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
대선개표 방송을 보며. 


1. 내 고향, 대구
부끄러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오랜시간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내 고향은 보수의 심장 ‘대구'인데, 거짓말 안하고 어린 시절 선거는 그냥 1번을 찍는건 줄 알았다. 기억을 되돌아봐도 선거를 하면 언제나 예외없이 1번이 당선 되었고, 그것에 대해서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할머니나 아버지께 물어보면, 전라도도 1번 안 찍으니 우리도 2번 안 찍어줄 거란 논리를 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어차피 정치인은 다 똑같다”는 것이었다. "너는 별로 신경쓸 필요 없다"는 말도 기억난다. 그러한 말들이 당연히 납득은 안 되었지만, 그렇다고 더 깊이 생각해 볼 마음도 없었다. 파랗고 빨갛게 대비되는 지역구도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저 ‘원래 그런 것’이었다. 

1997년 대선. 지금은 신화가 된 ‘피닉제’의 활약 덕분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되었다.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뭔가 큰 흐름이 바뀌었다는 느낌은 가졌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찰은 1도 없었다. 그후, 2001년에 대학을 들어갔고 나에게도 투표권이 생겼다. 이듬해 2002년. 나에겐 월드컵 4강과 삼성 라이온즈의 역전 우승으로 기억되는 해였고, 누군가에겐 효순이 미선이 사건과 노무현의 당선으로 기억되는 해다. 당시 많은 대학생들이 추모 시위에 참석하고, 투표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위에도, 투표에도 나가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 까지도 ‘어차피 정치인은 다 똑같아’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이회창이 누군지, 노무현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내가 투표한다고 뭐가 바뀌는지, 그게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인지하지 못한채 그 중요한 순간에 나는 눈을 감았다.       

2. 정치인은 다 똑같아
그렇게 진보정권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땐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미처 몰랐다. 마치 젊은이들이 젊음의 진가를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자유와 권리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인지 알았다. 그렇게 찾아온 2007년 대선. 이명박이 압도적인 지지로 집권 했던 때. 나는 외국에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했지만, 투표를 했더라도 별 도리는 없었을 것 같다. “잘 살아보겠다”는 원초적 열망이 온 국민의 눈을 가렸던 때니까. 외국에서 머물던 2008년,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 시위를 보면서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짐작을 했고, 한국에 돌아오니 ‘4대강’은 마구 파해쳐지고 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2012년까지,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평화’는 우리를 잠들게 하지만, ‘역경'은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2009년을 기점으로, 개인적인 삶에도 폭풍같은 변화가 밀어 닥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내 삶과 직면했고 뛰어들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었고, 스터디를 했다. 그렇게 조금씩 깨어났다. 그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2011년 4월에 김어준, 정봉주, 김용민의 <나는 꼼수다>가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정치분야 팟케스트가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방송을 들으며, 책을 보며, 대화를 하며 정치에 가졌던 나의 오랜 ‘믿음과 기억’들이 수정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정치인은 다 똑같아”라는 말은 여러모로 ‘나쁜' 말이었다. 정치인이 똑같다고 하는 순간, 우린 ‘판단’과 ‘책임'을 멈추게 된다. 마치 짜장면과 짬뽕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수준으로 돌아간다. 뭘 먹든 어차피 똑같다. 먹고나면 다 배부르니까. 그러니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내 배가 부르게 되는지, 앞으로 점점 더 먹을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맛은 어떤지 고민했어야 했다. 이명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정치인은 각기 다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3. 최순실 게이트
2012년 대선. 나는 소신껏 투표를 했지만, 결국 ‘보수의 응집’을 이길 수 없었다. 당시에는 분노했지만, 지금은 ‘사필귀정’이란 말이 떠오른다. 힘든 시기였지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이 지경이 되어도 홍준표 득표가 20% 넘게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건국이래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 된 최순실 게이트는 2016년 여름부터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24일 jtbc 뉴스룸의 ‘태블릿 PC’ 보도를 기점으로 이슈는 폭발 했고, 잠재되어 있던 사람들의 분노도 연달아 터졌다. 수 차례의 시위를 거쳤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찰나 같기도 하고, 머나먼 시간을 지나왔다는 느낌도 든다.

나는 게을렀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적은, ‘게으른 자’다.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자. 내 판단을 위탁 하려는 자. 그게 바로, '과거의 나’였다. 내가 그랬듯, 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어차피 정치인은 똑같아” “이놈이나 저놈이나” 라는 말로 선택과 판단을 멈춘다. 생각을 멈춘 자는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겨울, 정도를 넘어선 불의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도 각성하게 만들었고, 이는 집단 참여와 행동으로 귀결되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렇게 사람들은 광장으로 쏟아졌다. 나라가 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 자식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러한 현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젊은 세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들의 의도는 제 각각 다를수도 있지만, 결국 그들이 가진 공통의 목적은 분명했다. ‘민주주의의 수호’다. 박근혜와 최순실, 그들은 나라의 근간, 헌법을 수호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탄핵은 인용되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4.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
지금 시간은 밤 11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확정되었다. 이제 우린 승리한 것일까? 민주주의는 수호된 것일까? 분명한 것은 한 걸음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광장에 나온 시민의 행동의 결과이며, 충분히 박수받을만 하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누구일까? 박근혜와 최순실과 같은 부패한 권력자들일까? 맞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시민의 각성을 이끌어내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민주주의의 우군’이기도 하다. 그렇담, 진정한 적은 누구일까? 상상해보자.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국가를 잘 통치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민으로서 정치 참여의 의무를 뒤로 한 채, 그저 ‘뛰어난 사람이 다스려 주길 바라는’ 사회 체제는 강화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민은 잠들고, 권력은 강화 되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건 ‘유능한 독재자’라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독재를 하려했으나 다행히도 무능했다. 그리고 유능한 독재자를 만드는 것도 결국, '게으른 시민'이다.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은하영웅전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에게 주권은 필요 없다. 참정권 따위 무슨 소용이 있나? 실제로 카이저가 선정을 배풀고 있지 않은가? 그에게 전권을 맡기면 되는 것 아닌가? 정치 제도는 시민의 행복을 실현하는 수단에 불과한데, 그것이 이루어진 이상 답답한 옷을 벗어 버리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어린 시절 읽었지만, 아직까지 깊이 인상깊게 남아있는 말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진짜 적은 ‘시민들이 정치를 잊을 정도’의 치정을 펼치는 독재자다.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시민의 각성과 노력에 의해서 일구어졌을 때 의미가 있다. 지금 물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이 각성이, 이 힘듦이, 이 과정이 민주주의 그 자체다. 쉬운 길은 없다. "저는 투표를 했으니. 이제 대통령님, 세상을 바꿔주세요.”라고 말하지 말자. 판단을 위탁하지 말자. 쉬운 길을 걸어가지 말자. 기대지 말자. 미래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역경이 없이도, 스스로 깨어있고자 노력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야 한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앞으로의 세상이다. 

뭐, 그래도 오늘은 기쁜 날이다. 
행동하고 투표한 우리는 모두 행복할 자격이 있다.

함께 즐기자. 내일을 기다려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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