일상의 반복은 결국 ‘일에 대한 정의’를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게 아닐까요? 그 첫 시작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충만함을 맞보시길 고대합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HY

최근에 교육 뿐만 아니라 인사 전반에 걸쳐서 관심이 많다. 채용부터 교육, 급여, 노무 등 다양한 분야와 함께 미팅을 하면서, 인사라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 책은 성과관리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얻고자 본 책이다. 



INSIGHT


1. 리더의 운명
리더가 똑똑하고 역량이 뛰어날수록 직원들의 집단지성이 점점 떨어지는 블랙홀 현상은 지금 많은 연구 결과로 나오고 있다 .내가 혼자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려고 하면 전문직을 택하는 것이 옳다. 함께 어울려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지에 합류한 이상, 리더란 이유불문하고 '남을 통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 운명'을 가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해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감이 생긴다. 남이 시키는 일을 알려준 방법대로만 하면 책임감이 높아질 수 없다. 리더는 모든 문제에 답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갓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2. 변덕스러운 원칙과 기준
1911년, 영하 60도가 넘는 남극을 향해 노르웨이의 아문센 탐험대와 영국의 스콧 탐험대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출발했다. 남극점에 최초로 도착한 탐험대는 모두가 알다시피 아문센 탐험대였다. 이 두 탐험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스콧 탐험대는 날씨가 좋으면 많이 걷고, 날씨가 나쁘면 쉬는 등 일관성 없는 행군 때문에 결국 식량관리와 체력관리에 실패해 무너졌다. 하지만 아문센 탐험대는 탐험대원을 모집할 때부터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20마일 행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조건 하루에 20마일. 약 32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는 사람만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실제 아문센 탐험대원들은 날시가 좋든, 눈보라가 치든, 반드시 하루에 20마일을 행군한다는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남극점을 향해 나아갔다. ...

남을 통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라 말하는 '신뢰'란 무엇일까? 신뢰는 화를 안 낸다고, 듣기 좋은 칭찬을 많이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이 예측 가능할 때' 생기는 것이 진짜 진뢰다. ... 민주국가가 '법'이라는 원칙으로 운영되듯, 조직의 리더는 개인의 생각이나 의지가 아닌 조직의 원칙과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끌어야 한다.



3. 피드백의 2가지 질문
1) 기여도 : 최근 조직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 성취한 것을 말하게 하고 개선 점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2) 능력의 향상도 : 최근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 구성원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REVIEW

성과관리에 대해서 단순히 '당근과 채찍' 혹은 '등수 매기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

어느 정도의 철학과 방법론까지 모두 전달한다, 다만, 기반이 와는 맥락이나 철학은 이용석님이 쓰신 '인사관리시스템 3.0'이란 책에 더 자세히 나와있는 것 같다. 이 책에는 '실전 방법론' 즉, 어떻게 실제로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스킬이 더 자세하게 담겨 있다. 

목표 설정에서 리뷰까지. 구성원들의 성과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분들께 아주 추천하는 책!





WHY
“얼마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에세이를 읽었다. 그때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하루키 소설이었다." 


INSIGHT
하이다는 웃었다. “대학에서 그런 걸 배울 거라고는 애당초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내가 여기서 얻고자 하는 것은 자유로운 환경과 시간뿐이에요. 그것 말고는 딱히 바라지도 않아요. 자신의 머리로 사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학문적인 장에서 논하는 것은 원래 이론적 정의가 필요하죠. 이건 정말 귀찮은 이야기에요.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실주의자 볼테르가 한 말이에요.” “너도 그렇게 생각해?” “무슨 일이건 반드시 틀이란게 있어요. 사고 역시 마찬가지죠. 틀이란 걸 일일이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틀을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돼요. 사람이 자유롭게 위해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틀에 대한 경의와 증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이중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에요.” p. 85

나는 내용 없는 텅 빈 인간일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용이 없기에 설령 일시적이라 해도, 거기서 쉴 자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밤에 활동하는 고독한 새가 사람이 살지 않는 어느 집 지붕 뒤편에서 한낮의 안전한 휴식처를 구하듯이, 새들은 아마도 그 텅 비고 어두컴컴한 조용한 공간을 마을에 들어할 것이다. 그렇다면, 쓰쿠루는 자신이 공허하다는 것을 오히려 기뻐해야 할지도 모른다.” p.291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은 용서는 없고, 가슴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p.363


REVIEW
예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 그야말로 하루키 소설이다. 
솔직히 소설 속 수 많은 떡밥이 제대로 해석된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을 하는건지 어리둥절한 부분도 많다.  
한 가진 분명하다. 색깔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의 배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의 확인.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쓰는 리뷰입니다.

늦었지만,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새해가 되면 무엇을 하나요? 축하 문자를 주고 받나요? 해돋이를 보러 가나요? 저는 뭔가 새로운 목표를 세우면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저 뿐만은 아니죠. 1월 1일이 되면 "올해는 뭔가 달라질거야!" 라고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영어 학원과 헬스장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립니다.

처음 계획처럼 목표가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1월 셋째 주 월요일'은 가장 우울한 날이 되곤 합니다. "나는 역시 안 되나봐.” “이럴 바엔 목표를 괜히 세웠어.” 쉽게 포기해 버린 자신에 대한 실망이 가득합니다. 그것이 적절한 목표인지 검토하기 보다는, 그저 쉽게 패배를 인정하고 말죠. 새해 첫 글이니 만큼, 이번엔 목표 설정에 대해서 써 보고자 합니다. 작년 이맘 때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께 이 책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상당히 좋았거든요. 그때 들은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제 언어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 해 드릴 책은 브라이언 리틀의‘성격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과연 '목표 설정'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요?




1. 지금의 나는 타고나는 것일까?

인간은 무엇에 좌우될까요? 타고나는 '본성'과 길러지는 '양육'만큼 오래된 논쟁도 없습니다. 각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산처럼 많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본성과 양육'과는 다른, 한가지 새로운 변수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열망’입니다. (역자는 이를 자유 특성이라고 해석 했습니다만, 의미 전달을 위해서 '열망'이라고 옮겼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미래를 계획하고, 몰입할 때 경험하는 것이 바로 ‘열망’인데요. 돌이켜 생각하면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중요한 목표를 추구하다가 더러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변해버린 경험, 다들 한번씩 있을 겁니다. 저자는 가족을 깊이 사랑하는 어머니나, 프로의식을 가진 가수를 그 예로 듭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원래의 성격을 넘어서 ‘더 좋은 엄마’가 되도록 만들거나, ‘직업에 대한 프로의식’이 내성적인 성향을 뛰어 넘어서 ‘더 멋진 가수'가 되도록 이끈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왜 자유 특성에서 나오는 행동을 하는 걸까? 이유는 많지만, 특히 중요한 이유가 둘 있다. 프로 의식과 사랑 때문이다. 스테파니는 반친화적 성향이 강하지만 가족을 깊이 사랑했고, 생물 발생적 자아에 순종하는 수동적인 선택을 하기보다 성격을 벗어나 행동해야 그 사랑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마커스는 프로 중에 프로이고, 그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동료 뮤지션과 후원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자극을 주어야 했다. 조용히 뒤로 사라지고 싶은 원래의 생물적 기질을 억누른 채 그가 꾸준히 보여준 것은 바로 이런 프로 의식이다.” (p.90)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인생은 단순히 ‘주어지는 설정값’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제3의 본성, 열망. 그것은 나를 이겨내도록 합니다. 저의 예를 들고 싶습니다. 어릴 적 저는 꽤 오랫동안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따라가는 삶이었습니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대기업 엔지니어인 선배들이 부럽지 않았고, 오히려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27살이 되어서야 목표를 정했는데, 당시의 저는 사람들의 성장을 돕는 ‘라이프 코치’가 되기로 했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거기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 열망이 저를 조금씩 변화시켰습니다. 원래 내성적인 성향 이었지만, 더 많이 교류하고 배워야 했기에 모임을 찾아 다녔 습니다. 매번 읽고 싶은 책만 읽었지만, 전방위적인 지식이 필요했기에 ‘일년 100권 읽기’에 도전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것도,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 입니다.

저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열망. 이 두 가지가 지금의 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미래의 나’에 대한 기대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더 나아질 내 모습을 의지처로 삼아 나아갈 때,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목표 설정은 삶의 질을 높이는게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


2. 내 삶은 내가 조절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히 얻을 수 있다고 믿나요? 아니면 외부의 환경에 쉽게 좌우된다고 믿나요? 저자인 브라이언 리틀은 이를 ‘내부 지향’과 ‘외부 지향’이란 단어로 정의합니다. '내부 지향'은 삶을 조절하는 힘이 내부에 있다고 보고, '외부 지향'은 그 힘이 외부 상황에 있다고 보는 성향입니다. 쉽게 말해, 외부 지향은 삶이 우연적 요소나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 편이죠. 실제로 그들은 우연이 개입될 여지가 높은 일에 더 많이 투자한다고 합니다. 농구로 들자면 비교적 확률은 높지만 점수가 낮은 2점 슛 보다, 불확실하지만 점수가 높은 3점 슛을 선호하는 것도 ‘외부 지향자’라고 하죠.

예상하겠지만, 많은 경우 ‘내부 지향자’가 ‘외부 지향자’에 비해 삶을 생산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들은 상황을 운에 맡기지 않습니다. 필요시 만족을 보류한 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는 것도 ‘내부 지향자’입니다. 힘든 시험에선 ‘열심히 공부하기’ 단추를, 멋진 상대를 만나면 ‘매력 발산하기’ 단추를, 불확실한 미래 앞에선 ‘낙천주의’ 단추를 누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통제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 그것은 독이 됩니다. 믿음이 강할 수록, 그 좌절도 크기 때문이죠. 그리고 언제나 '인생'은 '계획'보다 큰 법입니다.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 마저 완벽하게 통제하려 한다면, 삶은 엉망이 됩니다. 저의 경우, 회사를 들어오기 전 3년 동안 1인 기업가로 활동 했는데요. 제 노력과 상관없이 모든 교육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고 (메르스 사태), 큰 노력 없이 운 좋게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 농부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마음말이죠.

우리는 어려서부터 운명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한계는 우리 상상에서 나올 뿐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조절력이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경종을 울리는 연구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음 스트레스 연구에서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단추라든가, 요양원 연구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노인들의 비현실적인 기대라든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삶이 엉망이 되고 그 뒤로 고통을 경험한 여성의 가슴 아픈 사연과 증언 등이 그런 경우다. (P.160)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혜는 ‘균형’에서 옵니다. "나는 뭐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번쯤 ‘목표를 세우지 않는 여유’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목표를 세워봐야 뭐해,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게 없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오히려 꼼꼼하게 목표를 잡고 삶을 통제하고자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단순히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균형잡힌 관점’을 획득해서 목표를 정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자, 그렇다면 목표를 정했다고 칩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어떻게 하면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모두 나름의 ‘새해 목표’를 가지고 있겠죠? 마지막으로 질문합니다. 각자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총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 번째 요소 “이 목표는 나에게 얼마나 의미있는가?. 두 번째 요소 “이 목표는 얼마나 성취(관리) 가능한가?” 세 번째 요소 “이 목표는 얼마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지지받는가?” 마지막 요소 “이 목표를 추구할 때 얼마나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는가?” 여러분은 목표 실현을 위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목표의 의미가 중요할까요, 관리 가능성이 중요할까요, 타인의 지지가 중요할까요, 긍정적 감정이 중요할까요. 하나만 골라보시길 바랍니다.

작년에 이 질문을 받고, 저는 개인적으로 ‘목표의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미없는 목표는 잘 신경쓰지 않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의미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으론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취(관리) 가능성’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쉽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기쁨을 느끼나요? 하루에 업무 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하나하나 지우면서 즐거움을 느낀 경험이 다들 있으시겠지요. 하기로 한 것을 할 때, 우린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은 성취의 반복'입니다. 눈으로 즉각 변화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전 매일 출퇴근 2시간 독서와 매주 1편의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이 올해의 작은 목표입니다. 별 것 아닌 행위의 반복이지만, 궁극적으로 제 나름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표는 '어떠한 하루하루'를 그리고 있나요?

앞에서 의미 있는 개인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놀랍게도 그 답은아니요다. 대단히 의미 있는 목표를 추구해도 삶의 질은 아주 미미하게 향상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관리 가능한 목표에 관해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관리 가능하고 성취 가능한 목표를 추구한다면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을까?  우리 연구 결과를 보면 목표의 의미보다 성취 가능성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공산이 크다. (P.277)

이 글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표가 의미있고, 성취 가능하고, 사람들에게 지지받고, 긍정적인 감정이 생긴다면 삶은 분명 더 나아집니다. 하지만 일상이 의미 없는 목표로 소비되고, 무질서하고, 타인의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마음이 끊임없이 고통스럽다면?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 목표를 재구성하는 편이 낫겠죠.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새해 목표는 안녕한가요? 함께 돌아봅시다. 그리고, 더 성장할 나를 위해 올 한해도 화이팅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바쁜 분들을 위한 3줄 정리

1. 사람에겐 제 3의 본성 '열망'이 존재하며, 이것이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2. 목표에 대한 지나친 통제는 좌절을 부르며, 균형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3.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작은 성취'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한 남자의 자기 변명서


세월이 지나며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낸다. 40대, 50대가 되고, 인생의 절정기도 함께 찾아온다. 
드높은 성취의 열매도 맛보고, 권력도 움켜쥔다. 하지만 그 영광의 시절을 모두 누리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그 성취는 '속물'이 되고, 변해가는 그를 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이 책은 지리학을 통해 중요한 진실을 내뱉는다. 
‘지리학의 제 1법칙은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지만, 
가까운 것은 먼 것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승하는 시절, 자신만 생각하기 쉬운 시절,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 봐야 한다. 
주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러하다. 나 혼자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 만큼 더 멀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모르는 이는 어느새 구멍에 처박힌 자신을 묵도할 수 밖에 없다. 
가까운 것은 더 긴밀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치기에.
 

주인공 ‘오기'에게서 나를 본다. 그의 변명에 동조하는 내 모습을 들킨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대로, 나 역시 구멍에 처 박힌다. 
인생의 행복은, 그 빛나는 불꽃은 결코 한번에 꺼지지 않는다. 한번에 하나씩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일상에, 순간에, 관계에 깨어있으라는 하나의 메시지이자 나에게 던지는 충고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읽혔다. 




[참고] 본 글은 ST UNITAS 사내 그룹 웨어에 올린 글입니다.

보안에 해당하는 내용은 없는 것 같아서, 개인 블로그에도 그대로 공유합니다. 






이번 달에 작성할 책은 우리 회사에서 발간되는 자랑스런 브랜드 전문 매거북이죠. <유니타스 브랜드>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유니타스 브랜드를 2009년에 처음 알았는데요. 관심있는 분야가 나오면 구입해서 보기도 했고, 가끔 권민님 강의를 찾아가서 듣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함께 일하고 있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자, 참 신기한 일입니다. :)

물론 저는 마케팅과 브랜드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업계에서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왜 제가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거기에 바로 이 ‘브랜드’의 매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 매력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그릇이 바로 이 <유니타스 브랜드>이기도 하구요.그렇기에, STian 여러분께도 제가 왜 브랜드에 열광하는지, 그 썰을 한번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호 <브랜드 내재화>를 읽으면서 제가 했던 생각을 한번 풀어 보고자 합니다. 휴일이나, 퇴근 후에 중간 중간 쓴 글을 붙였기에 어색할 수 있습니다만, 즐겁게 읽어주시길 :)


1. 가치를 위해 돈을 포기하는 사람들

P.14 / 이웃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남편에 대해서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간직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브랜드의 가치를 간직하기 위해서 다음에 또 벌 수 있는 돈을 포기하는 경영자는 바보가 아니다.’ 이 비유는 극단적이지만 브랜드 경영을 이해하기 위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실제로 브랜드의 세계는 가치를 위해 돈을 포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결국 브랜드란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은 자유를, 나이키는 승리를, 스타벅스는 도시의 안식처라는 ‘가치'을 팔고 있죠. 개인에게 대입해 봐도 비슷합니다. 한 개인이 돈이 아니라 어떠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쫓고, 사람들이 이를 인정해줄 때 그는 그 가치를 대변하는 하나의 '휴먼 브랜드'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인, 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하나의 목적을 쫓아서 인생을 던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행동으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보여주는데요. 그래서 그가 선택한 전략이 부산시장 선거에 나가는 것이었죠. 그 무모한 도전의 결과 그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선명한 브랜드를 갖게 되었고, 이는 훗날 대통령이되는데 어마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지금도 그를 추억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브랜드의 힘을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한번쯤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해 본 경험이 있지요? 저는 그 당시에 우리 자신이 내렸던 결정적 판단 근거. 그것이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잘 드러내는 비밀의 성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싸우고 부딪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연봉을 쫓아서 갈 것이냐?" 아니면 "내가 추구하는 의미를 쫓아서 갈 것이냐?"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서 갈 것이냐?" 아주 단편적인 예시긴 하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경계선이 아닐까요. 이때 자신의 선택이 곧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브랜딩’ 과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 역시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이 있다면, 공대를 나와서 교육 업계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친구들의 높은 연봉이 너무 부러웠지만, 지금은 거꾸로 몇몇 친구들이 절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넌 니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라고 말이죠.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나마 빠른 나이에 저는 저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 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욕망 하는지, 무엇을 기피하고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말이죠. 그리고 저는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정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이런 질문을 곧잘 던졌다고 하죠.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저 역시 제가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을 따라가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


2. 우리 기업만의 핵심가치를 정립하는 방법

P.30 / 많은 기업들이 핵심가치는 액자 속에만 걸어둡니다. 하지만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의사결정하고, 직원 평가가 이루어지는 등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상사가 리더십을 보여주고, 회의를 진행하고, 조직원을 육성해야 합니다. ... 사내용 책자를 하나 만들더라도 표지가 왜 검정색인지를 브랜드니스로 설명하는 페이지가 있다면 처음에는 핵심가치, 브랜드니스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어느새 생각과 행동이 ‘우리다움’으로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한 두 번의 만남을 통해 '그 사람이 이럴 것이다.' 라고 미리 짐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평가하게 됩니다. 어떻게 말하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꾸준히 보여줬는지, 이처럼 우리가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그 만큼의 ‘경험과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 "생각과 말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이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말을 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우선 순위에 따라 선택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꾸준히 말이죠. 그래서 전 사람을 평가할 때 가급적 조심합니다. 한 인간의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잊지 않습니다.

저에겐 이제 19개월이 갓 지난 아들이 있습니다. 한참 돌아다닐 시기라, 주말이면 이 녀석이랑 노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일요일도 어김없습니다.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먹이고, 입히고, 놀고, 씻어주고 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제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키우는게 이처럼 힘들지만, 지금까지 결코 배울 수 없었던 배움도 얻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배움은 바로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대로 하지 않고, 하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던 ‘말이 아닌 행동’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게 바로 ‘육아’가 아닐까요.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보여주는 특징이 있는데, 밀대나 청소기를 무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뭐든 주위에 보이는 건 쓱쓱 정리하고 닦는것도 잘 합니다. 왜 일까요? 바로 제 아내 덕분입니다. 더러운 꼴을 거의 못 보고 사는 우리 아내 덕분에 저는 맨날 혼나고, 아가는 밀대를 들고 돌아다니기 바쁩니다, 아내는 아가에게 청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 그것이 리더십의 기본이며 전부이기도 합니다. 가장 어렵기도 하죠.

기업도 하나의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도 그저 형성되는 법은 없습니다. 한 기업의 조직문화는 설립자를 중심으로 조직원들이 지금까지 반복해온 작은 행동과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에 올바른 문화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제가 보는 문화의 특성은 오로지 ‘적응성’입니다. 만약, 어떤 기업의 조직문화가 업종과 시대에 맞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 시킨다면 그 기업은 번창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쇠퇴 하겠죠. 그게 다 입니다. 문화는 옳고 그름의 범주가 아니지요. 다만, 중요한 것은 내부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아닐까요? 외부 고객의 목소리와 내부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여다 보고, 민감하게 깨어있는 사람이 많다면 그 조직은 자연스럽게 문화를 시대에 맞게 적응시키고 번창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합니다. 확실한 것은, 이는 결코 한 명의 개인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포시즌스 그룹 CEO 이사도어 샤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업문화는 반드시 조직 내부로부터 성장해 많은 시간에 걸쳐 회사에 몸 담아온 사람들의 집단적인 실행에 의해 탄생된다.” 그렇습니다. 집단적인 실행만이 이를 가능캐 합니다.


3. 철학이 지은 건물, 행복의 건축

p.78 / Q, 보통 브랜드 본사의 중앙에는 위용 있는 안내데스크나 접견실이 있는데요. 할리데이비슨 코리아의 건물 중심에는 탁아방이 위치해 있어서 놀랐습니다. 설계 의도가 무엇인가요? A. 건물을 짓기 전에 탁아방의 위치를 먼저 정하자 사람들은 건물 효율 면에서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건물의 효용은 무엇인가요? 이익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일까요? 저에게 건물은 ‘직원이 행복하게 일하는 곳’입니다. 행복은 경제 논리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건물을 지은 다음 가장 행복해지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와 직원들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부모와 함께 회사에 온 아이들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예전에 권민님의 강의에서도 들었던 사례입니다. 다시 봐도 멋진 사례구요. 건물 중심에 놓여진 탁아방.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 일까요? 몇 차례에 걸쳐서 반복하는 것이지만, 브랜드는 말로는 결코 표현될 수 없습니다. 그 정신은 '볼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중심이 된 철학은 결국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성과가 그저 ‘카피’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멋지다고 해서 '우리도 탁아방을 건물에 설치하자'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태도입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앞서서 철학과 정신이 깃들어야 멋진 ‘브랜드’는 태어납니다. 할리데이비슨에게 결과는 ‘탁아방’이었지만, 철학은 ‘행복’입니다.

행동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담긴 행동'과 '그냥 행동’. 기획서도 그렇지요. 진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유와 기획자의 강렬한 의도가 담긴 기획서와 그냥 작성해야만 하기에 작성한 기획서가 있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기획할 때 ‘왜’ 해야하는지 알고 기획한 적이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또한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진짜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기획서를 작성할 때,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는 꽤 몰입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끄적거린 기획서는 대부분 쓰레기 통으로 직행했던 것 같습니다. 설사, 그것이 통과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추진해야 하는 내 마음에는 스트레스가 계속 되죠.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돌아오는 건 자기 원망 뿐입니다.

결국,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를 의미있게 이루게 하는 것은 ‘철학’이라고 봅니다. 어떤 회사가 있습니다. 건물 중앙에 ‘탁아소’가 놓였다고 칩시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왜 탁아소를 거기 만들었나요?” 그들은 답변합니다. "여기 공간이 남아서 뭘 할까 하다가 탁아소를 만들었어요.” “네. 그렇군요” 같은 결과이지만, 우린 여기서 어떤 ‘메시지’도 느낄 수 없습니다. 결국 작은 행동부터 큰 행동까지,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우리는 누구인지. 이를 행동 하나하나에 이입하고,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작은 선택의 누적이 뭉쳐서 거대한 ‘철학’을 보여주는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누군가 ‘단기 페이퍼’를 왜 만들었냐고 물었을 때 ‘그냥 종이를 저렴하게 만들고, 유통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할 수도 있지만 ‘사용자가 ST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접하는 경험이 종이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180% 다르겠죠. 그래서 ‘철학’은 ‘행동’과 강렬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칸트의 명언을 조금 바꿔봅니다. '철학 없는 행동은 무모하고, 행동 없는 철학은 공허한 법'입니다.






끄적끄적 

나에겐 한 가지 역설이 있다. '내 책보다, 남의 책을 더 열심히 읽는다'는 역설. 

이러한 역설이 생기게 된 계기는 내가 책을 '구입'하면서 부터다. 2009년부터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던 나는 어느 순간 꽤 많은 책을 보유한 '장서가'가 되었다. 지금은 한 1.000권 정도 된다. (물론 10,000권 이상 가진 사람도 수두룩 하지만 나름대로;;) 그렇다 보니, 내가 읽고 싶은 왠만한 책은 가지고 있게 되었다. 책 사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가끔, 읽고 싶지만 사기에도 애매한 책을 만나게 된다. 

그때, 나는 초서를 시작한다. 내가 가질 수 없기에, 더 열심히 옮겨적는다. 마치 언제나 볼 수 있는 가족에겐 소홀하면서, 가끔 만나는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더 열과 성의를 쏟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끔 내가 초서했던 책들을 보면 대부분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아니더라.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가진 책이 언제 불타버릴지 아는가? 나는 뭘 그렇게 '내것'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가지고만 있으면 내 책인가? 아니다. 읽고, 이해하고, 삶에 반영해야 내 책이다.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주절거릴까? 이 책이 바로, 빌린 책이므로. 어른이 되기엔 난 아직 멀었다. :) 



옮겨적기 

27. 진짜 좋은 아이디어는 스스로 걸어서 널리 퍼져나간다.
-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 이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됩니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고 진짜 목적은 ‘숨어 있는 요구’를 끌어내는 것이라야 합니다. …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숨어 있는 필요를 끌어내 문제의 핵심을 찾는 일입니다. 

+ 숨어있는 필요, hidden needs 이 말처럼 하기는 쉬워도 발견하긴 어려운 말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소통하길 원한다. 그래서 카톡은 그 필요를 충족시켰다.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그 많은 메신저 시장에서 이기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47. 
- … 개미의 뇌는 용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투, 정탐, 운반 등 그 역할이 바뀔 때마다 뇌 자체의 시스템도 바뀐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뇌가 변화한다’는 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뇌는 여러모로 근육과 비슷한 기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운동선수는 자신의 종목에 맞는 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을 재정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라토너, 보디빌더, 스모 선수가 지닌 근육의 질과 양은 서로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운동선수의 근육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뇌를 의식적으로 훈련해 특정한 기능에 최적화시키는 접근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 뇌는 진짜 신비하다. '뇌의 가소성'이란 말을 내가 이해한대로 설명하자면, 뇌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그 중간의 무엇이다. 뭔가를 이해한만큼 '회로'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회로'가 사라진 만큼, 인지능력도 사라진다. 결론은 평생토록 '배우는 뇌'는 늙지 않는다는 말이며, 반대로 '배우지 않는 뇌'는 나이와 상관없이 늙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 만큼은 '일반적인 물리세계'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49. ‘센스’ 보다 중요한 것
- ‘나는 센스가 없어서 못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제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꺼내는 데 있어 센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좋아하느냐의 여부이기 때문이죠. 

… 누구보다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할 것. 누구보다도 그것을 더 많이 좋아할 것. 그것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 흥미를 갖고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것들에도 도전해볼 것. 이런 것들을 의식하며 매일의 과제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연습을 하루 거르면 그것을 회복하는 데 3일이나 걸린다고 하죠.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매일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의식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다. 진짜는 진짜 많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니까. 위대한 브랜드가 태어나건 건 아마 '그 브랜드'와 '자신을 일치시킨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자신 안에 무언가를 품고 있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그건 바로 '즐거움'이다. 앞서 언급된 '뇌'의 특성과도 다를 바 없다. 뇌는 '좋은 것'은 계속 기억하지만, '싫은 것'은 튕겨 낸다. 물론, 싫은데 꼭 필요한 것도 있다. 그럴 땐 싫은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익숙한 것'을 '좋다'고 느끼는 것이 뇌의 또 하나의 특징이니까. 결론, 무언가를 '반복'하면 된다. 그것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53.’ 귀찮음'에 대한 시도
- 기회는 교묘히 숨겨져 있죠. 그렇기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한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다만 그것이 기회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귀찮다고 생각해 기회를 외면해버린 사람일 뿐인 거죠. 귀찮다고 생각되는 일에 엉거주춤 불평불만하다 보면 정말로 그 일은 자신에게 손실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면 실이 아닌 득으로 돌아와 주죠. 귀찮다고 생각되는 일일수록 의식적으로라도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기회도 찾아오니까요. … 문제가 찾아지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보고도 못 본 척 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보는 건 어떨까요?


63.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체질은 ‘변화를 줄이는’ 노력부터
- ‘평소와는 다른 환경일수록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지만 제 경우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같은 곳에서 개를 산책시키고 같은 카페에서 같은 음료를 마시죠.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에 일상 업무의 리듬을 지키며 가능한 한 변화를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변화라는게 스트레스의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온 힘을 다해 리듬, 같은 페이스,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래야 ‘바로 지금이다’ 싶을 때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긴장과 이완의 폭이 클수록 그 힘이 커지는 근육과 비슷하죠.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가능한 한 릴렉스 상태를 유지하며 부담을 주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다. 거기서 나오는 말과 비슷하다. 그는 일어나서 5-6시간 동안 글을 쓴다. 그리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쉬고, 독서를 하거나 한다. 매일을 그렇게 반복한다. 글을 더 쓰고 싶다고 해서 더 쓰지도 않는다. 매일 일정한 양을 쓴다. 그것이 마스터의 비법이다. 


67. “몇 퍼센트의 사람이 익숙하다고 느낄 것인가” - 기시감을 조절한다.
- 새로운 기술이나 가치를 구현하려는 상품일수록 익숙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몇 퍼센트의 소비자가 익숙하다고 느낄 것인가' … 대중적인 상품일수록 얕고 넓은 접근이 필요합니다. … 반면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면 특정 소비자 층을 깊고 정확히 저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상품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게 되죠.


79. 아이디어의 ‘입력’과 ‘출력’을 원활하게 만드는 세 가지 단계
1) 흑백을 구분하지 않고 가능한 한 ‘회색’ 상태를 유지한다. 어떤 정보가 도움이 될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2) 머릿속에 들어온 모든 정보를 ‘비주얼화’한다. … 정보를 어떤 ‘상’으로 만들면 저장하면 머릿속에 훨씬 더 쉽게 정착된다. 
3) 사물을 바라볼 때 가능한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97. ‘빠른 결단’와 ‘양자 택일'
- 상품을 만든다는 건 결단의 연속입니다. 소비자의 요구, 생산성, 기능, 비용, 스케줄 등에 대한 최적의 결단을 끊임없이 해나가야만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결단의 요령’같은 것이 만약 존재한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틀려도 괜찮으니 가능한 한 빠른 결단을 내린다.’ 

- 좋은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스피드와 더불어 선택지 안에서 ‘해답을 좁혀가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정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정답이 아닌 것을 찾기란 비교적 쉬운 편이죠. …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양자택일’로 선택지를 줄여버립니다. 


100. ‘강력한 선택지’ 두 개로 걸러내는 습관을 들인다. 
- 승부처에서 리스크를 확실히 줄이려면 제대로 된 선택지 두 개를 걸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요령이 있습니다. 양극단적인 두 개의 선택지를 준비해 그 양쪽 끝을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죠. 평범/비범, 적극적/소극적, 대비하다/방치하다.. 찾아보면 의외로 답은 쉽게 보입니다. 

강력한 선택지를 두 개, 그리고 최단 코스로 발견하는 것이 결단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아주 유용하게 배운 것 중에 하나가 'AB테스트'다. 무언가 '평균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도발적인 아이디어' 이 둘을 사용자에게 묻고, 대답을 구하는 것. 엄청 빠르게 테스트 할 수 있고, 또 효과도 좋다. 확실히 사람들은 '양자택일'할 때, 쉽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더라. 강추강추. 

141. 장점에 집중해 ‘차별화’를 만들어낸다. 
- 무엇이 애플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게 해주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한쪽으로 치우친 콘셉트’ ‘효율성 낮은 제조 방식’을 고수하면서 태어난 ‘차별화’입니다. 국내 브랜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죠. 가격 대비 성능만을 비교하면 타사 제품이 머리 하나 정도는 더 뛰어납니다. 그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애플을 사게 되는 건, 그만큼의 ‘광기’가 제품 개발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마그네슘 덩어리를 깎아내 본체 프레임을 만든다거나 알루미늄 압출 성형으로 아이팟 미니를 만든다거나 완전히 경면 처리되어 있는 아이팟의 뒷면도 ‘미쳐 있기에 가능한’ 제조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해버리기 때문에 애플유저는 가슴이 뛸 수 밖에 없는 거죠. 오로지 강점에 집중한다. 대담한 곡예 같은 전략입니다. 

+ 이럴 때, 나에게 묻고 싶다. 나의 '광기'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뭘 할때 정말 신이 날까? '이거 하나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무엇일까? 시기마다 조금씩은 대답이 달랐던 것 같다. 근데 요즘 나는 '대화'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 거기에 나는 관심이 많다. 그리고 잘 하고 싶다. 심톡을 진행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그냥 대화는 싫다. '진짜 가치있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그러면서 배움도 있는' 그런 대화를 하고 싶다. 그거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 


174. ‘어떻게 보이는가’와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의 차이를 이해한다. 
- 말하자면 헤어스타일을 고르기 전에 자신의 머리가 벗겨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후 대머리의 장점을 부각해 멋지게 박박 밀어 스타일을 완성시킬 것인지 가발을 써서 가릴 것인지 선택해야 하죠. 그 과정이야 말로 ‘브랜드 전략’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기업의 종합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는 지금 현재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당신 회사를 자동차 브랜드로 비유한다면 어떤 회사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과정을 통해 ‘되고 싶은 기업의 모습’을 형태를 지닌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 눈앞에 구체적인 형태가 있어야 논의 작업에서 기준이 만들어지고, 기준이 서야 발언하기도 훨씬 쉬워집니다. '어떤 타입의 여성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곤란해도 ‘A씨와 B씨 중 어느 쪽이 당신 타입이냐’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한결 쉬워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죠. 


182. 메타포 사고로 ‘비유해서 전달하는’ 기술
-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잘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특별히 그림 솜씨가 좋아야 한다거나 손끝이 야무져야 한다는 조건일 필요는 없습니다. 기발한 상상력도 필요 없죠. 사물을 선입관 없이 관찰해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해낼 줄 아는 ‘눈’, 그것을 제대로 된 형태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끈기’, 자신의 생각을 올바로 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있다면 디자이너로서 굶을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 디자이너가 적성에 맞는지 판단하려면 적절한 비유를 써서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연결하는 대상 간의 관계성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대상 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고급스런 은유라 할 수 있다.) 


+ 눈, 끈기,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 세가지가 얼마나 어려운 건데. 이렇게 쉽게 말하다니. ㅠㅜ 이건 비단 디자이너에게만 해당 되는 역량이 아니다.  기획자든, 개발자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가 회사에 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역시 '커뮤니케이션 역량'의 중요성이다. 기존에 나는 3년 동안 프리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컨펌'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가 결정하면 끝이니까. 하지만 회사와서 가장 많이 해보는 것이 '컨펌 요청'이다. 그 무엇 하나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논의해야 할 대상'이고, 나는 설득해야 한다. 지금은 그것을 훈련하는 하나의 단계라고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결국, 설득이다. 설득. 결국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209. '장인 기질’과 ‘소비자의 시선’의 양립
- 오히려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디자인적인 ‘혼잣말’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의외다 싶겠지만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근면, 성실, 집중력, 자기 일에 대한 깊은 애정, 정열,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런 특성은 상품 제작에 꼭 필요한 적성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장인 기질’이라는 녀석이죠. 

물론 스스로의 세계를 파고들어야만 가능한 것이 장인의 일이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느끼는가. 이런 시점이 누락되면 누군가를 위해 전달하려는 말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뉘앙스가 생겨나게 되죠. 그러면 메시지는 ‘혼잣말’ 혹은 ‘투덜거림’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맙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멋대로인 손님’의 시점에 서 보는 게 좋습니다. 만드는 이로서의 완고함을 소비자인 내가 느낄 수 있다면 소비자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여기선, 장인 기질과 소비자의 시선이라고 언급하지만, 나는 이를 '예술가'와 디자이너'라고 명명한다. 결국 '내 생각'을 표현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상대의 생각'을 대신 표현해주길 원하는가? 이 차이라고 본다. 둘 중 무엇이 좋을까? 그런 건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자기 자신을 예술가 혹은 디자이너'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다른 사이드를 할 수 없다고 변명하는 이를 가장 하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몇 십년 동안 다른 사람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고자 노력해온 장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의 높은 기준과 이상을 다루고자 엄청나게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탁월한 '장인'일까? 적어도 나의 기준에선 아니다. 한 단계를 더 넘어서야 한다. 그러한 장인이 진짜 '장인'이 되는 순간은 바로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철저히 예술가였던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하는 순간, 나는 그가 진짜 '성장했다'고 느낀다. 그렇게 끊임없이 '내 안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이를 나는 '장인'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말만 듣는 예술가, 혹은 남의 말만 듣는 디자이너 둘 다 매력없다. 만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이 들이 만날 때, 진짜 탁월함은 꽃 피어난다고 자부한다. 물론, 뭐 이것도 나만의 개똥철학이긴 하지만 :) 


251. ‘엔지니어 타입’과 ‘아이디어 타입’ 
-  의사로 비유하자면 ‘머리가 아프다’는 정보를 접하고 두통약을 처방해주는 이를 전자라고 한다면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몸 상태가 좋지는 않다’는 애매한 정보를 기초로 독자적인 진단과 치료, 예방을 위한 의학적 조언을 해주는 이를 후자라 할 수 있습니다. 

- 세계로 눈을 돌리면, 톱 브랜드들의 관심은 아이디어 타입 쪽에만 쏠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정한 혁신은 아이디어 타입에서만 탄생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본은 그 두 타입의 균형이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습니다. … 일본의 경우, 디자이너의 99% 이상이 ‘엔지니어 타입’입니다.  




읽게 된 계기

우연히, 페북에서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쓴 글을 보게 되었다. 읽으려고 봤더니, 절판이더라. 그래서 중고책방에 간 김에 찾아서 읽게 되었고, 내용이 그리 많지 않길래 그냥 그 자리에서 초서까지 끝내고 나왔다. 물론 책은 사서 봐야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보기도 한다. 특히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고, 굳이 재독할 필요가 없는 책들은 이렇게 잠깐 보거나, 빌려서 보고 초서해서 반납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폄하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공감할 부분은 대단히 많았고, 쓸데없이 어려운 문체가 아니라 쉽게 술술 읽혔던 좋은 책이다. 게다가 나 역시 요즘 들어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달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에 많은 도움을 얻은 책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이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문화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각하고 글을 쓰라. 이제 글쓰기는 필수다."


딜리셔스 샌드위치 / 유병률 


옮겨적기 

1.
문화경쟁력 갖추기

‘샌드위치 한국’이 ‘딜리셔스 한국’이 되려면, 관건은 문화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성장력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생산성이라고 했습니다. 생산성은 노동과 자본을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노동과 자본 투입량이 같아도 산출량이 크다면 생산성이 높은 것입니다. … 문화적 언어로 소통되는 문화제국에서 생산성은 얼마나 유연한 문화 환경과 콘텐츠를 가졌느냐에 의해 좌우됩니다. 

+ 창조 경제의 핵심은 '문화'다. 중동에, 남미에 일하러 가는 것이 만사가 아니다. 높은 문화의 힘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청년들에게 일단 뭐가 되었은 '일하고 보라'는 메시지도 나는 싫어한다. 청년들에게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가치인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다. 일단 채워놓고 보자는 식의 '수량 위주의' 일자리 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러한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면 결국 우리나라도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 
자기만의 연구실을 가져라

꼭 찾아내야 할 한 가지는 바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입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연구실을 가져야 합니다. 지식과 정보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 그리고 미치도록 파고들 수 있는 자기만의 여유로운 밥벌이를 찾아보십시오. … 이미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자기 위치를 더 탄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언제든 홀로서기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늘 연구하는 제가 필요합니다. 연구는 교수나 과학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 일에 대한 이 정의가 참 좋았다. '미치도록 파고들 수 있는 자기만의 여유로운 밥벌이' 이 단어를 보자. <미치도록 파고든다>는 말은 일에 대한 '몰입'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여유있는 밥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일에 매몰되지 않는 것. 즉, 적당한 '성찰'이 동반되는 일을 말한다. 즉, 몰입과 성찰을 동반하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한 가지만 있어선 안 된다. 몰입 없는 성찰은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성찰 없는 몰입은 '방향성'에 한계를 가진다. 우리에겐 둘 다 필요하다. 그러한 '새로운 창조'를 위해선 분명 자기만의 연구실이 필요한 법이리라.

3. 
하버드는 왜 글쓰기 교육에 올인하는가

하버드대학이 가장 신경쓰는 분야는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과목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도 안 시켜준다. 그 이유는 바로 세계적 리더 양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이 글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렇게 철저히 글쓰기교육을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대학원 리처드 라이트 교수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에서 “하버드생들이 4년 동안 가장 신경쓰는 분야가 바로 글쓰기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대학생활은 물론 직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다.”라고 강조한다. … 생명공학에 대한 글쓰기 가이드를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글쓰기는 다른 과학자들은 물론 대중과 과학에 대한 아이디어와 과학적 발견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실험노트를 작성하고, 연구제안서를 쓰고, 연구논문 형태로 스토리를 얘기하는 것 모두가 과학적 사고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 나는 외국 대학에 대한 부러움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 가지 부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그것이다. 미국도 그렇겠지만, 특히 옥스포드 대학의 경우 글쓰기와 토론 훈련을 엄청나게 시키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사고하는 훈련은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대학 시절에 가장 등한시 한 것이 이런 공부이고, 뒤늦게나마 시작하려는 것도 결국 '살아가면서 한번은 넘어가야 하는 숙제'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다. 왜 미리 시작하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4.
익스포스(하버드대 논증적 글쓰기 프로그램)의 목적

하버드는 익스포스(논증적 글쓰기 과정)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글쓰기와 사고력은 뗄 수가 없다. 훌륭한 사고력은 훌륭한 글쓰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 한 회계학 교수는 자기의 중급회계학 수업에서 비즈니스와 관련없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에 대해 페이퍼를 쓰라는 숙제를 낸다. … 2007년 하버드대 낸시 소머스 교수는 국내 한 주간지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하버드는 사회에서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익스포스를 진행하고 있다.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단순한 학습효과를 뛰어넘어, 능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회인으로서의 덕목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생각을 탄생시키는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학문적인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분야에 꼭 필요한 과제다.” 정리하면,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능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그렇게 모질게 글쓰기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 글쓰기와 사고력은 서로가 서로를 형성한다. 높은 사고력(내용)도 높은 글쓰기 능력(형식)이 없다면 담길 수 없고, 높은 글쓰기 능력도 사고력이 없으면 담을 내용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형성한다. 내용과 형식은 분리될 수 없다. 말에 비해서 글이 가지는 한 가지 강점이 더 있다. 말은 휘발성이 강하지만, 글을 어쨌든 세상에 자취가 남는다. 내가 쓴 글이 나를 지탱시킬 때가 많다. 게다가 블로그에 쓴 글은 더욱 그렇다. 일단 이렇게 살겠다고 말했고, 글로 썼다. 그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봤다. 나도 흔들릴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을 나침반으로 삼고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글이 가지는 '자취'가 내가 흔들릴 때 삶의 '지도'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5. 
리더 교육과 글쓰기

인재양성이나 리더교육을 위해 왜 글쓰기가 이렇게 중요할까?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보다 합리적인 사고의 정리를 위해 글쓰기보다 더 유효한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글을 쓰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고, 글로써 보다 명료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보다 선명한 ‘소통’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위로 납작 짓눌리지 않고 세대구분 없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자기 삶의 키를 스스로 쥐고 살아가며, 나아가 어떤 분야에서든 리더가 되려면 이렇듯 글쓰기능력이 필수적이다. 

+ 소통을 하기에도 글이 더 낫다. 누군가 21세기는 이미지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있다던데, 나는 반대한다. 되려 21세기는 '텍스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보는 편이다. 스마트 폰에 최적화된 것은 바로 '글'이다. 우리는 언제나 쓰거나, 읽는다. 주로 이용하는 페북도, 뉴스도, 카톡도 결국 글이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텍스트들이 인터넷을 범람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결국 이미지도, 영상도 아닌, 글이다. 해석할 여지를 가장 많이 남겨둔다는 점에서도, 앞으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컨텐츠는 바로 '글'이 될 것이다. 

6.
과학자과 글쓰기

과학자들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연구도 더 잘한다고 합니다. 1996년 노벨상을 받은 피터 도허티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2005년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을 연구하려면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과학자가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연구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생각도 명확하게 한다. 그래서 연구를 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 글을 잘 쓰기로 유명한 과학자 정재승씨를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7. 
배움을 위한 글쓰기

지금의 글쓰기는 자기가 알지 못한 것을 찾아보게 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취재는 작가나 기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일기를 쓰는 게 아닌 이상, 글 쓰는 사람은 인터넷이든 보고서든 신문이든 책이든 뒤져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관심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생각과 이질적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줍니다. 오히려 독서보다 글쓰기를 하면서 배우고 알게 된 것들이 진짜 자기 것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뭘 읽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뭘 썼는지는 기억하지 않습니까? 

+  이건 내가 글을 쓰면서 정말 경험하는 것이다. 일단 글을 쓰기 위해선, 관심의 폭을 넓혀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레퍼런스가 필요없는, 평소 일상의 성찰글이나 일기를 쓰는 것에는 다른 공부가 필요없다. 하지만, 주제가 있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선, 그 주제와 관련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어봐야 하고, 또 신뢰를 쌓기 위해서 다른 책도, 강의도 봐야 한다. 그렇게 글을 쓰면 공부가 많이 된다. 그건 정말 이다. 최근 그런 글쓰기를 실험해 보고자, 니체에 대한 글을 길게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짦은 기간이었음에도 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링크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나다>

8. 
안 쓰면 안 된다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글을 잘 쓰자’는 것이 아니라, ‘안 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친구와 ‘메신서’ 하듯 글쓰기를 친숙한 도구로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통로가 블로그가 됐든, 미니홈피가 됐든, 카페가 됐든, 언론사 시민기자를 하든, 책을 쓰든, 글을 쓸 물리적 능력이 되는 모든 국민이 자기만의 ‘지식발전소’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를 일상적인 도구로 활용하게 되면,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정신능력의 두 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글쓰기라는 도구를 갖지 못했거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정신능력의 절반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겠죠. 

+ 지식을 공유하는 통로는 다양하다. 나의 경우 주로 페이스북과 블로그다. 페북에는 일상적 글을 짦은 글을 올리고, 블로그에는 일기를 모아서 올리거나, 책을 읽고 공부한 내용을 올리거나, 칼럼 형태로 쓰거나 한다. 물론 사람들은 별로 오지 않는 작은 블로그이지만, 그래도 나만의 <지식 발전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에겐 의미있는 공간이다. 가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교류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그들이 어떤 통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로가 없으면 소통도, 교류도, 창조도 없다. 

9.
발상과 표현기법

커트 행크스는 <발상과 표현기법>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디어는 단지 생각일 뿐, 생각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점이 창의적인 사고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고정시켜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재빨리 언어나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종이 위에 구체화시켜 놓아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은 완성된 상태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창조에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흘러나오게 한 뒤 종이 위에 일단 고정시켜놓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토머스 에디슨 등 위대한 창조력을 가진 사람은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생각을 보존하고 발전시켰다."

+ 창조의 핵심은 표현이다. 표현되어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 그것이 꼭 다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도 '표현된 아이디어' 덕분에 생각을 공유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뭔가를 꺼내고 표현해야, 나도 보고, 다른 사람도 본다. 내가 되었든, 남이 되었든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 논할 수 있기 위해선 일단 꺼내야 한다. 습작이라도 좋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 만으로도 대접받을 필요가 있다. 

10. 
쓰기 시작할 때, 쓰고 났을 때

사람들은 첫 한두 줄을 읽고는 재미가 없거나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겠으면 더 이상 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 처음 한 두 줄만 읽고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가장 머리 쥐어뜨는 대목이 바로 리드입니다. 한 시간 기사를 쓰면 20여 분은 처음 한두 문장에 할애하지요. 리드만 완성되면 기사의 절반 이상을 쓴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입니다. 

<생각의 탄생>에도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그러면서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위에를 비롯한 많은 작가는 편집자에게 원고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유감이라는 편지를 썼다. 그들은 한결같이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양이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소개합니다. 결국 짚어봐야 할 것은 ‘뭐 빠진 게 없나’가 아니라 ‘빼도 상관없는 단락이 없나’라는 얘기다.

+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는 나의 경우에는, 이런 기자들이 참 부럽다. 기자들은 태생부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할까?"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그런 흡입력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그런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일단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하지만 때가 되면 나도 품어야 할 질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하기 위해선 어떤 글을 써야 할까?'라는 질문. 나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다. 


연결 고리


  1. 조아하자 2015.07.08 21:45 신고

    솔직히 저는 원하는 일 하라는 메시지에 반대해요. 제가 그 원하는 일 찾아서 했다가 인생 말아먹었거든요 ㅡㅡ 지금은 재취업해서 다시 일하고 있는데 이전보다 훨씬 못한 급여에 훨씬 못한 삶을 살고 있어요. 현실이란건 쉬운게 아니에요. 특히 그 원하는 일이 남을 돕는 일이라면 훨씬 더 어렵지요. 나 자신이 자립하지도 못하는데 남의 자립을 이야기하는 것, 솔직히 웃기잖아요? 저도 남을 돕는답시고 제가 원하는 일 찾아 나섰다가 언젠가 제 자신을 돌아보니 그 일로 제 자신이 자립할만한 돈도 못버는데 남의 자립을 이야기하고 있더라구요~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멘토들의 메시지가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착취 전략이라고 말하는데 이 주장에 어느정도 동의해요. 돈 상관 안하고 정말 좋아서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갑의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악한 마음을 먹고 착취하기도 쉽지요. 오죽하면 열정페이같은 신조어가 생겼겠어요...

    • 댓글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원하는 일을 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사이에서 괴리는 정말 아는 사람만 알죠. 언듯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실제론 어마어마하지요. 남을 돕는답시고 원하는 일 찾아 나섰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저를 포함해 주위에서도 종종 보는 일입니다. 화영님도 고생 많이 하셨군요. 얼마나 상심이 크셨을까요. ㅠㅜ 다만, 전 "원하는 일을 하라"는 메시지 전부를 비판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그 메시지에는 '전제'가 있고, 그 전제를 잘 염두해 둔다면, 그리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전제에는 일단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떠오르는 데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로는. (지금까지 원치않은 일만 해 왔다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인식해보고, 한번 도전해보라. 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 보다는 한번 정도는 물길을 다른 쪽으로 열어보는 것. 그 정도는 삶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환기의 측면에서두요. 두번째로는 원하는 일을 하라, (단,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있지요. 그저 믿음 만으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명확한 현실인식은 원하는 일을 하고 살려는 이상주의자들 일수록 필수라고 봅니다. 자기객관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무작정 뛰쳐나오는 경우도 많이 보는데, 그런 경우는 저 역시 말리는 편입니다. 위험하지요. 마지막으로는 (남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일을 하라. 라깡이 말했듯, 우린 자신의 욕망을 잘 인지하지 못하지요. 타인의 욕망,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욕망인냥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시간이 지나면 방향성은 흐지부지해지고, 결국 '허무함, 혹은 원망'만 남지요. 내가 겨우 이거 할려고 그랬나? 라는 후회와 함께요. 저는 이러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을 마음에 두고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런 조심성 없이 무작정 도전하라, 원하는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책임감 없는 멘토들은 저도 싫어합니다. 열정페이도 그런 맥락에서 마찬가지구요. 그러고 보니, 저는 맹목적 이상주의자도, 맹목적 현실주의자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네요. 글을 쓰면서 저의 몇 가지가 인식된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나눌 수 있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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